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형태
고2 때 10월쯤이었던가?
그 녀석이 갑자기 내 자취방에 쳐들어왔다. 그리고는 방을 잠깐만 빌리자고 했다. 무슨 일이냐니까 그럴 일이 있단다. 자리를 비켜 달라기에 달랑 방이 하나뿐인데 어디로 비껴달라는 말이냐고 하니까, 급하다며 나한테 부엌이나 다락에라도 올라가 있으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락에 올라가 있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밖으로 나가는 것 같더니 웬 여자애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간도 크게 동침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무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었다. 말이 다 안 나왔다. 내가 마치 순결을 잃기라도 한 것처럼 찝찝했고, 커다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그 녀석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욕망은 일고 여관비는 없고 그래서 그랬단다. 세상에! 나는 그 녀석의 비행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릴까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으나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대신 나는 그 더러운 기억을 지우고자 자취방을 옮겨버렸고 그 녀석하고는 한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 천하의 바람둥이 녀석!

나중에 나에게 찾아와 싹싹 빌며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고 또 노진이 그쯤에서 화해를 하라고 중재하는 바람에 그 녀석이 내미는 손을 잡긴 잡았다. 너무 단순한 녀석, 하나밖에 모르는 녀석. 그 때는 그 녀석이 단세포 동물처럼 여겨졌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초희가 한 번은 괜찮은 남학생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단짝인 영희 이야기를 했다. 영희는 초희와 같은 여고 출신이었다. 여고 때는 그냥 알고 지내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대학에 와서 친해졌다고 했다. 사실 지금의 하숙집도 그녀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같은 하숙집에서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자기는 내 얘기만 나오면 왠지 늘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영희에게도 남자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누구를 소개시켜 줄까 고민하다가 노진을 떠올렸다. 노진은 처음에는 사양했다.

"나는 야 여자에 관심 없다. 한철이나 소개시켜 줘라."

내가 한 학기동안 같은 반이라서 자연스럽게 지켜봤는데 썩 괜찮다며 적극 추천했고, 또 초희까지 나서서 정말 근사한 애고 두 사람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말하자,

"정 그렇다면 얼굴이나 한번 볼까?"

그러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을 '차와 음악이 있는 풍경'에서 만나게 해주었다. 두 사람 모두 비교적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교제를 계속해보기로 했단다. 며칠이 지나자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철이 녀석이 대번에 나에게 달려와서 따지고 들었다.

해달라는 저는 안 해주고 왜 필요 없다는 노진은 해주었느냐고. 의리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의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야, 우리 솔직해지자. 여기 네 딸이나 여동생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너는 너 같은 사람에게 흔쾌히, 아주 흔쾌히 소개시켜 줄 수 있겠냐?"

내가 거두절미하고 정곡을 찌르자, 그는 움찔하며

"내가 어디가 어떤데?"

하고 대거리를 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대답해 봐"

"딸이나 여동생이라‥‥‥ 그건 조금 생각해 봐야겠는 걸"

"그렇지. 그 봐 너 본인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에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여자를 소개시켜 줄 수 있겠느냐고, 네가 정말로 나한테 여자를 소개받고 싶으면 말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 봐. 다시 말해 네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들을 전부 정리하고, 그리고 한 여자하고만 사귀며 그 여자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해. 그러면 내 동생이라도 소개시켜 줄게."

이렇게 강경하게 말하자 그 녀석이 꼬리를 내렸다.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는 한철의 제안을 받아들여 충북에 있는 화양동 계곡으로 1박 2일의 캠핑을 떠났다. 일행은 나와 초희, 노진과 영희, 그리고 한철과 진경이었다. 진경은 미술학과 학생으로 선배로부터 6월 초에 소개받았다고 했다.

얼굴과 몸매는 그런 대로 괜찮아 보였는데 곱슬곱슬한 파마머리와 짙은 화장, 그리고 무척 짧은 치마가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한철이 좋다는 데야 나와 노진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화양동으로 내닫는 시외버스 안에서 두 사람은 손을 잡는 것은 보통이고 아주 껴안은 자세로 앉아있어 볼썽사나웠다. 나와 초희, 그리고 노진과 영희는 아직 손도 잡아보지 못했는데‥‥‥. 한편 부러운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선 중기의 거유요, 노론의 영수였던 의암 송시열이 은거했다고 알려진 화양계곡이란 화양리에서 선유동 입구에 이르는 화양천 계곡을 일컫는 것이었다.

우리는 야영장에 텐트 두 개를 치고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다음, 일단 화양계곡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화양천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기암절벽과 울창한 수림이 어울려 제 1곡인 경천벽에서부터 제 9곡인 파천까지 정말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과연 송시열이 이곳 산수에 반할 만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 저곳에 의암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그가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따서 이곳에 화양구곡을 정해놓고 바위벽에다 이름을 새기게 했다는데, 그 중 제 1곡인 경천벽 밑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화양동문(華陽洞門)의 네 글자는 그의 친필이라고 했다.

경치뿐만 아니라 물도 맑았고 무엇보다 바닥의 모래를 밟는 기분이 좋았다. 시냇물 바닥에는 보통 미끌미끌한 자갈이 쌓여있게 마련인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바닷가 백사장처럼 모래가 깔려있었다. 물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가재, 버들치, 쉬리 같은 1급수 어종들이 살고 있었다.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보려 애썼지만 잡기는커녕 옷만 적시고 말았다. 옷이 젖은 김에 우리는 물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꼭 색다른 곳, 영희의 말대로 별천지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계곡에는 자갈들이 없는 대신 큰 바윗돌들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리는 옷도 말리고 휴식도 취할 겸 그곳에 올라가 아무렇게나 앉았다.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2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