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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정신
무라카미 류는 언제나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달콤한 감수성으로 범벅된 일본소설 속에서 건진 진주 같은 존재이다. 물론 현대인들의 방황을 섹스와 마약으로 점철한다는 점에서 다소 퇴폐적인 작가라고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한 류.

그러나 그것은 현대 사회의 맹점을 잘 그려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나면 불쾌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나 그는 그렇게 세상을 반쯤 비뚤어진 채 바라보며 냉소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식스티 나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1969년 일본에서 일어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청춘물이기는 하지만 청춘들의 방황과 고뇌 따위는 없다. 불량배들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류는 1969년 당시 일본의 비뚤어진 과거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내어 조소의 박수를 보낸다.

일본 고등학생들의 파행, ‘일탈’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마치 류가 이름만 바꿔놓고 자서전을 쓴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작가를 닮은 주인공의 이야기와 넉살 좋은 위트는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 소설은 이미 앞서 벌어질 이야기들에 불쾌감을 느끼는 자들은 읽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296쪽) 결국 이 말에 공감을 하는 분들만 읽어야 한다. 이 말은 소설 전반에 깔린 주제와 관통하는 것인 동시에 류가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경고를 준 것이다.

무라카미 류는 “지겨운 그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고교 3년생인 ‘겐’이다. 그는 세상의 허위허식과 무신경함, 양육강식의 비정한 현실에 대해 매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10대. 자신들을 매몰차게 내모는 학교와 사회, 기성세대의 권위에 독설과 야유를 서슴지 않는다. 겐은 세상과 삐딱하게 맞서며 나름대로 삶의 홍역을 치르고 난 뒤에 희망을 찾아내는 줄거리이다.

1969년 일본에 가득 찼던 불온한 기운에 휩싸인 일군의 고등학생들이 ‘바리케이드 봉쇄’를 감행한다. 말하자면, 그들만의 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그들만의 혁명문구를 내걸고, 교직원실 창문에는 “권력의 개들아, 자아 비판하라!”고 썼고, 도서실에는 “동지여, 무기를 들어라!”라고 적는다.

사건은 일일천하로 끝나고 사건에 가담한 자들은 무기정학을 맞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간동안 나름대로의 행복한 시간을 즐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 이들은 졸업을 얼마 앞두고 ‘모닝 이렉션 페스티벌(아침에 서는 축제)’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벌인다. 겐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레디 큐를 외치는가 하면, ‘우주의 혼돈’을 상징한다며 닭 스무 마리를 풀어놓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페스티벌은 대성공을 거두고 겐은 여자친구 카즈코와 함께 저녁노을을 보러 겨울 바다로 간다. 그렇게 겐과 아다마, 그리고 카즈코의 1969년은 저물어 간다.

이렇듯 소설은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힘들다. 또한 그 만큼 시선을 비뚤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소설 속의 마무리는 매우 간결하다. 하지만 우리 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지나 간 추억과 쾌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어떠한 것을 심오하게 보여주지는 않아도 비뚤어진 문자 나열 속에 1969년 일본의 이중적인 모습을 그리고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잘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조소의 박수를 보내며 비판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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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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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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