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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태


몇날 며칠 그녀에게 다가갈 방법을 강구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나의 숫기가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이상하게 벙어리요 중죄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 못하고 끙끙 속앓이만 거듭했다. 그만큼 그녀가 나를 완전히, 꼼짝 못하게 사로잡고 있었던 셈이다. 겨우 생각해낸 것이 고등학교 때 했던 것처럼, 나의 유일한 무기- 편지였다.

4월 10일부터 편지 작업에 들어갔다. 총 다섯 통의 편지를 써서 정확히 3일 간격으로 차례차례 발송했다. 그녀의 주소는 천안으로 되어 있었다. 학기 초에 조사한 것이라 아무래도 부모님이 계시는 본집 주소를 쓴 것 같았다.

며칠동안 지켜보니 그녀는 농과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후문 쪽, 다시 말해 어은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천안으로 발송할 수도 없고, 하숙집 주소는 정확히 모르고, 하는 수 없이 학과사무실로 보내기로 했다. 그곳 우편함에서 찾아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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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씨 보세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신약성서 고린도 전서 13장)

먼저 양해도 구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펜을 들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초희씨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초희씨만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혀가 굳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몇날 며칠 끙끙거리며 고민하다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몇 자 적습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제일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초희씨께서는 혹시 고등학교를 대전에 있는 C여고를 나오지 않았는지요? 그리고 여고시절에 가끔씩 연산에 다녀오지 않았는지요? 너무도 궁금합니다. 왜냐고요?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는 고향이 양촌이고 고등학교는 D고교를 다녔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시골집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다녀왔는데, 몇 번 시외버스 안에서 우연히 한 소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소녀는 '청초한 이슬을 머금은 한 떨기 백합화'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 소녀에게 한눈에 반했지요.

그러나 그때도 지금처럼 숫기가 없어 말을 건네지 못하고 애만 태웠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그 소녀가 동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아마 숙소가 그 동네이리라 짐작하여 편지를 써서 품에 안고 4일 동안이나 거기에서 기다렸습니다. 소녀가 나타나면 편지를 통해 내 마음을 전하려고요.

그러나 그 소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워 오는 토요일에 용기를 내어 C여고 교문 앞까지 찾아갔으나 허사였습니다. 펜 벗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러다 그 소녀는 서서히 제 뇌리 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올라와 초희씨를 본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틀림없이 제 기억 속의 소녀가 바로 초희씨가 아닌가 싶은데, 과연 맞는지요? 정말 궁금합니다.

아래에 작품은 제가 고교시절 그 소녀를 잊지 못해 가슴앓이 하면서 적어보았던 몇 편의 시입니다.


목마름 1

지금 내가 이다지도
외로움에 몸을 떠는 것은
진정 혼자이기 때문일까?

점점 야위어 가는 이 깊음은
정말 내가 반쪽임을 보여주는 손거울일까?
그래, 그것은 "또 하나의 나"를 기다리는
애타는 그리움의 불꽃이겠지

외로움이 이토록 싸늘한 것은
퍼뜩 하나가 되고픈 간절함이다
온전한 하나이길 원하는
목마름에 고독은 오늘밤도 옷을 벗는다

새파란 별빛을 따라
하얀 겨울나무보다 더 새하얗고
눈부시게‥‥‥


목마름 2

아무리 옷깃을 힘껏 여미어도
황소바람에 가슴이 시려
촉조처럼 눈물을 떨구는 것은
오래 전 잃어버린 갈빗대의 안마당이 텅 빈 까닭이요,
그를 향한 나의 그리움이 하늘까지 사무친 이유이다

성도 이름도 모르지만 지상 어디에선가 숨쉬고 있을
나의 반쪽!(그 역시 나를 찾아 빗속을 나래짓하고 있을까?)
우리의 자전과 공전은 언제까지 평행선을 달려야 하는 걸까?
아, 나의 기다림이 이젠 보고 싶다며
찢어질 듯 펄럭인다

하지만, 혼자서 똑바로 걷고 마음껏 뛰는 훈련부터
아직은‥‥‥ 아직은‥‥‥
그를 향한 기도의 탑을 쌓을 때


목마름 3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찌하여 이까짓 한낱
외로움에 꼼짝 못할까?
하기야 숨쉬는 생명체는 모두 고독으로 몸부림치지
그럼, 사랑을 찾아 헤매는 이 애틋함은
혹 동물적 욕구일까?
아니면 살아 있다는 웅변일까?

동물은 짝짓기 한철만 사랑의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그러나 최고의 고등동물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에로스에 휩싸인다 바람처럼
이 웃지 못 할 아이러니

자유의 상징으로 주어졌던 선악과가
인간을 구속하는 천추의 한으로 박제된 것처럼
지나친 진화와 문명이 가져온 이 말 못할 고통과 쓰라림
굳이 생리학자나 프로이트의 설명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발원지가 있어 흐르는 강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성을 향한 끊임없는 그리움이 본능처럼 샘솟는 데도
분명 까닭이 있지 않을까?

종족 보존을 위한 하늘과 자연의 섭리,
성적 목마름,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메워 보고자 하는 노력,
상대에게 기대고 싶은 욕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정직한 표현,
‥‥‥‥‥‥‥‥‥‥‥‥‥‥‥‥‥‥
‥‥‥‥‥‥‥‥‥‥‥‥‥‥‥‥‥‥
이러한 지류들이 모여
외로움의 강물을 이루는 것일까?

아, 그러면 외로움의 감지(感知)는 슬픔일까? 행복일까?
그리고 얼마만큼 더 흘러가야 하며
또 외로움의 끝은 무엇일까?

하늘가를 맴도는 고추잠자리처럼
갈 곳 몰라 동그라미만 낳는 내 푸른 젊음이여!


목마름 4

왠일인지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은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온누리에 봄볕이 화사하게 내려앉고
가을 하늘이 끊어진 연처럼 저 멀리 날아간 날
마음만 싱숭생숭, 육신까지 뒤숭숭하여
바람 따라 길을 나서면
쌍쌍이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연인들
그 뒷모습을 부러움과 질투어린 시선으로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는 외기러기

아, 나는 언제쯤 이 기막힌 날들을 쓸쓸함이 아닌
기쁨과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과연 그 언제쯤‥‥‥


목마름 5

봄빛이 다하도록
벌 나비에 바람맞은 꽃망울
단비와의 뜨거운 포옹을 고대하며
목줄 타들어 가는 논바닥처럼
거북의 등가죽 되어 쩍쩍 갈라지는 나의 흉부

눈물겹도록 저미어오는 외로움,
혼자만의 그 아픔에
심신이 벼랑 끝에서 자맥질을 거듭한다

한 잎 두 잎 허물 벗는 낙화(洛花)에도
가시 찔린 고무풍선 되어
위태 위태 곤두박질하는
오 나의 젊은 비행(飛行)이여!

그대, 나의 또 다른 한쪽!
정녕 어디에 있기에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딛게 하는가
오늘도 찬비를 맞으며
안개 속을 헤매 도는 사랑하고픈 자아

그러나 이 기다림이 그대를 만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징검다리라면
나 기꺼이 감내하리
기쁨으로



* 9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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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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