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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숙

저는 지리산에 사는 멧돼지예요. 지난 11월 14일 우리 멧돼지 가족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리산 5부 능선까지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날 우리들이 잠든 새벽 4시에 지리산 성삼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마치 쿠데타를 모의하는 군인들처럼 새벽을 타고 나타났지요.

알고 봤더니 그들은 위아㈜(전 기아중공업) 직원들로 무려 654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새벽 4시는 무척 이른 시간이어서 그들은 입장권도 사지 않은 채 입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입산하는 건 출입통제 조항을 위반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 이른 시간에 버스 수 십 대를 타고 올라 와서는 지리산을 느끼고 자기를 이겨야 한다며 달밤에 체조 아닌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성삼재에서 대원사까지 10시간 만에 종주를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그 회사 직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 해가면서요.

생각 한번 해 보세요. 국립공원이라는 말만 붙여 놓고 제대로 보호도 해 주지 않고 만날 등산객들과 마주치는 것도 스트레스 받는데, 아닌 달밤에 육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리산을 쿵쾅거리며 뛰어 다니니, 우리 같은 멧돼지라고 해도 버틸 재간이 있나요?

사람들은 우릴 만나면 흠칫 놀라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인간들이 더 무섭습니다. 일년에 지리산을 찾는 사람은 300만명을 넘습니다. 사람 손을 타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산은 훼손은 시작된다고 봐야 합니다.

연간 300만명이나 지리산을 오가는데 육백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산행 좀 했다고 무슨 문제냐고 하겠지요. 그거 아세요? 등산객 한 명이 서른 번 지리산에 찾는 것과 서른 명의 단체 등산객이 한번 지나가는 건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연히 후자가 훼손 정도가 심합니다.

그들이 지나간 그 길을 나중에 따라간 다른 등산객들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비가 오긴 했지만 등산로도 흙투성이고 사과 껍질에 온갖 쓰레기들이 너무 많다고. 지리산을 자주 오는데 이렇게 지저분한 모습은 처음 본다고 그러더군요.

그 사람들이 떼 지어 지나갈 때 우리 가족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웃집의 다람쥐 가족들, 겨울잠을 자려던 뱀돌이 형제, 사람들과 숨바꼭질 하려고 놀러 왔던 산토끼 남매들도 함께 달아나야 했습니다. 그들이 지나가는 산길은 등산화발에 다져지고 길은 넓어졌습니다.

우당탕 뛰어 가는 사람들 발소리에 놀라 고사목에 집 짓고 살던 산꿩 부부는 병이 다 났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뛰어 다닌 숲길의 나무들은 뿌리를 다쳐 몸살을 앓고 있고 언제나 푸르름을 잃지 않는 튼튼한 조릿대조차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항의했더니 그 회사는 "지리산은 누구나 단체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며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했다는군요. 정말 그들이 지리산을, 자연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겁니다.

그런 그들이 12월에 다시 지리산을 찾겠답니다. 이번에도 수백명이 정답게 손잡고 와서 마라톤 비슷한 걸 한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또 어디로 피신해야 할지. 왜 지리산의 주인은 우리 동물과 식물, 자연인데 왜 우리가 집을 버리고 피신해야 하는 건가요?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도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떼 지어 몰려 다니며 우리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등산화와 온갖 쓰레기에 만성이 된 지리산이지만, 가끔은 정말 너무 아파서 지리산도 운답니다.

위아㈜, 대규모 지리산 '구보'산행 논란
지리산생명연대·산악인들 반발... 위아 "대규모 산행 특별하지 않아"

▲ 지리산국립공원관리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경남 창원 소재 위아㈜가 직원 체력 단련과 마라톤 연습 차원에서 500~1000명씩 대규모로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에서 종주 산행을 벌이고 있어 환경단체와 네티즌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위아는 지난 11월 14일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지 않는 새벽 4시경 입산해 지리산 성삼재~대원사 구간에 걸쳐 직원 654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산행을 실시했다. 직원 훈련 차원에서 실시한 이날 종주는 군인들의 구보에 가까운 강도였다고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지리산생명연대 등 환경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지난 22일 위아에 공문을 보내 "직원들이 단체로 구보하는 식으로 산행을 했다"면서 "수백명이 한꺼번에 산에 오를 경우, 그것도 짐승들이 잠자는 새벽에 하면 잠을 깨우게 되고, 탐방로를 벗어나는 등 환경 파괴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리산생명연대는 12월로 예정된 위아의 산행을 자제해 줄 것도 요구했다.

지리산생명연대는 항의 차원에서 조만간 창원에 있는 위아 공장을 방문하고, ‘제1회 지리산 개떼산행상’ 내지 ‘제1회 떼거지산행상’ ‘제1회 소귀에경읽기상’ 등을 제정해 위아측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티즌들도 위아를 비난하고 나섰다. 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www.npa.or.kr/chiri/npa/qa.asp
) 자유 게시판에는 이와 관련해서 최근 50여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 네티즌들은 위아를 비난하면서 대규모 산행으로 인한 자연 훼손을 우려했다. 대규모로 산행을 하면 탐방로 이외 구역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위아 조우성 총무과장은 “그동안 직원 훈련 차원에서 지리산 종주 산행을 여러 차례 해 왔고 때론 야간 종주도 한다. 왜 유독 이번에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산악회나 다른 회사의 경우도 대규모로 산행을 하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또 그는 “환경단체가 지적하는 짐승의 잠을 깨우는 등 사항을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조심해서 산행을 했다”고 말했다.

또 조 과장은 “그날 올라가는 시간은 안내소가 문을 열지 않았을 때였고, 입장료를 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 시간은 택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말고 산악회 등 다른 팀들도 그 시간에 입산했다”고 말했다. 12월 산행 여부에 대해 그는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리산국립공원 남부사무소 관계자는 "단체 산행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위아 쪽에 야간 산행은 금지되어 있고 단체로 움직이지 말고 조별로 나눠서 시간대별로 등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위아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산행은 '야간 산행 금지'에 해당되어 현장에서 적발시에 1인당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며 "당시 인력 부족 등으로 근무자를 배치하지 못해 단속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지리산을 단체 산행한다고 해도 많아 봐야 버스 2~3대 정도다. 이번처럼 버스 스무대 정도가 동원된 것은 극히 드물다"며 "단체 산행시 과중으로 인한 등산로 파괴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리산국립공원은 위아 측에 대규모 산행을 자제해 달라는 항의성 공문을 보낸 상태다. / 윤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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