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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장 초혼의식(招魂儀式)

양만화는 저녁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신의 서재에 있었다. 탁자에는 두 사람이 더 앉아 있다. 하나는 냉약빙이고 또 하나는 장준(張俊)이다. 양만화의 뺨이 며칠 사이에 많이 여위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던 여유있는 태도도 이제는 사라졌다. 신경이 곤두설 때로 섰다.

아무리 자신있게 살아왔어도 상대는 한번의 실패도 없다는 공포의 초혼령이다. 이제 하루 남았다. 아니 시각을 따지자면 앞으로 두시진이 지나면 열흘째다. 오늘 삼경이 넘어 들이닥치든, 내일 저녁에 들이닥치든 열흘이란 기간은 같다.

“장관사. 장(壯)에 들어 온 인원은?”
“연합회에서 온 건천위(乾天衛) 이십명과 중소방파에서 온 삼십여명이 전부입니다.”

양만화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 온 것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했나 하는 불쾌감이다. 그만큼 초혼령에 대한 공포는 적지 않다.

“금(金) 가 늙은이....아주 약아 빠졌어. 생색은 내되 쓸모없는 건천위라니.... 이번 일이 끝나면 내 반드시 이 수모는 갚아주지.”

그는 연합회에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이미 소식을 전해 들어 안다. 하지만 회주인 금적의 행위는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이 초혼령을 받았을지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다. 자신에게 닥치면 모든 것이 서운하게 마련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장관사는 양만화의 눈치를 보며 입을 떼었다.

“오늘 오후에 들리는 전언으로는 소림사에서 초혼령에 대한 해금령(解禁令)을 공표했다는 것입니다.”

“들었네. 자네는 장에 있는 오십명에게 최대한 성의를 다해 대접하는데 신경 쓰게. 오시느라고 수고하셨다고...그저 마음을 놓고 지내라 하게. 술도 내줘.”

어차피 전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오십명이다. 그들이 자신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사치례 정도 보내온 것 뿐이니 그들에게까지 긴장감을 줄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장준은 인사와 함께 방문을 열고 나갔다.

“해금령..... 그 의미가 뭐지?”
혼자 말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냉약빙이 빠르다.

“아마 지금까지 초혼령의 행사에 구파일방이나 무림방파는 간섭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었던가 봐요.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어제 발표하면서 오늘 오전에 화산과 종남에서 본장으로 제자들을 파견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다행스런 일이군.”

구파일방이 온다면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도움이 된다.

“오늘 자정이나 내일 새벽쯤이면 도착할거예요. 하지만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 명분을 얻는 일이 되겠죠.”

천고문에 관련된 명예의 실추다. 하지만 만약 구파일방이 도와준다면 그 일들이 사실이더라도 굳이 들쳐 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종리추(宗理錐)는 어디 있지?”

종리추는 사영천(死影天)의 천주(天主)다. 구십구명의 살수를 모으고 완벽하게 훈련시킨 천성이 살수인 사람이다.

“점검하러 다니고 있어요.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예측해 완벽한 방어망을 만들고 있어요.”

사영천이 십이년만에 오십여년의 전통을 가진 살천문(殺天門)과 대등한 위치에 오른 것은 양만화의 자금도 자금이지만 종리추의 공이다.

“약빙..!”
“예. 어르신....”
“자네는 지금부터 아내의 방에 가 있게. 만에 하나 일이 틀어졌다면 내가 시킨 대로 빨리 움직여. 살아만 있다면 재기할 수 있다.”
“알고 있어요. 마님은 필히 소첩이 모실테니 걱정마세요.”

여우는 만약을 위하여 또 하나의 굴을 파 놓는다. 식은 찻잔을 마시는 그의 입은 쓰다. 왜 하필이면 사라진 초혼령이 십사오년 만에 자신에게 떨어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시각은 열네시진 뿐이다. 그들은 반드시 그 시각 안에 올 것이다.

× × ×

피.....!
피 냄새와 함께 어둠 속에도 보이는 것은 피에 절은 시체 두 구였다. 화음현에서 서안(西安)으로 이어지는 관도(官道)를 달린 지 두시진이 지났다. 삼문협(三門峽)에서 이장선(二檣船)을 타는 덕에 예정보다 빠르게 화음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일 오후가 되기 전에 장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는 동안 죽이 맞아 금방 친해진 팽악과 혜청이 마부석에 앉아 말을 몰다가 피냄새와 함께 시체가 보이자 혜청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시체 곁으로 다가 들었다. 마구 치달리는 말에서 뛰어 내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의 몸놀림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평지를 걷는 듯 하다.

“대형...!”

팽악은 마차 안에서 쉬고 있는 구양휘를 부르며 말을 세웠다.

“무슨 일이냐?”

그의 목소리에 피곤이 곁들어 있다. 본래 배를 싫어하는 구양휘는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배멀미를 했다. 더구나 소림에 도착하자마자 떠나 온 관계로 그리 쉴 틈도 없었다. 일행 모두가 그런 상태니 특별하다 할 수 없으나 그는 배멀미로 유독 피곤해 보였다.

“시체가 있소.”
“우리는 갈 길이 바쁘다. 일일이 상관할 수는 없어.”

말을 하면서도 그는 마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미타불.....화산의 제자로군.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을 보니 여기에서 한판 붙었군.”

말은 속인이오 어울리지 않는 불호다. 혜청의 중얼거림에 담천의와 갈인규 역시 마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는 처참했다. 배가 갈라져 내장이 흘러 나와 있는 시체와 전신에 무엇인가에 할퀸 모습에 목 부분이 움푹 패어져 간신히 몸에 붙어있는 시체였다.

바닥에 흐르는 흥건한 피.
“둘만의 피는 아니야. 적어도 십여명 이상이 혈투를 벌인 흔적이군.”

구양휘는 정신이 번쩍 나는지 주위를 살폈다. 시체 두 구의 가슴에는 매화문양의 수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화산파의 제자다. 하지만 섬서 땅에서 더구나 화음현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화산파와 드잡이 할만한 용기를 가진 방파나 무림인은 드물다.

화산은 섬서 화음현에 위치해 있다. 섬서 남쪽에 종남파가 있고 요사이 들어 종남파의 위세가 커지고 있다고는 하나 섬서성의 패주는 화산이다. 안방에서 화산파의 두 제자가 살해당한 것이다.

“장안으로 가려던 것을 막은 모양이군요.”

갈인규의 지적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많아 보이오. 아마 화산에 연락을 한 것이 오늘 오후쯤일테니 장안으로 움직이는 선발대 정도 되지 않겠소?”

팽악 역시 갈인규의 생각에 동조했다. 구양휘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초혼령 쪽에서 행사를 방해하려 하자 먼저 손을 쓴 건가? 빠른 자들이군. 이미 중원의 움직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는 것이 아닌 이상 이리 빠르게 대처하지 못할텐데...”

구양휘는 입맛을 다셨다. 이미 흔적은 봐두었다. 가는 방향의 우측으로 핏자국과 움직인 흔적이 있다.

“우리 추측이 맞다면 이곳 뿐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요.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하면 우리 역시 늦을 수도 있습니다.”

갈인규는 의원답게 생각이 냉정하고 치밀하다. 그러나 이미 구양휘의 눈치를 보니 이 일을 그냥 넘길 태도가 아니다. 구양휘는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천의....자네 경공에 자신 있나?”

뜻밖의 물음이다. 어쩌자는 겐가?

“쫒아갈 정도는 되겠지요.”
“좋아. 자네는 나와 함께 이 흔적을 쫒아 보세. 나머지 사람들은 가는 그대로 달리도록 해. 우리가 나중에 뒤쫒아갈테니....”

어쩔 수 없다. 이 일을 그대로 방치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확실한 것을 알아야 그들 일행도 안전하다. 그들 역시 장안으로 가는 길이므로 이와 같은 꼴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는 신형을 날리려다 말고 팽악을 보며 말했다.

“산산(珊珊)과 광도(狂刀)도 장안으로 오라고 연락했었지?”
“소림을 출발할 때 연락했으니 우리와 엇비슷하게 도착할거요.”
“그들은 괜찮을까? 괜히 오라고 한 게 아닌지 몰라.”
“대형도 참...걱정도 팔자요. 산산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광도 형이야 별일 있겠소? 산산 역시 꾀주머니인데 제 몸 하나 못 지키려고....”

나머지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구양휘가 걱정하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사이임이 틀림없다. 대수롭지 않게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살해된 사인으로 보아 귀음조(鬼陰爪)와 기형적으로 폭이 좁은 연검(軟劍)이다. 하나같이 조심해야 할 상대다.”

귀음조는 사공(邪功)의 일종으로 익히면 손가락이 검게 물든다. 익히기도 어렵지만 귀음조에 스치기만 해도 빨리 처치하지 못하면 상처부위가 썩어 들어가는 지독한 마공인 것이다. 더구나 연검은 검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잡지 못한다. 기형적으로 폭이 좁은 연검이라면 더욱 다루기 힘들다.

“자네들도 위험이 닥치면 일단 연락할 수 있도록...무조건 부닥치지 말고..”
“알겠소. 대형.”

팽악의 대답을 들은 구양휘가 흔적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담천의 역시 그의 뒤를 바싹 좁히며 따라 붙었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 세 사람은 마차에 올랐으나 모두 비좁은 마차 석에 앉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지금 일어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화산파의 제자는 누구라도 이리 쉽게 당하지 않는다. 시체마저 치우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만큼 급박하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일어날 사태에 대비해 대응을 빨리 하려면 마차 안에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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