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미 마차는 준비되어 있었다. 같이 온 일행 중 갈유와 두 여자들이 남았고, 네 명의 사내들은 이제 떠날 것이다. 갈유는 항상 데리고 다니던 갈인규를 떼어 놓는 게 아쉬웠지만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오, 자신을 간수할만한 능력도 있으니 품에서 떼어 내는 게 당연하다고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두 소저는 노부와 동행할게야. 어차피 노부도 강남에 들려야 할 일도 있고 해서 말이야. 저 녀석은 자네가 잘 돌보아주게.”

그래도 못미더운지 갈유는 구양휘에게 따로 부탁을 했다.

“갈 대인, 오히려 제가 부탁해야 할 판입니다.”

구양휘의 성품은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가 갈인규를 그렇게 평가하면 맞을 것이다. 그 때 시끄럽게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다구요. 놔 달라니까요.”

소림 경내에서 저리 시끄럽게 소리 지르는 사람은 누굴까? 어둠 속에서 빠르게 두 인형이 일행들에게 다가 들었다. 광무선사와 그에게 귀를 잡혀 끌려오고 있는 젊은 승. 일행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담천의는 그 젊은 승이 누군지 안다. 광무선사의 유일한 제자이자, 자신과 조금 전에 술을 같이 나누어 마셨던 그다.

“다행이군. 아직 떠나지 않았으니.”

광무선사는 일행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보며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담 시주, 이 녀석이 노납의 유일한 제자 놈이네. 온전한 중이 되기는 틀린 놈이고, 속가에 나가도 적응 못할 놈이니 자네가 맡아서 사람 좀 만들어 주게.”

이 자리에는 구양휘가 있다. 은연 중 일행의 수장(首長)이랄 수 있는 구양휘를 제치고 담천의에게 부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가 어찌 감히 선사의 고제자를….”
“노납에게 얻어간 것도 있는데 그 빚을 갚지 않겠다는 겐가?”

광무선사라고 담천의가 거절하는 이유를 모를 손가? 담천의는 더 이상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에게 맡기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동행하라면 구양 대협께 부탁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구양휘는 개의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담천의에게 말했다.

“자네가 동행하겠다면 나는 괜찮네. 이 세상에 선사의 고 제자와 동행을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고맙네. 구양 시주.”

말과 함께 광무선사는 담천의의 앞으로 제자의 귀를 잡아끌며 호통 쳤다.

“혜청(慧淸), 네 이놈. 그래도 담 시주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작정이냐?”
“아--아얏---사부님. 제발 이 귀좀 놔주셔야 인사를 드리던 말던 할 꺼 아닙니까? 그리고 담시주하고는 이미 한잔 걸친 사인데….”

뒷말은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 말을 못들은 사람은 없었다.

“허, 벌써 만나 보았다고....? 네 녀석과 담시주와 전생 인연이 깊은 모양이다.”

광무선사는 제자의 귀를 놓고 지금까지의 장난스런 표정에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혜청!”
그의 태도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던 혜청도 옷매무새를 고쳤다.

“예. 사부님.”
하지만 그의 입에 걸린 것은 여전히 장난기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 같았다.

“앞으로는 담 시주를 따라 다니며 그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이 사부가 너를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으나 담 시주는 너를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게야. 그 일을 담 시주에게 부탁한 것 인만큼 담 시주 대하길 이 사부 대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도 괴사(怪事)일 것이다. 소림의 제자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것도 그렇고, 사부와 같이 대하라니.

“죽으라 하면…?”
“죽어야지.”
“정녕 하나밖에 없는 제자를 타인의 종으로 만드시렵니까?”
“종노릇도 잘해낼지 걱정이다. 주인 밥그릇이나 깨지 않으면 다행이지.”
“사부님!”

혜청이 불만 가득한 볼 멘 소리를 터트리자 광무선사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개방 방주보고 데려가라고 할까?”

이미 개방의 방주 철골개는 소림에 있다. 그 말에 혜청은 끔찍하다는 듯 얼른 담천의에게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소림의 혜청이 담 시주를 뵈오.”

장난기가 걷히니 그의 전신에서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서린다. 하기야 소림 최고의 무승 광무선사의 제자이니 말할 나위 없다.

“반갑소. 혜청대사와 같은 일행이 생기니 마음이 더욱 든든하오.”

담천의와 인사가 끝나자 구양휘 등과 인사를 한다. 팽악은 무엇이 좋은지 싱글벙글 이다. 아마 같은 종류의 인간을 만난 것 때문일 것이다.

“어서 떠나시게. 밤을 새고 달려도 기일 내에 도착하기 어려울 게야.”

광무선사는 구양휘에게 떠날 것을 재촉했다. 구양휘가 오르고 따라서 모두 마차에 오르자 혜청이 광무선사에게 큰절을 올린다.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삼배를 올리고 마차에 올랐다.
떠나가는 마차를 미처 다 보지 못하고 몸을 돌리는 광무선사의 노안에 달빛에 반짝이는 물기가 스몄다.

사연이 많은 제자다. 갓난아기 때부터 젖동냥까지 해가며 키운 유일한 제자다. 혜(慧) 자 항렬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린 제자이고, 어떻게 보면 그 아래대 항렬인 법(法)자 항렬의 대제자보다 나이가 어리다.

그럼에도 광무는 그를 자신의 유일한 제자로 삼았다. 말썽은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광무의 제자였기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형인 광허선사까지도 그를 무어라 하지 않았다. 떠나보내는 마음은 자식을 잃는 아픔과 같다.

“아미타불….”

눈물을 보이기 싫어 그는 급히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어찌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랴.
이별(離別)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갈유도,
송하령도 눈물을 보이기 싫어 눈길을 애써 돌리고,
서가화까지도 기이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