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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받은 빼빼로데이 선물
아들이 받은 빼빼로데이 선물 ⓒ 김혜원

아들은 지각을 각오하고 있다는 듯 현관 앞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좀더 실랑이를 해보려는데 남편이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줍니다.

"얼른 가. 학교 지각할라."

돈을 받자마자 쏜살같이 달아나는 아들의 뒤통수에 대고 들을 리 만무한 잔소리를 합니다.

"니들 정신차려. 빼빼로 회사에서 만든 작전이란 말야. 얘들이 정말."

그러다가 공연히 인심이라도 쓰듯 용돈을 줘버린 남편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당신은 왜 애한테 돈을 주고 그래?"
"허허허, 여자친구한테 준다는데… 당신도 선물 좋아하잖아. 그리고 그건 당신이 붙잡고 설명한다고 될 일도 아니야."

"지금 웃을 일이야. 애들 코 묻은 돈 긁어내려는 과자 회사의 농간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이게 무슨 소동이야. 이런 행사는 없어져야 한다니까. 공연한 과소비만 부추기는 거잖아."
"아이참 이 사람 별거 아닌 걸로 흥분하네…. 내가 빼빼로 회사 사장이야? 왜 나한테 그래. 나도 지각하겠네. 다녀올게."

저의 잔소리가 무서웠는지 남편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 버립니다.

아이들은 몇 년 전부터 해마다 11월이면 무슨 대단한 기념일이나 되는 듯 빼빼로데이를 챙깁니다. 처음엔 몇 백 원하는 과자 한 봉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마음을 전하는 정도라 귀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백화점이나 각종 선물용품 업체에서 해가 갈수록 빼빼로데이를 즐기는 아이와 일부 어른들의 심리를 이용한 고가 전략상품을 내놓으면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처럼 달랑 과자 한 봉지를 주고받는 소박한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지난해 빼빼로데이에 아들이 받아온 선물 역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100개 정도의 빼빼로로 만든 하트입니다. 기념일을 위해 버려지는 돈들도 돈이지만 선물을 만들기 위해 낭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선물을 준 여학생을 불러다가 야단이라도 치고 싶은 생각이었답니다.

아마도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들은 오늘쯤 아이들의 심부름으로 빼빼로를 사서 포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오후가 되면 거리는 온통 빼빼로를 사기 위해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붐빌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주고 싶어도 선물을 살 만한 능력이 안돼서 마음 아플 것이고 어떤 아이는 선물을 줄 친구가 없어서, 어떤 아이는 선물을 받지 못해서 가슴 아플지도 모릅니다.

전혀 의미 없는 날에 전국의 아이와 어른들이 술렁이며 더러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의미 없는 기념일 따위를 챙기느라 돈이며 시간이며 낭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기 어렵다면 어른들이 나서서라도 잘못된 풍습을 바로잡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롯데제과 홈페이지의 빼빼로데이 홍보란
롯데제과 홈페이지의 빼빼로데이 홍보란

이런 잘못된 풍속과 제과업체의 적극적인 홍보작전이 맞아떨어진 결과 빼빼로는 매년 11월이면 다른 달에 비해 70% 이상의 매출증대를 보인다고 합니다. 무분별하게 기념일을 만들고 그것을 문화로 이어가는 세대들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풍속에 편승해 대단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제과업체 역시 풍속을 조장하고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우린 조금 냉정하게 기념일 문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면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빼빼로데이는 이미 애교로 넘길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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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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