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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져온 빼빼로들. 이게 모두 얼마치냐고 계산한다면 요즘 시대를 너무 못읽는 담임이라는 말을 듣겠죠?
아이들이 가져온 빼빼로들. 이게 모두 얼마치냐고 계산한다면 요즘 시대를 너무 못읽는 담임이라는 말을 듣겠죠? ⓒ 송주현

"이게 뭐야?"
"에이, 빼빼로데이요. 모르세요? 내일인데."

11월 11일. 긴 막대기 모양의 1자가 4개나 되는 내일이 '빼빼로데이'라는군요.

"너희들이 어떻게 알았니?"
"텔레비전에서 정다빈 언니가 그러잖아요. 11월11일이 빼빼로데이라고요."

서른두 명의 아이들 중 빼빼로가 없는 아이들은 고작 대여섯 명. 아이들 사이의 전파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홉 살, 이 아이들 모두가 빼빼로데이를 즐길 만큼 자란 건 아닐텐데 누가 이 아이들에게 섣부른 어른 흉내를 내도록 부추기고 있는 걸까요.

"이 빼빼로 누구에게 주는 건데?"
"사랑하는 사람한테도 주고요.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나 친구들에게도 주는 거예요."
"그럼 여러 개를 사야겠네? 얼마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천원, 천 오백원, 어떤 아이는 지난 추석때 받은 용돈 삼천원까지. 아홉 살 아이들의 예산이 이럴진대 이 강산의 선남선녀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빼빼로데이가 경기를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가 봅니다.

기왕이면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고백과 함께 주는 거라면 좋았을텐데...
기왕이면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고백과 함께 주는 거라면 좋았을텐데... ⓒ 송주현

제가 학생 때에도 '발렌타인데이'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블랙데이, 로즈데이, 급기야는 빼빼로데이까지. 우리 사회가 연인들의 사랑을 억압하는 유교사회로 되돌아 갈 리도 없건마는 왜 매스컴에서는 이리도 사랑을 부추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우리 반 귀여운 아홉 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할 건 뭐냔 말입니다. 이 날이 제과회사의 광고 카피대로 그토록 사랑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기 위한 거라면 차라리 부모님께 빼빼로 드리기 캠페인 같은 걸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빼빼로 하나에 얼만데?"
"100원(길다란 스틱 모양)도 있고요. 아몬드 빼빼로는 700원, 여러 개 세트로 들은 건 만원도 넘어요."

"비싼 빼빼로 산 사람? 넌 왜 비싼 걸 샀니? 돈이 많이 드는데?"
"그래야 잘 받아주죠."

사랑을 이루는 데 달콤함으로 한 부조하겠다는 제과 회사에게 뭐라 할 말이 있으랴마는 손으로 꼭꼭 눌러 쓴 편지보다 더 화려한 포장으로 덧씌운 밀가루와 코코아 분말의 혼합체로 상징되는 요즘 아이들의 사랑 문화에서 아득하게 길을 잃습니다.

"어쩌지? 선생님은 이가 썩을까봐 빼빼로 먹기가 겁나는데."
"그럼 선생님네 엄마 드리세요. 선생님은 엄마를 사랑하시잖아요."

빼빼로처럼, 아니 그보다 더 달콤한 녀석들. 그래, 이왕에 함께 즐겨야 하는 문화라면 가족끼리 길다란 빼빼로(다른 그 무엇이라도 좋고) 하나씩 나누어 먹으며 "사랑해요"를 외치는 날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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