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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시민행동이 2일 내놓은 '빅브라더 보고서'에 제시된 전자태그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상 시나리오. 기술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 3자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일상의 문제가 될 수 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이 2일 내놓은 '빅브라더 보고서'에 제시된 전자태그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상 시나리오. 기술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 3자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일상의 문제가 될 수 있다. ⓒ 함께하는시민행동

지난 6월 초 지하철 2호선 역사에서 근무하는 공익요원 박준성(가명. 22)씨는 하루 종일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 속에서 일했다. 지하철공사가 공익요원들에게 근무실태 점검용 전자칩을 목에 걸고 근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공익요원들이 몸에 전자칩을 지니고 다니면 감독자는 전자칩을 읽는 리더기를 통해 공익요원들의 근무위치와 시각을 기록했다. 공익요원들이 일종의 '감시대상'이 됐던 셈이다.

인권침해 논란이 일어 지금은 없던 일이 됐지만 박씨는 아직도 그때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박씨는 "전자칩을 목에 걸고 근무하라고 했을 때 마치 사육되는 가축이 된 느낌이었다"며 "당시 동료 공익요원들 사이에서도 이같은 불만이 굉장했다"고 전했다.

지하철 공사가 도입하려했던 시스템은 비록 사람이 직접 하던 근무 기록을 전자칩과 리더기가 대신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는 전자태그(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가 모든 상품과 사물에 부착되는 미래 사회 프라이버시 침해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머지않은 미래, 모든 사물에 전자태그 부착

전자태그(RFID)란 깨알보다 작은 전자칩(크기 0.4㎜이하)으로, 그 안에 상품의 정보를 넣어 해당 상품에 부착하게 된다. 전자태그를 통해 상품 하나하나에 고유한 아이디를 부여하고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리더기로 칩에 저장된 상품 정보를 읽어 낼 수 있다. 현재 바코드의 역할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대체하게 되는 것. 특히 전자태그와 리더기는 무선으로 통신하기 때문에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태그에 담겨있는 정보를 읽을 수 있다.

전자태그가 상용화된 대표적인 사례는 교통카드. 교통카드의 통신 거리는 대략 60㎝정도이고, 다른 태그들은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에 따라 100m까지 통신이 가능하다. 통신 거리는 향후 기술 발전에 따라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통신부는 2010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자태그 사업을 차세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중점 추진하고 있다. 정통부는 전자태그 보급을 기반으로 한 유비쿼터스 산업이 향후 한국산업을 주도할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전자태그는 유통과 물류는 물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국방부가 총, 탄약, 군화, 군복 등 모든 물자에 전자태그를 적용할 경우 물자 관리의 편리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현재로서는 전 군에 있는 총의 종류별 개수를 조사하려면 각 부대별로 수를 파악해 윗선으로 보고하고 이를 다시 취합해는 절차를 거쳐야하지만, 모든 총에 전자태그가 부착돼 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리더기를 통해 총의 개수는 물론 총 하나하나의 위치와 이동상황까지도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누군가 총과 실탄을 빼돌렸다고 해도 부착된 전자태그가 제거되지 않는한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전자태그(RFID) 시스템 구성도
전자태그(RFID) 시스템 구성도 ⓒ 함께하는시민행동
일상생활에서도 전자태그가 가져올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모든 식료품에 전자태그가 부착되면 이제 음식을 해먹기 위해 장을 볼 일이 사라진다. 냉장고의 리더기를 통해 현재 냉장고 안에 어떤 음식이 있고 부족한 음식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해 자동으로 필요한 것을 주문하게 되기 때문.

또 현재 이동통신 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농축산물의 원산지 추적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가짜 한우나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는 일도 없어진다. 소고기에 전자태그를 부착하고 소비자들은 리더기 기능을 갖춘 휴대폰만 갖다대면 구입하려는 고기가 언제 어디서 도축이 돼서 어떤 경로를 통해 여기까지 흘러왔는지까지 모든 정보를 휴대폰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자태그, 과연 편리함만 가져올까?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과 효율성의 이면에는 거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전자태그의 편리함은 모든 상품에 대한 정보와 위치가 실시간으로 추적되고 그 정보가 기록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리함과 효율성의 이면에는 개인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부족한 식품을 자동으로 주문하는 서비스만 해도 이를 제공하는 식료품 가게는 어느 가정에서 오늘 어떤 음식을 해먹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현재 냉장고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전자태그로부터의 보호장치가 없다면 한 개인이 지니고 있는 옷이며, 서적, 신문, 신발 등 모든 상품의 정보가 제3자에게 노출될 수 있다. 옷이나 기타 상품의 가격을 통해 그 사람의 부의 정도가 대략 파악이 되고, 가지고 있는 신문이나 서적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 등을 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

특히 전자태그와 무선통신을 통해 정보를 읽는 리더기가 휴대전화와 결합되는 등 개인마다 리더기를 갖게 된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각 기업과 공공기관들의 전자태그 도입에 대한 저항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에서 질레트(Gillette)가 효율적 재고관리를 위해 면도기에 전자태그를 부착한 것과 베네통(Benetton)이 자사의 의류에 전자태그를 부착하려는 시도 맞서 시민사회단체들의 불매운동을 비롯한 저항운동 등은 잘 알려진 사례다. 또 2003년 11월 영국의 30여개 시민단체들이 전자태그 시스템이 소비자들의 사생활과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연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전자태그 저항운동 일어나

전자태그 보급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다. 유승화 아주대 교수는 "전자태그의 확산에 있어 걸림돌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 사생활 침해우려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는 전자태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기위한 여러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다. 올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유타주에서 통과된 전자태그 소비자 보호 관련 법안은 상품에 부착된 전자태그로부터 개인 식별정보를 얻는 것을 금지하는 한편, 소비자에게는 제품에 부착된 전자태그의 기능을 정지시킬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일본도 경제산업성이 올 1월 '전자태그 기술에 관한 프라이버시 보호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보통신부가 산업적인 측면에서 전자태그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에 비해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정통부 개인정보보호전담팀의 한 관계자는 "전자태그 도입에 따른 프라이버시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에 있다"면서도 "전자태그가 실생활에 본격 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있는 만큼 이 안이 법제화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기술 도입에 앞서 보호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삶의 질을 높여야할 전자태그가 도리어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가 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인 함께하는시민행동의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정통부는 정보기술(IT) 산업정책을 펴면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법적 장치를 사전에 마련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에 대처하는 식"이라며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전자태그와 관련한 프라이버시보호 장치가 이미 입법이 된 만큼 우리도 (보호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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