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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 조도초등학교 관사분교생 12명 전원이 오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서울 구경길에 오른다. 이 아이들의 서울 여정에 청와대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여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교생이 12명에 불과한 이 미니분교 학생들이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학교 분교장으로 재직 중인 이근희 선생님의 공이 컸다. 삼성 에버랜드가 전국 3백여 개 미니분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우수사례 공모전에 이 선생의 사연이 뽑힌 것이다.

▲ 진도조도초등학교 관사분교생들과 선생님들
ⓒ 김두헌
진도 조도 관내 관사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약 1시간 20여 분이나 철선을 타고 들어가야 한다. 배도 하루에 한 번밖에 왕래하지 않는다. 관공소는 학교와 보건출장소 뿐이고 편의 시설은 전혀 없다.

총 40여 세대, 60여 명의 주민들이 생활하지만 90% 이상의 주민들이 노인층이다. 특히 관사분교 전교생 12명 중 4명의 아이들만 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며, 나머지 8명의 학생들은 조부모 슬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같은 도서벽지에 올 3월 초, 교직경력 23년차의 이 선생이 부임했다. 이 선생은 수기 공모에서 학생들과의 첫 만남을 '가슴 아픈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겨우내 찬바람에 시달려 손과 얼굴이 불그스레 물들다 못해 검붉게 착색되어 있더라는 것.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입학식과 시업식을 하고 가정환경 조사를 해보니, 9명의 전교생(부임 초기 전교생 수) 중 5명의 어린이가 조부모 슬하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 선생은 부임 첫 날 이후 학생들과 한 가지를 약속했다. 선생님과 인사를 할 때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선생님께 꼭 안길 것을.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아이들도 선생님들이 먼저 두 팔을 벌려 힘껏 안아주기를 반복하자, 엄마를 일찍 여의고 사랑에 굶주렸던 영근이가 먼저 어색한 몸짓으로 안겼고, 이어 다른 아이들도 안기는 일에 익숙해졌다.

이 선생은 이후 교실을 '사랑의 보금자리'로 꾸미기 시작했다. 알파벳 우레탄 블럭을 구입, 바닥에 깔아 아이들의 독서방을 만들고, 낡은 책장을 밝은 노랑색으로 칠했다. 모터를 설치해 물을 끌어 올리고 싱크대를 구입, 실내에 설치해 청소하는 일을 조금이나마 편리하게 했다.

특히 조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들의 청결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겨우내 목욕을 하지 않아 몸 구석구석 때가 눌어붙어 있었던 것은 물론,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바람에 좋지 못한 냄새가 온 교실에 진동했더라는 것.

이 선생은 견디다 못해 악취 살균 제거제를 사다 뿌려보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이 선생은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광주 백일초등학교 교장·교감 선생님께 깨끗한 헌옷을 수집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1백리터들이 비닐로 15봉지나 되는 옷 보따리를 받아볼 수 있었다.

이 선생은 "헌 옷을 물려 입는 풍습은 좋은 것"이라며 아이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격려하자 학부모와 아이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그날 이후 학생들은 옷을 갈아 입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악취도 사라졌다.

또 이 선생은 함께 부임한 남자 선생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일정으로 진도 읍내로 목욕탕 체험을 나가기도 했다. 알몸으로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사랑을 확인한 사제동행 목욕시간을 통해 사제지간의 정이 더욱 돈독해졌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또 관사도는 객선이 하루 한 번 운행하는 만큼, 큰 맘을 먹지 않는 한 육지에 나가는 일은 어려운 행사이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여지없이 발이 묶여버린다. 더군다나 생필품이나 그 흔한 과자를 파는 가게도 찾아볼 수 없어, 학생들의 먹거리라고 해봤자 놀이 시간에 제공하는 멸균 우유 한 개가 고작이다.

이 선생은 고민 끝에 광주집에 있는 '식빵제조기'를 가져와 버터와 우유, 달걀을 넣고 빵을 구워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선생님의 관사에서는 날마다 빵 굽는 냄새가 향기롭게 풍겨 나오고 아이들은 따끈한 빵 한 조각에 환호했다. 이후 관사분교생들에겐 하루일과 중 놀이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다.

이 밖에도 이 선생은 별다른 놀거리가 없어 '남는 것이 시간'뿐인 학생들에게 방과 후 교육 활동으로 각각 미술과 음악을 가르쳤다.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붓글씨와 그림, 악기 연주법을 가르쳤다. 아침일찍 학교 공부가 시작돼 어둑어둑 해가 질 때까지 선생님과 온종일 생할하는 학생들, 노는 게 지겨웠던 아이들에게도 뭔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또 전화모뎀 접속으로 속도가 느린 학교 컴퓨터를 타자 능력 배양을 위해 활용, 아이들이 타자 치는 속도가 빨라져 내년쯤이면 워드자격시험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또 관사분교에는 6백자 한자 읽기를 학교 재량활동으로 편성, 날마다 아이들 글 읽는 합창 소리가 섬안에 끊이질 않고 울려퍼지고 있다.

이 선생의 아이들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앰프 시설과 스피커, 마이크가 없어 적막하기만 했던 학교에 부산 컨테이너 부두공단과 자매결연을 맺어 필요했던 기자재를 지원받았다. 이후 관사도에는 아침 등교시간, 점심시간에 아름다운 동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또 이 선생은 광주법원 산하 청소년범죄예방선도위원회의 초청으로 광주 구경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광주에 다녀오기도 했다.

관사분교생들은 또 올 2학기 초 광양컨테이너 부두공단과 자매결연을 맺고, 광양제철공단, 광양 순천의 선진 학교를 방문하는가 하면 광주로 가서 담양온천에서 목욕탕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이 선생의 헌신적인 교육 미담이 미니분교장 수기 공모에 당선, 급기야 이 섬 아이들이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선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너무 생색을 내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며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가슴 속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이를 계기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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