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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덩이가 땅으로 꺼져내리는 소리들은 아주 어마어마 했습니다. 지진이 난 것 같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바리의 발 밑에 있는 땅도 위 아래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중심을 잡기 힘들어진 바리는 백호를 힘껏 껴안았습니다. 백호는 바리가 안고 있는 목을 땅으로 최대한 기울여서 바리가 완전히 땅바닥에 주저앉도록 했습니다.

지반을 심하게 흔들면서 이미 바리 앞까지 땅이 주저않고 있었습니다. 바리 옆으로 흐르고 있던 시냇물도 순간 폭포수가 되어 아래로 흘러버렸습니다. 바리와 백호가 앉아있는 손바닥 만한 곳만 남겨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주변의 땅이 꺼지자 바리는 또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어 아주 소란했지만, 호종단의 낮은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네가 내 주변으로 가까이 올 수만 있다면, 그땐 내가 다시 너와 이야기를 해주마. 정말 가신들이 말한대로 가야할 길을 전부 가야한다면 너도 이곳으로 건너올 수 있겠지. 만약 이곳으로 건너오기가 두렵고 떨리다면 백호에게 부탁해서 저 백두산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려므나, 아마 산신령 할아버지가 뭐라도 해줄지 아느냐?”

비꼬는 것 같지만, 호종단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마치자 시끄럽던 소리가 순간 멈추었습니다.

바리 주변의 땅은 아래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은 골짜기로 패여있었습니다. 호종단에게 가기 위해 바리와 백호를 지탱하고 서 있는 그 손바닥 만한 섬 같은 절벽을 따라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헤아려보기도 힘들어보였습니다. 게다가 백호와 바리가 간신히 서 있는 그 손바닥 만한 땅덩이리마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겁내지 말자구… 바리는 용감해서 지금 전혀 겁내지 않지? 우리 여기까지 잘 견디어 왔잖아.”

바리가 웃음을 띠으면서 말했습니다.

“겁 안나, 너도 내 옆에 있고, 그리고 나를 도와주는 분들이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는데. 천문신장부인이 주신 천주떡도 있고….”

그런 깊은 골짜기가 지평선까지 늘어선 협곡 저 너머 보이는 호종단은 이전보다 더 멀리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그 키 큰 사람이 앉아있는 서 있는지조차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바리는 주머니에서 천주떡 하나를 꺼내어 입에 넣었습니다. 버드나무 가지를 가지러 갔을 때 먹었던 그 맛이 다시 입안에 맴돌았습니다.

달콤한 것도, 시큼한 것도, 씁쓸한 것도 아닌 가슴 속을 환하게 훑고 지나가는, 봄바람 같은 시원한 기운이 마음에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혀와 코로 느끼는 맛이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하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오물 오물 오물
 
천주떡을 삼키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전과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저 아래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시냇물들이 강물이 된 것처럼 콸콸콸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잠시 적막하던 협곡 위에 조용한 노래가락이 흘렀습니다.
 
날 제 빈 그릇
들어올 제 찬 그릇 수레 대어 실어 들어
먹고 남게 도와주고 쓰고 남게 도와주소서.
우리 황토 터주 대감
모든 염려 모든 걱정 모두 모두 모아 담아
우리 소원 그 그릇에 담아 이 황토에 뿌립니다.
밤이 되면 불이 밝고 낮이면은 물이 맑고
온세상 환한 세상 갖추어 맑게 해주옵소서.

터주신님이 가르쳐준 그 노래를 바리는 조용히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조용한 목소리는 협곡을 타고 메아리가 되어 멀리 멀리 퍼져나가는 듯 했습니다.

골짜기마다 굽이쳐 흐르는 그 노래소리는 땅과 바리 모두 하나가 되어 같이 부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노래는 땅과 바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이 땅도 하늘도 바다도 강도 밤이 되면 불이 밝고 낮이면 물이 맑은 그런 환한 세상이 오기를 모두 모두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아래 바닥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커다른 황토무더기였습니다. 그것은 바닥에서부터 그냥 길쭉하게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냥 막대기처럼, 아니면 새로 솟는 나무순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그 황토무더기는 바리 옆을 순식간에 지나쳐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았습니다.

 “아!”

바리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솟아났습니다. 그 황토무더기는 하늘에 닿을 듯 오르기를 멈추고 바리 쪽을 향해 방향을 돌렸습니다. 바리와 얼굴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이르자 그 흙무더기 안에서 낮 익은 얼굴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바로 터주신이었습니다. 바리는 그 터주신님을 향해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터주신은 바리를 바라보면서 그냥 미소를 짓고 잇었습니다. 그리허게 미소를 잠시 지으시던 그 흙무더기 속의 터주신님은 금방 다시 저 아래로 꺼져버렸습니다.

“어….”

무언가 대단한 일을 기대했던 바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금방 가버리시
다니….

“바리야, 저기 봐!”

백호가 어딘가를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평선 쪽에서 무언가 검은 구름 같은 것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검은 점 같은 것이 수없이 모인 채 바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새들이었습니다. 까마귀, 까치. 제비, 독수리, 부엉이 등 날개를 달고 있는 새들은 전부 한몸이 되어 바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날갯짓 소리가 골짜기 전체에 울려퍼졌습니다.

바리는 일어나 그 새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터주신님이 바리를 도와주기 위해 보내는 새들임이 틀림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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