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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들은 마침내 바리 머리 위까지 날아와서는 바리의 발밑 정도에 내려와서 전부 길게 늘어섰습니다. 견우과 직녀가 만날 때 까치들이 놓아준 다리 같았습니다. 고구려의 주몽이 형제들의 음모를 피해 도망할 때 강가에 다리를 놓아준 거북이들 같았습니다. 그 새들은 웅장한 날개 짓 소리와 함께 금방 바리 앞에 긴 다리를 놓았습니다.

바리는 새들이 만들어진 다리에 한발을 디뎠습니다. 부드러운 소파를 밟는 기분이었지만, 바리와 백호가 올라가도 충분할 만큼 튼튼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다리 위에 완전히 올라섰습니다. 바리 앞으로 그 새들이 만들어준 다리가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바리와 백호는 새들이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서 호종단이 서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냥 기다란 허수아비 같기만 했던 호종단이 점점 더 눈 앞에 가까이 들어왔습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그의 긴 옷과 긴 머리카락, 그리고 땅으로 끌릴 만큼 길다란 소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도 천천히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새들이 만들어준 다리를 밟고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에도 호종단과 그의 개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단만이 가끔씩 고개를 자기 주인에게 돌린 채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뿐, 그렇지 않다면 마치 밀랍인형으로 만든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새들을 뒤에서 앞으로 날아다니면서 끊임없이 다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호종단이 만든 협곡은 새들이 아무리 길게 이어도 끝에 닿지 않을 것처럼 길고 깊었습니다. 바리가 지나가면 뒤에 있던 새들이 다시 앞으로 날아들어 새로운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새들의 무리가 바리와 백호의 앞길을 인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떼를 지어서 바리의 앞으로 이동하는 새들의 무리였습니다. 날개 짓 소리 또한 어마어마 했습니다.

 호종단 얼굴에 가득 들어차 있는 주름까지 바리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호종단은 협곡의 끝으로부터 약 100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있었습니다. 마침내 바리와 백호는 협곡이 끝나는 곳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있는 새들은 인사라도 하는지 다시 한번 바리와 백호 앞으로 떼를 지어 날아갔습니다. 호종단은 새들의 무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지나가면 호종단이 어디론가 도망쳐 버릴 것만 같아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새들이 지나간 다음에도 호종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습니다.

 바리가 말했습니다.

 “옷이 아주 멋지시네요. 제가 아저씨에게 왔으니 더 이야기를 해보실까요? 무슨 수수께끼를 더 내시겠어요, 아니면 무슨 도술을 더 부리시려구요?”

 그때였습니다. 호종단의 옆에서 가만히 서있던 송아지만한 수단이 갑자기 바리와 백호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개는 파란 가스불 같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바리의 눈에 그 개는 그냥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 개는 뼈도 없고 살도 없고, 오직 파랗게 타오르는 불길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개는 바리와 백호를 잡아먹을 듯이 불을 뿜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바리야, 위험해!”

 백호가 바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바리는 이전에 호랑이굴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단을 품에 안기라도 할 듯이 팔을 벌리고 서있었습니다.

  크허엉

 수단이 내뱉는 소리였습니다. 그 불길이 순식간에 바리에게 날아들었습니다. 백호는 바리를 보호하려고 바리 앞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순간 백호와 바리는 수단이 만드는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백호야!”

 바리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화염 속으로 뛰어든 백호를 얼른 끌어안았습니다. 백호와 바리는 웅크린 채 화염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마지막 빛을 발하며 타오르는 횃불의 심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협곡 아래에서 무언가 솟아올랐습니다.

바로 물줄기였습니다. 커다란 폭포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병풍을 만드는 것 같기도 했고, 물줄기가 커다란 날개를 달고 하늘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물줄기는 화염 속에 웅크리고 있는 바리와 백호를 보듬어 주듯이 감싸 안았습니다.

 바로 그때 그 거친 물줄기를 뚫고 나비 한마리가 날아 나왔습니다. 조그만 건드려도 부서질 듯한 약해보이는 날개를 가졌지만, 그 나비는 그 어마어마한 물살을 헤치고 나타나서는 포롱포롱 날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호종단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호종단은 그 나비를 보고 어딘가로 쫓아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손을 저었지만, 나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호종단의 눈 앞에 멈춘 그 아름다운 나비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호종단님?”
 
“네가 대체 누구야?”

 호종단은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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