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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에인이 군주에게 선전포고 병을 보낸 잠시 후였다. 그런데 그 연락병이 되돌아오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적이 온다! 적이 먼저 선수를 치고 온다!"

얼른 말에 올라 살펴보니 정말로 적군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창기병 마차를 선두로 군사들이 구름처럼 달려오는 것이었다. 강 장수는 당황을 했다. 작전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게다가 자기 군사들은 막 식사를 끝낸 중이었고 말들에게도 이제야 여물을 먹이는 중이었다.

"무장하라! 무기만 들고 일단 후퇴하라!" 적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천막이나 기물을 거둘 시간이 없었다. 군사들은 무기만 챙겨들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직 갑옷을 착용하지 못한 기병들은 옷과 무기를 손에 든 채 말에 올랐다.

2백보도 피하지 못했는데 벌써 적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버려진 천막에 불을 질렀고 기물을 뒤엎거나 파괴했다. 또 창을 들고 뛰어오던 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마차들을 들어 엎었다.

강 장수는 자기 군사들을 돌아보았다. 벌써 모두 갑옷을 입었고 완전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적들이 기물을 파괴하는 그 만큼의 시간을 번 것이었다. 강 장수는 천지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반격하라!"

기물파괴에 정신이 팔려 있던 적병들도 곧 재정비를 했고 보폭을 줄였던 마차들도 다시 속력을 올려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서서 달려오는 마차가 열대였다. 한 마차엔 네 명의 창기병들이 창을 겨누어들고 돌진해왔다.

"표창! 표창을 날려라!"

그들이 좀더 근거리로 달려들 때 표창부대가 표창을 날렸다. 나귀들이 쓰러졌고 창기병들은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그러자 적병들이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은 빗발처럼 날아왔다.

"유격병은 돌진해서 화살부대를 쓸어라!"

20인의 돌진 기병들이 적지로 뛰어들었다. 선두가 무너지고 있었다. 강 장수는 다시 외쳤다.

"2진 돌진하라! 3진도 합세하라!"

굉장히 위험한 대응 방식이었다. 자칫하면 기병과 말들을 한꺼번에 모두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2진과 3진이 뛰어나갔다. 2진의 선두 수명도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주인을 잃는 말들은 우왕좌왕했고, 적들은 그런 말들은 포획하려 들었다. 그러나 말이 용케 달아나면 집중적으로 창을 날려 기어이 그 말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때 4진이 뛰쳐나갔다.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달려 나간 것은 명령보다 상황이 더 다급했던 때문이었다. 강 장수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4진이 무너지면 5진이 달려 나갈 것이고 그러면 기병들이 전멸할지도 몰랐다. 강 장수는 다시 외쳤다.

"보병들 뭘 하는가! 진격하라!"

그때서야 보병들이 와! 하고 소리치며 달려나갔다. 강 장수는 피터지는 목소리로 '산병은 옆구리를 쳐라! 기병은 적장을 찾아 그 목을 베라!'고 외쳐댔다. 병사들이 일시에 흩어져서 사방에서 조여들며 공격했고 그러자 적들도 주춤했다.

"적들이 겁먹었다. 밀어붙여라!"

아군들이 더욱 다잡아들어 창날을 휘둘렀다. 여기저기서 창 부딪히는 소리, 비명소리가 진동을 했다. 적장은 비로소 후퇴명령을 내렸고 적병들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올 때는 선두였으나 물러날 땐 후진이 된 적장은 그 다급한 중에도 위신을 차려 엄포를 놓았다.

"좋다! 내일 다시 보자!"

그리고 적장의 당나귀가 막 등을 돌릴 때 표창 하나가 쌩, 하고 날아가더니 적장의 등에 꽂혔다. 적장은 비틀거렸으나 곧 중심을 잡고 일행들 속에 묻힌 채 사라져갔다.

만약 이때 은 장수가 마주 치고 왔다면 적을 그렇게 돌려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은 장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연락병이 군주에게 도전장을 가져가는 길에 들릴 참이었으나 그 연락병이 떠나지 못했던 때문이었다.

아군들의 주둔지는 한마디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죽은 말은 물론 아군들의 시신과 부상자들이 사방에 널렸고 마차와 천막은 낱낱이 파손되었으며 기름을 실었던 마차에서는 아직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 장수는 시체가 널린 곳을 돌아보았다. 말과 함께 죽은 기병들, 온 몸에 창을 받고 쓰러진 말, 말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시신…. 그 기병들은 본국에서부터 자기 손으로 선발해온 군사들이었다.

그 기병대가 떠나올 때 궁전 앞에는 가족들이 몰려나와 두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린 것들은 자기 아버지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말 탄 모습만 너무 멋이 있다고 손뼉을 치기도 했다.

그 어린 것들 중엔 자기도 커서 기병이 되겠다고 몰래 꿈 한 자락을 간직하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또 이 기병들이 그랬던 것처럼.

강 장수는 사랑했던 부하들의 시신을 묵묵히 지나가면서 속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대들은 축복을 받은 것이네. 어릴 때부터 품어온 꿈이 기병이었지 않았던가? 그 꿈을 발현했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그대들은 장렬하게 전사했고 그것은 그대들의 꿈, 그 열매이지 않았던가. 그러하네. 그대들은 꿈을 한껏 키웠고 또 키울 수 있었고 이제는 그 커다란 꿈을 송두리째 안고 그렇게 떠나는 것이네….'

강 장수는 흐르는 눈물을 몰래 훔쳐낸 후 뒤따르는 부하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서둘러 정리하라. 전사자는 인원과 신분을 파악하고 죽은 말들은 한군데로 끌어모아라."

군사들 전원이 나서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두 말이 없었고 침통했다. 농담도 씨름도 잘하던 한 아장의 시신을 수거할 때는 우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날 손실은 기병 전사자가 50명, 말들이 40여 필, 보병은 1백여 명, 부상자가 2백을 넘었다. 적병들의 시신도 50여 구나 되었고, 부상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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