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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태극기가 게양된 모습
아파트에 태극기가 게양된 모습 ⓒ 김재경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 던 어른님 벗 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

학창시절 광복절이면 이 노래를 부르며 학교에서 태극기 달기를 필수 교육으로 받았다.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가난해서 쓰러져 가는 초가집 사립문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에 여지없이 태극기 물결이 휘날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세대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오히려 태극기가 펄럭이는 가정이 이젠 신기할 정도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경일이면 여기저기 다니며 태극기가 달린 집을 세여 보는 별난 버릇이 생겼다. 기자가 살고 있는 평촌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아도 동마다 태극기가 게양된 세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미미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부터 태극기 달기를 확산시키고 싶은 생각에 부흥동 염창석 동장님을 찾아갔다. 염 동장님은 "애국심 고취와 나라사랑 차원에서 좋은 생각"이라며 "부흥동 부녀회와 통친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잘된 아파트에는 시상까지 하겠다"며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동사무소에서는 적극적으로 아파트마다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 공문을 게시하고, 방송을 통해 주민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태극기가 없는 세대는 통장들을 통해 주문을 받아서 시청 연금매점 가격으로 저렴하게 공급했다.

그 결과, 지난 현충일에는 유일하게 부흥동 아파트촌에는 종전보다 훨씬 많은 태극기가 펄럭였다. 염 동장님은 "관내를 순찰했을 때 종전보다 대체적으로 태극기를 많이 달았지만, 그 중에서도 부영 아파트가 제일 많이 달았다"고 말했다.

관악마을 부영아파트에 태극기가 월등히 많이 달리게 된 것은 서경심 부녀회장이 알뜰장터와 재활용품 분리수거로 마련된 기금을 태극기 구입시 절반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부영아파트에서 태극기 달기 운동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 김재경
4년 전에도 태극기가 없는 세대에 부녀회 기금을 지원, '태극기가 휘날리는 아파트'로 지역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부영아파트의 통장단과 부녀회원들은 지난, 7월 3일에도 "어떻게 하면 태극기 달기 운동이 성공할 것인가"를 관리실에 모여 열정적으로 토론했었다.

유용순 통장: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국경일이면 당연히 태극기를 다는 걸로 알았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몰라요. 학교에서부터 학생들 중심으로 태극기 달기 운동이 확산되었으면 해요."

최옥이 부녀회원: "태극기를 달자고 말하면 '언제부터 애국심을 가졌느냐'고 항변하는 주민들도 있어요. 다른 단지보다는 우리 아파트가 우수한 편이지만, 제헌절에 이어 광복절에도 전 세대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전명자 부녀회원: "국경일이 일요일이나 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집을 비우기는 세대가 많아요. 그럴 때는 전날 저녁부터 달도록 방송을 하자구요. 그래도 안 다는 세대는 통. 반장이 인터폰 하면 어떨까요"

박정수 통장: "통장으로 위촉되며 10년째 동사무소와 주민들 사이를 오가며 태극기 판매에 전도사 역할을 해왔지요. 동대표회의에도 협조를 요청했어요."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김영만 동대표는 "그래도 우리단지는 우수해요. 서울 강남 아파트에 갔더니 세 개 동을 세어보니 태극기 달린 집이 다섯 집이더라구요."라며 허탈해 했다.

태극기 달기 운동의 여파 때문일까? 제헌절 (7월 17일)에 이어 광복절인 오늘도 위풍당당하게 휘날리는 태극기의 자태는 더욱 아름답게 부영 아파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었다.

광복 예순 돌을 앞둔 지금 친일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고 역사의 진실마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늘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애국으로 이어지는 이런 마음과 행사도 좋지만, 작은 실천인 가정에서부터 태극기 달기 운동이 확산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날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국민들의 의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취재하며 만난 한 시민은 " 집을 나오기 전 대충 세어보니 우리 아파트에는 태극기 걸린 집이 세 집이더군요. 말하면 뭐해요. 지난 현충일에는 관공서마저 조기가 아닌 온기가 걸렸더라구요."라며 씁쓸해 한다.

부흥동을 기점으로 '태극기 달기 운동'이 오는 개천절에는 안양시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되었으면 한다. 물결을 이뤄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습을 온 국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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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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