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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살리려고 하지 마라' 청와대 앞에서 36일째 단식 농성 중인 지율스님은 인터뷰 내내 한진중공업 고 김주익씨와 고 김선일씨 이야기를 꺼내며 문제해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지난 6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이 오늘(4일)로 단식 36일째를 맞았다.

현재 진행중인 고속철도 천성산구간 공사를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중단하고,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하라는 스님의 절박한 요구에 대해 정부 당국은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율 스님은 "정부로부터 더 이상 문제해결의 의지를 기대할 수 없다"며 "자신이 죽음에 이르는 한이 있더라도 천성산을 잃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고 김선일씨가 죽음 직전 가졌던 절망감이 이해된다"며 주위를 숙연케 하기도 했다.

최근 1주일가량 지율 스님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진행하지 못하고 모처에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지율스님의 단식농성을 강제로 중단시키기 위해 30~40명의 내원사 스님들이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3일 저녁 7시 어렵게 마련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율스님은 "시민단체를 회유하고 조계종을 압박해 천성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지율스님은 "천성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생명을 경시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단식을 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결코 놓지 않겠다"는 결연함을 보였다.

지율스님은 "천성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천성상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일부 시민환경단체에 대한 배신감도 높다.

"차라리 혼자 이 문제를 안고 가는 게 편하다"는 지율스님은 "천성산을 지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천성산 정신 그 자체"라며 생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의 환기를 당부했다.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등 33개 불교단체는 3일 오후 1시 서울 조계사에서 '도롱뇽 소송인단 100만인 서명 범불교운동본부(준)' 발족식을 갖고 '천성산 살리기' 해법 모색에 나섰다.

다음은 3일 저녁 7시 지율스님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 단식농성 초반 '도롱뇽 책갈피'를 만들었던 지율스님은 최근 바느질로 '천성산 살리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 단식을 시작한지 35일이 지났다.
"'일각이 여삼추'라고 35일이 그냥 하루 같다. 밖에서는 시간을 세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변한 게 없으니까 날짜를 세고 않고 있다. 예전 같으면 오늘이 몇 일째라고 붙여놓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안하는 이유가 있다. 더 이상 정부에게는 기대할 게 없는 만큼 정부가 닫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는 모르겠지만 환경문제만큼은 많이 닫혀 있다."

- 주위에서 많이 염려한다.
"그분들한테 그런다. '나를 살리려고 하지 마라. 이제는 원치 않는다. 나를 살리려고 하면 천성산을 잃어버리니까 나는 싫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대화와 타협 수준을 3년 동안 지켜보니까 편법 아니면 기만일 뿐이다. 더 이상 정부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 언로가 막혔다는 거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와 있나? 그것은 또 다른 화두다. 정부가 답을 가지고 있지 않고 들을 귀나 말할 입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철저히 안했다. 지역민 70%가 공사에 반대했고, 대통령이 세 번에 걸쳐 공약하고, 민정수석·도지사·시장·장관이 모두 다 재검토 하겠다고 약속한 사안이다."

"정부가 천성산에 보인 건 기만과 편법 뿐"

ⓒ 오마이뉴스 김태형
- 단식 이후 정부 측에서 연락이 없었나.
"전혀 없었다. 정부가 기껏 하는 일은 시민단체를 회유하고 조계종에 압력을 넣는 것이다. 정부가 잘 하는 게 그런 건가 보다. 민정수석이 처음 단식 할 때 내려와서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 '원점에서 재검토 하겠다'고 했었다. 지금 그 분이 사회문제 수석이 됐는데 월급은 받는지 모르겠다. 2대 국책사업 현안이고 코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내다보지 않고 있다."

- 재판 진행중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 할 것을 요구했는데.
"재판부가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는데도 그냥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다. 이 정부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이렇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문제의 중요성이나 자신들이 이야기한 것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인식한 게 아니고 내 사후대책이나 세우고 있는 것이다. 고 김선일씨 사건하고 거의 비슷할 거다. 아니면 병원으로 옮기거나 할 거다. 속이 상해서 이 부분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 단식을 시작할 때 들었던 생각을 회상해보면.
"이제 고인이 된 한진중공업 김주익씨를 많이 생각했다. 크레인 꼭대기에서 100일 넘게 농성을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 김주익씨가 가졌던 절망감을 이제는 이해한다. 고 김선일씨가 그런 상황에서 살려달라고 했던 절망도 이해한다. 한 사람이 어떤 문제의 책임을 안고 견뎌내야 하는 어려움이 깨닫게 됐다.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종교인인 내가…"

고 김주익·김선일씨가 가졌던 절망감 이해된다

- 무엇이 이렇게 절박한 단식에까지 이르게 했나.
"만약 생명문제가 아니라 인간 문제라면 이렇게 싸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던 생명에 대한 철저한 경시를 읽을 수 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들여다보고 있고, 종교인으로서 그 책임을 내가 안고 가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단식을 하는 이유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놓지 않겠다는 어떤 결연함 같은 것이다."

- 불교계 일부에서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 시민단체가 안 움직이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왜 안 움직이겠는가. 다 이유가 있다. 아까 정부가 로비스트 같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만약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 좋은 데 가서 좋은 생각을 하고싶지 정부와 싸우기 싫다. 그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든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제는 정부가 어떻게 하든 내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 '도롱뇽 친구'들을 중심으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어떤 큰 단체나 모임보다는 그게 내 희망이다. 불교계는 북한산 문제 등을 통해서 이미 잃을 것을 다 잃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불씨란 커지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다. 100만인 서명운동이 잘 되면 재판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천성산을 살리기 위한 희망을 이야기하자면.
"천성산은 사람이 지키는 게 아니다. 천성산의 정신이 산을 지키는 것이다. 천성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어떻게 보면 도롱뇽 소송이나 비구니 한 명의 목숨이라는 작은 문제가 걸려 있지만, 그게 바로 건국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고속철도 공사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절망한 적이 없다. 아무리 정부에서 어떻게 말을 해도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다 함께 만족할만한 방안을 찾으리라 생각한다."

▲ 지율스님이 3일 청와대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뷰 내내 지인들의 지지방문이 이어졌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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