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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물외'라고 불렀던 오이
ⓒ 이종찬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그 해 여름은 너무나 무더웠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여름 방학을 마악 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마구 쏟아지던 장대비는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비음산 아래 우리들의 초록빛 꿈처럼 뭉게구름을 또르르 말고 있던 못물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철사 바늘에 보리밥풀을 달아 송사리를 낚아 올리던 도랑가. 가시나들은 윗쪽에서 머스마들은 아랫쪽에서 눈이 빨개질 때까지 물놀이를 하던 우리집 앞 도랑물도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얕아졌다.

마을 어르신들은 저마다 나락논의 물꼬를 꼭꼭 틀어막은 채 논바닥에 질척하게 남아 있는 한 방울의 물이라도 지키려 애를 썼다. 간혹 그렇게 단단하게 틀어막은 물꼬 때문에 웃논 어르신들과 아랫논 어르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니 퍼뜩 앞산 가새 밭에 가서 물외 두어 개 따온나. 물외 땀시로(따다가) 쭐구지(줄기)까지 다 뿌질라(분질러) 놓지 말고."
"와예?"
"날도 푹푹 찌고 하이(하니까) 썬한(시원한) 물외 냉국이나 만들어 묵구로(먹게)."
"꼬치(고추)는예?"
'꼬치는 그저께 따다 놓은 기 안주(아직) 제법 있다."


그날, 해가 뜨기 전부터 모논에 김을 매러 갔다가 점심 때가 훨씬 지나서야 온몸에 땀 범벅이 되어 돌아오신 어머니께서는 내게 물외를 따오라고 하셨다. 그렇찮아도 나는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어머니께서 그 시원한 물외국을 만들어주실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물외? 그래.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오이를 '물외'라고 불렀다. 아마도 오이에 물이 철벅철벅하게 많이 들어 있다고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았다. 실제 오이의 겉 모습은 길쭉한 게 둥그스럼한 참외와는 많이 달랐지만 속 모양은 씨앗이 수북히 들어 있는 게 참외 속과 거의 비슷했다.

▲ 오이꽃
ⓒ 이종찬
▲ 저렇게 작은 오이도 몇 주일이 지나면 금세 먹음직스런 오이로 변한다
ⓒ 이종찬
내 어머니께서는 오이 냉국을 참으로 잘 만드셨다. 그 오이 냉국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보리밥을 한 그릇 말아 후루룩 마시면 이내 갈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곤 했다.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그런 기찬 맛이었다. 또한 그냥 마시는 우물물보다 신기하게도 오이를 넣은 그 냉국이 훨씬 더 시원했다. 마치 오이가 얼음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머니께서는 오이를 굵은 왕소금에 비벼 깨끗히 씻은 뒤 곱게 채썰어 양푼에 담았다. 그리고 마늘을 곱게 다지고, 실파를 잘게 송송 썬 뒤, 붉은 고추와 풋고추의 씨를 뺀 뒤 어슷어슷 썰었다. 이어 채 썬 오이가 담긴 양푼에 마늘과 실파, 붉은 고추와 풋고추를 담고, 고운 소금과 통깨,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비빈 뒤 차가운 우물물을 부으면 그 시원한 오이냉국이 되었다.

그렇다고 요즈음처럼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그런 오이 냉국이 아니었다. 아니, 그때에는 지금처럼 얼음을 마음대로 얼려 먹을 수 있는 냉장고도 없었다. 마을 공동 우물이 일종의 냉장고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수박이나 참외를 공동 우물 속에 담가두었다가 꺼내 먹었기 때문이었다.

"주전자하고 물외 좀 썰어 갖고 온나."
"와요? 또 소주 마실라꼬 그라요?"
"소주에 물외로 넣어 가꼬 묵으모 소주가 울매나 순해지는데."


아버지께서는 오이를 즐겨 술 안주로 드셨다. 그것도 오이를 물에 대충 씻은 뒤 통째로 된장에 찍어 드셨다. 간혹 아버지께서는 소주를 주전자에 부어 어머니께서 어슷어슷하게 썰은 오이를 넣어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마시면 소주의 톡 쏘는 독한 맛이 사라지고 소주 맛이 향긋해진다고 하시면서.

▲ 내 어머니께서는 특히 갈증이 많이 나는 무더운 날, 오이를 따다가 시원한 오이냉국을 만드셨다
ⓒ 이종찬
▲ 오이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부터 든다
ⓒ 이종찬
"너거들 물외 묵고 곧바로 당근이나 무시(무)는 묵지 말거라이. 당근이나 무시는 물외하고 상극이다."
"상극이 뭔데예?"
"한데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사이다 그 말이다. 다시 말하자모 서로 원수지간이다 이 말이다."


그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그 깊은 뜻을 잘 몰랐다. 그저 오이와 함께 당근이나 무를 먹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로만 알았다. 한약을 먹고 무를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센다고 했던 이웃집 할아버지의 그 말씀처럼. 근데 뒤에 알고 보니, 어머니의 그 말씀이 맞았다. 생채를 만들 때 당근과 무를 같이 넣으면 서로 비타민 C를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채를 썬 오이와 당근을 버무리면 당근이 오이의 비타민 C를 파괴하고, 채를 썬 오이와 무를 버무리면 오이가 무에 들어 있는 비타민 C를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한 오이와 당근, 무는 같이 버무려 먹지 않는 것이 좋으며, 만약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버무릴 때에는 식초를 많이 넣어야 비타민 C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거치(같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물외 이기 만병통치약 아이가."
"그라모 오데 아풀 때 약을 사 묵지 말고 물외만 묵으모 되것네예?"
"그런 거는 아이지만 물외 이기(이것이) 위장병에도 좋고 오줌발도 아주 세기(세게) 나오게 한다 아이가. 그라고 피부 미용에도 울매나 좋은데."


그 당시 내 어머니께서는 간혹 친척집에 가실 때나 결혼식에 가시기 하루 앞날 저녁이면 으레 오이를 얇게 썰어 얼굴에 붙이곤 하셨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간혹 실수를 하여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에도 오이를 얇게 썰어 발라주셨다. 그러면 뜨거운 물에 데여 물집이 잡혀 따끔따끔했던 곳이 금세 시원해졌다.

▲ 오이는 이뇨 작용뿐만 아니라 위장병과 부종에도 아주 좋다고 한다
ⓒ 이종찬
그래. 우리 마을 사람들이 '물외'라고 불렀던 그 오이. 지금 비음산 다랑이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를 바라보면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그 시원한 오이 냉국이 어른거린다. 아니, 추억 속의 그 오이 냉국을 꺼내 보리밥 한그릇 말아 후루룩 마시고 싶다. 간혹 미역을 넣어 만들기도 했던 그 시원한 오이 냉국.

특히 요즈음처럼 찜통 더위가 계속되는 날, 바닷가로 계곡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있어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늘 저녁 오이 냉국을 만들어 보자. 그리하여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머리를 맞대고 오이 냉국 한그릇을 후루룩 마셔 보자. 어느새 갈증과 더위는 저만치 물러가고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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