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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열흘 후였다. 태음력 9월에는 소호 국에도 아침저녁으로 서리가 내렸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새벽같이 일어난 군사들은 오스스 떨거나 기지개들을 켜면서 남은 잠을 마저 털어냈다. 지난밤 뗏목으로 미리 건너와 야숙을 했던 탓에 한기가 더 깊었으나 행군을 시작하면 그도 달아날 것이었다.

동이 터왔다. 참모들이 대열정비를 마치고 기다리는데도 에인은 자기 천막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금 기도 중이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때문이었다.

거사 일이 다가오자 에인은 또다시 회의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자신이 왜 침략자가 되어야 하느냐는 것이 그 회의의 실체였다. 그는 여태 침략에 대한 정의를 배우거나 들은 바가 없었다. 그가 우러러본 선조들 또한 침략으로 영토를 넓힌 분들이 아니었다. 오직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거나 그 도리와 문화를 이루고 또 받들어온 분들이었다. 선왕조차도 토호들이 스스로 합병을 원해서 그 국토를 확장했을 뿐이었다. 10년 전에 있었던 전투 또한 반란군 평정이었다.

따라서 형제국들이 이동을 시작했고 그들의 영토가 필요하다는 것, 대상들이 번번히 약탈을 당했다는 것은 하나의 당위나 빌미는 될지언정 정의는 될 수 없었다. 그가 배워온 천부경, 신고(神誥), 전계(佺戒) 그 어디에도 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논한 대목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침공의 명이 주어졌다. 정벌도 아닌 침략이었다. 그는 어찌하여 태왕이 그런 명령을 내리고 또 옥새까지 미리 하사하셨는지 그 참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왕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이토록 머나 먼 곳까지 영토를 가지고 싶었던 것은 결단코 아닐 것이었다. 또한 제후국을 넓히자고 에인을 침략자로 몰아세운 것도 아닐 터였다.

'한데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그 참 의도는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지혜로는 그 회의를 풀거나 덜어낼 재간이 없었고, 그런 마음으로는 전쟁에 임할 수도 없어 새벽부터 이렇듯 기도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정좌로 앉아 다시 신께 간원했다.

'오, 신이여, 어찌 대답이 없으시나이까. 다시 한번 간원컨대 부디 저의 침략에 정의를 부여해주소서. 지금 저에게 충만한 것은 용기뿐, 더 크게 있어야 할 정의감은 턱없이 부족하나이다. 제 칼이 불의를 베는데 신명을 다하도록, 그리하여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부디 저에게 명분을 주소서.'

마침내 신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이곳의 신들이 백성 앞에 칼을 들고 있다고 혐오를 느끼지 않았더냐? 그럼 너의 신들은 어떻게 했더냐?'
'예, 환인천황께서는 일찍부터 홍익인간을 설파하셨나이다.'
'미개인 웅족과 호족이 개화를 원했을 때 환웅천왕은 어떻게 했더냐?'
'그들에게 백날 동안 해도 보지 말고 사람이 되는 천경, 신고를 외우라 하셨나이다. 웅족은 그 공부를 마쳐 한민족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호족은 그 공부가 싫어서 달아났나이다.'

'그렇다. 너의 천신이 백성에게 바라는 것은, 그 심성을 어질게 하고 참 지혜를 담는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의 백성들도 자신을 닮고 따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신님의 백성이 아니지 않아옵니까?'

'너는 또 웅족과 호족에 대해서도 잊었느냐? 너의 신은 그 어떤 백성이라도 그들이 어질기만 하다면 결코 내치지를 않는다. 그런데 에리두의 신은 어떻더냐? 널 당장 내치지 않았더냐? 자고로 신들이 괴팍하면 그 백성들의 심성 또한 일그러지는 법, 참다운 신만이 참다운 백성을 만든다. 너는 이곳에 너의 신과 그 선민의 나라를 세우도록 하라. 그것이 네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정의며 명분이다.'

그리고 소리가 뚝 끊겼다.

'나의 신과 그 선민의 나라….'

그는 번쩍 눈을 떴다. 자신이 받은 과업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영광된 일이었다. 기쁨과 희열로 그 임무를 받들어야 할 것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절을 올렸다.

"천신이시여, 에인이 기필코 신의 백성, 그 선민의 나라를 세우겠나이다!"

그리고 에인은 곧장 천막을 들치고 나갔다.

"자, 출발합시다!"

에인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책임선인은 그가 머물던 천막을 서둘러 정리했고 강 장수는 즉시 아장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출전을 개시하라!"

아장들이 출전! 출전! 하고 소리치자 군사 3천이 일사분란하게 정 사각형의 대열을 지었다. 대열 맨 앞에는 강 장수와 은 장수가 에인을 호위해 섰고 그들 바로 뒤에는 기병들 50이 다가섰다. 대열 양 옆으로는 호위 기병이 각각 백씩 나누어 섰고 나머지 기병 백은 후방경계로 정렬했다.

마침내 에인이 지휘봉을 번쩍 쳐들었다. 그 신호를 따라 북과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엄한 출전악은 서리로 젖어 있는 티그리스 강변을 흥건히 적셨고 기병도 말들도 그 북소리에 맞추어 막 출전의 첫발을 내딛었다. 대열 정 가운데서 세워졌던 묵직한 박격기도 삐꺽하고 움직였다. 그 박격기는 애초 비석을 날리는 것이었으니 이곳에는 돌이 흔하지 않아 통나무 박격기로 개조한 것이었다.

강변을 빠져나가 벌판에 도달했을 때 강 장수는 뒤를 살펴보았다. 군사대열은 마치 거푸집으로 뽑아낸 네모 판처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도시 외곽까지는 그
렇게 행군하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반으로 나뉘어져 연병장과 군주의 성을 칠 것이었다.


시파르에 군주제가 들어선 것은 불과 10년 안팎이었다. 그 전에는 과두체제였고 그때는 농업과 목축이 그런대로 안정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젊고 패기 찬 한 젊은이가 과두 수뇌들을 몰아내고 유일 군주로 등극하면서 사회의 동력까지 깡그리 바꾸어버렸다.

그는 양과 염소가 거래되던 거리에 도기와 야장공장을 세우고 에리두와 우드바이로부터 기술을 도입해서 오직 도기와 청동제품에만 그 생산을 주력했다.

그러자 농 ㆍ목축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대거 손을 놓고 도시로 몰려들었고 군주는 그 잉여인구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 잉여인구들이 거리를 부랑하거나 도적질을 일삼았던 때문이었다.
그런 어느 날, 세금으로 걷어오던 양들마저 그들에게 탈취를 당했을 때, 군주는 그 부랑자들을 군인으로 수용할 생각을 해낸 것이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도시 분위기도 정리될 뿐만 아니라 군주에 대한 신망 또한 높아질 터이었다.

더욱이 도시는 날로 팽창하고 있었다. 기존의 용병들이 있다고 하나 그 숫자도 기백 정도니 이참에 군사력도 확장하는 것이 꿩 먹고 알 먹는 일이라 싶었다.

그래서 넓은 곳으로 연병장을 옮기고 훈련을 실시했으니, 그것이 불과 석 달 전이었다. 그러니까 그 석 달이란 것이 농ㆍ목부 출신들에겐 충분한 훈련기간이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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