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 신이 만든 영웅


'옥새에 조각된 오룡이 꿈틀거리며 빠져나오자 황금마차가 날아와 그들 등에 올려졌다. 용들은 그 마차를 실고 그의 앞을 빙빙 돌았다.'

1

그들 기병부대는 일단 니시루 산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누주와 딜문 중간지점이었다. 산맥도 험준한데다 산림이 우거져 임시 은신처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거점영지를 정한 다음 날 은 장수도 대월씨국으로 출발했다. 군사 인솔에 대한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 때문이었다.

제후와 선인들도 딜문으로 떠났다. 책임선인은 기존 상주 기병 50은 그대로 남겨두고 양식과 이삿짐만 실어올 것이고 제후는 그간 딜문을 지키다가 은 장수가 돌아오면 합류키로 했다.

기병들이 몸도 풀 겸 씨름대회를 열고 있을 때 선인들이 양과 염소, 곡식 등을 싣고 돌아왔다. 사흘 만이었다. 에인은 씨름 구경을 하던 도중 저만치 수풀 사이로 그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자기 처소로 향했다. 책임선인은 먼저 그쪽으로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에인은 자기 처소로 들어섰다. 천막이 아닌 나무를 베어 지붕을 올린 덕에 아담한 별장 같았으나 실내는 텅 비어 있었다. 아직 그의 짐이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인이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막 앉으려는 찰나에 책임선인이 들어와 아뢰었다.

"장군님의 함입니다."
"수고하셨소."
"다른 짐도 지금 들일까요?"
"그러시오."

책임선인이 금괴며 갑옷, 기타 옷가지 등 에인의 짐들을 다 들인 후 조용히 물러났다. 에인은 정성들여 갑옷을 차려 입고 지휘 검까지 챙겨든 후 함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가슴이 떨려왔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함을 무릎 가까이로 가만히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위에 지휘 검을 올려놓은 뒤 똑바로 앉아 눈을 감았다.

코끝으로 박하냄새 같은 것이 싸아, 하고 흘러갔다. 그는 그 냄새를 깊이 들이켰다. 한번 두 번… 세 번째 깊은 숨을 쉴 때 태왕과 주고받았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때가 되면 알게 된다. 그때 열어보도록 해라.'

그는 눈을 뜨고 지휘 검을 뽑아 포장 천을 잘라냈다. 그러자 곧 까만 칠을 한 오동나무 궤짝이 드러났다. 그 궤짝 이음새에는 나무못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는 지휘검으로 그 틈 사이를 쓱 긁어갔다. 나무못들이 간단하게 잘려나갔다. 그는 칼을 놓고 조심스럽게 궤짝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 또 하나의 함이 들어 있었다. 봉황이 수 놓여진 비단 직포로 싼 것이었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비단 직포를 풀었다. 마침내 본체가 드러났다. 표면이 반들거리는 황색 옥함이었다. 향나무 바닥에 묽은 옥을 끓여 부어 만든 그 옥함은 왕실의 귀물을 보관할 때 쓰는 것이었고 걸쇠로는 까마귀 발 모양의 푸른 옥이 걸려 있었다.

에인은 떨리는 손으로 걸쇠를 벗겨내고 옥함을 열었다. 황색 비단이 뭔가를 싼 채 곱게 접혀 있었다. 에인은 조심스럽게 비단을 풀었다. 비단으로 찬찬히 감아 싼 것은 금으로 만든 사각 옥새였다. 바닥을 살펴보니 거기에는 자신의 괘인 건(三 )이 새겨졌고 운두에는 해를 떠받들고 있는 5룡이 조각되어 있었다.

에인은 그것을 놓고 다시 황색비단을 펼쳐보았다. 자주색 역서가 그 비단 위에 쓰여 있었다. 역서를 보자 그만 손이 저리고 숨이 막혔다. 그러나 그는 훅, 하고 숨을 토해낸 후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나 그대에게 왕권을 주노라. 어디에서 어떤 나라를 차지하든 그 땅의 주인은 그대이고 또 그대의 주인은 환족의 천신이노라. 여기 그 옥새가 있으니 나라가 정해지면 곧 선포하라. 그대가 그대의 땅임을 선포한 나라에는 성스러운 천신의 호수가 영원토록 그 하늘 위에 머물 것이니라….'

그것은 임명장이었다. 아직 아무 나라도 세우지 못했는데 왕권부터 부여받은 것이었다. 그는 임명장과 옥새를 두 손으로 떠받들어 궤짝 위에 올려놓고 큰 절을 올리며 아뢰었다.

'마마, 들으소서. 에인이 옥새를 수령하였나이다. 기필코 이 옥새의 나라를 세우겠나이다.'
에인은 그렇게 꿇어 엎드린 후 한참이나 일어나지 않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