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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현대 비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핵심 관련인물 세명. 왼쪽부터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영완씨,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박지원 현대 비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핵심 관련인물 세명. 왼쪽부터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영완씨,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 오마이뉴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현대 비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핵심 쟁점은 현대측이 2000년 4월 7일 시중은행의 현대건설 계좌에서 현금 150억원을 인출해 당일 이를 서울 농협 종로지점에서 1억원 짜리 무기명 CD(양도성예금증서) 150장으로 교환해 두었다가 '4월 중순 어느 날'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이 이를 박지원 장관에게 건넸다는 것이다(이하 핵심 관련자들의 직위는 2000년 4월 당시를 기준으로 표기한다).

이와 관련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은 검찰에서 "무기중개업자 김영완씨로부터 요청을 받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150억원을 박지원 장관에게 주었다"는 요지로 진술했다. 이익치 회장 또한 "무기명 CD 150장을 박지원 장관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검찰은 현대측이 이익치 전 회장에게 건넨 문제의 CD(150억원) 가운데 일부가 김영완씨를 통해 '돈 세탁'된 사실을 계좌추적을 통해 확인했다.

대북송금 사건이 터지자 미국으로 도피한 김영완씨 또한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보낸 '자술서'에서 자신이 CD 150장을 받아 이를 관리했고 그 일부(20∼30억원)를 박 장관에게 주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검찰은 박 장관이 김씨를 통해 현대측에 돈을 요구하자 김씨로부터 요청을 받은 정몽헌 회장이 이익치 회장을 시켜 박 장관에게 돈을 전달했고 박 장관은 이를 다시 김씨에게 맡겨 '돈세탁'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지원-김영완의 공모인가, 이익치-김영완의 공모인가

김영완씨가 해외에서 작성해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 이 사건에서 박지원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절대적 증거'이다.
김영완씨가 해외에서 작성해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 이 사건에서 박지원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절대적 증거'이다.
그런데 박지원 장관은 지난해 6월 대북송금 특검 및 그후 대검 중수부의 조사를 받고, 그 이후 13번의 재판을 받고 1심 선고를 받을 때까지는 물론, 지금도 일관되게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박 장관은 이익치 회장이 중간에서 '착복'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종의 '배달사고'인데, 이는 이익치 회장이 김영완씨와 함께 짜고서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돈을 빼낼 경우에만 가능한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사건에서 검찰과 이 회장의 주장은 박지원-김영완의 공모(共謀)를 전제한 것이고, 박 장관의 주장은 이익치-김영완의 공모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양측의 다툼을 규명하는 데는 이 사건의 핵심 등장인물인 김영완·박지원·이익치·정몽헌 4인의 친소 관계를 따져 누가 누구와 은밀히 통(通)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이같은 다툼을 규명하는 데는 김영완·박지원·이익치·정몽헌 4인의 친소관계를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검찰은 어찌된 까닭인지 정몽헌 회장의 중요진술을 배제한 채 이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조사로 일관했다. 그래서 박씨를 얽어매기 위한 진술을 대가로 이익치씨에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플리 바기닝'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우선 현대 비자금 150억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영완씨는 박지원 장관보다는 이익치-정몽헌 회장측과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몽헌 회장이 투신 자살(8월 4일 새벽)하기 직전인 8월 2일 밤 대검 중수부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제2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 회장은 대북송금 특검조사 때와는 달리 중수부 조사에서는 박지원 장관과 김영완씨를 알게 된 경위를 상당히 소상히 밝혔는데, 그 대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가 김영완을 알게 된 것은 90년도 전후에 제가 현대상선 부회장과 현대전자 사장으로 근무할 때 통신위성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현대중공업에서 전무로 근무하던 이익치가 저에게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미국 보잉사의 한국총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나보겠느냐고 하여, 제가 구상하던 통신위성산업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만나보겠다고 하였더니 저의 사무실로 데려와 소개해 주어서 알게 되었고,

그 당시에 몇 번 만났다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 서로 연락을 하지 않다가 91년부터 치러질 대선조직을 구성하느라고 바쁘게 생활하였는데 그때부터 김영완과는 전혀 연락이 없다가, 98년 11월 18일 금강산 유람선을 출항시키고 현대에서 금강산 관광개발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99년 5월경 어느 날 현대증권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이익치가 느닷없이 김영완을 데리고 저의 사무실로 와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직후 김영완이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지원을 저에게 소개해 주어서 박 장관을 알게 된 것입니다."


김영완씨는 박지원보다는 이익치-정몽헌과 더 가까웠다

90년 전후에 정 회장이 현대전자 사장으로 통신위성사업을 구상할 때 이익치씨가 당시 미국 보잉사 한국총판(에이전트)이었던 김씨를 데려와 소개해주었고, 그로부터 뜸하다가 99년 5월경 다시 이익치 회장이 '느닷없이' 김씨를 데리고 사무실로 와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뒤로 김씨가 자신에게 박 장관을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자살하기 직전에 작성한 '최후의 진술'에서 "이익치가 느닷없이 김영완을 데리고 왔다"는 표현으로 이익치 회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 흥미롭다.

이익치 회장이 김씨를 정 회장에게 두번씩이나 소개해주었다는 것은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 사이가 '소원한 관계'라는 두 사람의 주장과 달리 이익치 회장이 김씨를 정 회장에게 두번이나 소개할 만큼 '막역한 관계'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 회장이 이런 중요한 사실을 특검에서는 털어놓지 않다가 왜 검찰의 150억원 수사 막바지에 털어놓았는지도 관심거리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신문은 단지 "위 이익치가 김영완을 진술인에게 데리고 왔더라는 말인가요"라고 물어 "그렇게 기억합니다"라는 정 회장의 답변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검찰은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이 과연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무튼 정 회장이 죽기 직전에 7월 31일(제1회)과 8월 2일(제2회) 대검 중수부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박 장관을 소개받기 10년 전부터 이익치 회장을 통해 소개받은 김영완씨를 알고 있었고, 이익치 회장은 김영완씨를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 회장만 두 사람의 관계를 뒤늦게 털어놓은 것이 아니고 김영완, 이익치 회장도 이상하리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숨겨왔다. 이를테면 김영완씨는 지난 8월 29일 이용성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를 통해 A4용지 16쪽 짜리 '자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김씨는 이 자술서에서 ▲박지원·정몽헌·이익치 등을 알게 된 경위 ▲박지원·정몽헌·이익치 등과의 관계 ▲정몽헌과 박지원을 소개해 준 경위 ▲정몽헌 회장이 박지원 장관에게 카지노 허가를 부탁한 경위 ▲정몽헌 회장에게 박 장관의 돈을 요구하게 된 경위 ▲박지원으로부터 150억원 상당의 무기명 CD를 받게 된 경위 ▲위 CD를 관리하게 된 경위 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관계를 숨겨온 이익치와 김영완

그러나 김씨는 자술서에서 박지원·정몽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소개자와 사업관계 등을 소상하게 기술하면서도, 이익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익치 회장은 정 회장을 만날 때 가끔 함께 만났고, 제가 여의도의 현대증권 사무실에서 찾아가 가끔 만났던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하게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라고 짤막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점은 이익치씨 또한 마찬가지다. 이씨도 김영완-정몽헌, 김영완-박지원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진술한 반면에, 김씨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김씨가 '오너'(정몽헌)와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가신'(이익치)이 가까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처럼 진술했다.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이 각각 서로 별로 친분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자별한 관계라는 점은 현대비자금 수수의혹 사건의 또 다른 축인 권노갑씨 200억원 수수의혹 사건에서도 새롭게 드러났다.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또 다른 '물증 없는 거액 수수' 사건의 핵심 증인이다.

그런데 권노갑씨 수사기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00년 봄에 용인 남부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것 외에도 99년에 남부골프장에서만 3번을 더 골프를 함께 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의 라운딩이 150억원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99년∼2000년 초반 사이에 집중된 것도 두 사람의 '작업'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검찰 수사 내내 서로의 관계를 감추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익치 회장은 여의도 현대증권 회장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난 적도 6∼7회쯤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는 이 회장이 현대해상에 근무할 때에도 광화문 현대해상 사무실로 찾아가 이 회장을 만난 사실이 이씨 운전기사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은 김영완씨와 정몽헌 회장 사이에 교류가 없던 시기이다.

따라서 특별한 친분이 있지 않다는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의 진술과 달리, 이 회장은 김씨를 정몽헌 회장에게 두 번씩이나 소개했으며, 또 후술할 김씨와 정 회장의 중국 인민해방군 합작사업이 깨진 뒤에도 두 사람은 정몽헌 회장을 사이에 두지 않고도 은밀하게 서로 통(通)할 만큼 상당히 가까운 관계였던 것이다.

('이익치-김영완-정몽헌은 서로 통했다(하)' 아래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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