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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25일 대북송금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송두환 특별검사와 특검보들.
지난해 6월25일 대북송금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송두환 특별검사와 특검보들.
지난해 6∼8월경에도 대북송금 특검(송두환 특별검사)과 특검으로부터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대북송금 사건의 상징적 인물인 박지원 전 장관을 구속하기 위해 각각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김영완씨에 대해 '수사에 협조할 경우 불구속 수사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익치·김영완씨측과 협상을 벌였다는 '플리 바겐'(Plea bargain)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O씨가 제기한 플리 바겐 의혹은 상당히 구체적인 데다가 박지원씨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유지를 뒷받침하는 핵심증인인 김영완씨의 측근인사로부터 나왔다는 점에서 앞서 나온 정황상의 플리 바겐 의혹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O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영완씨는 지난해 7∼8월 미국에 도피해 있는 동안 박지원씨 사건과 관련, 당시 수사와 관련된 검사들과 서울지검장 출신의 유창종(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그리고 고(故) 정몽헌 현대 회장 등과 수 차례 통화했다.

O씨에 따르면 김영완씨는 당초에는 일시적으로 한국에 돌아가 검찰에 사건의 내막을 털어놓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O씨에 따르면 김씨는 한국의 변호사들하고 상담을 한 결과 "한국에 들어와 진술해도 비자금 단순 관리자라면 초범인 데다가 경미하니 구속되어도 집행유예로 풀려날 확률이 크다"는 조언을 받고 귀국을 결심했다.

실제로 김씨는 당시 자신을 만나러 온 J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해서 진상을 밝히려고도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김씨는 곧바로 발생한 권노갑(전 민주당 고문)씨의 구속과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을 계기로 결심이 흔들려 귀국을 포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완씨, 귀국 포기하면서 검찰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쪽으로 심경 변화"

그런데 O씨에 따르면 김씨가 귀국을 포기하게 된 것은 '집행유예는 절대 없다'는 메시지가 한국에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겁 많은 김씨가 귀국을 포기하면서 검찰이 원하는 수사방향에 맞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쪽으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O씨는 "김영완씨가 당시 중수부 수사팀의 누구와 통화했냐"는 질문에 A 검사와 B 검사의 이름을 댔다. 그리고 김씨는 이와 관련 유창종(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와도 통화했다고 O씨는 전했다. O씨는 "유 변호사는 그 건으로 여기 LA에 오셨다"고 밝혔다. 유창종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을 지냈다.

이와 관련 유창종 변호사는 LA에 가서 김영완씨를 만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취재팀은 유 변호사에게 취재협조를 요청했으나 유 변호사는 비서를 통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은 검찰이 박지원 장관의 150억원 수수 혐의를 공소 제기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의 유력한 증인인 김영완·이익치씨와 면책을 대가로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를 전면 부인했다.

우선 A 검사는 김영완씨와의 직접 통화 사실을 부인했다. A 검사는 "그때 김영완씨 전화번호를 알아 가지고 통화를 해보니까 앤서링 머신(자동응답기) 목소리만 나오고 통화가 안되어 통화는 안했다"고 밝혔다. A 검사는 김영완씨와 B 검사와의 통화 여부에 대해서도 "통화를 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A 검사는 유창종 변호사가 미국에 가서 김영완씨를 만나고 온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유 전 검사장께서 미국 갔다가 오신 것은 아는데 김씨를 만났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A 검사는 또 유 변호사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 통화가 이뤄지지도 않았냐는 질문에는 "나하고 통화는 했는데 미국에서 했는지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B 검사 또한 "변호사하고만 통화했지 김영완씨와 직접 통화한 적이 없다"고 통화사실을 부인했다.

검찰 "변호사하고만 통화했지 김영완씨와 직접 통화한 적이 없다"

대북송금 특검이 설치되기 전의 정몽헌 회장.
대북송금 특검이 설치되기 전의 정몽헌 회장.
한편 O씨는 "정몽헌 회장이 투신 자살하기 이틀 전에 김영완씨와 통화를 했는데 서로 고성이 오가는 등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회장을 직접 수사했던 A 검사는 이와 관련 "그 당시에 정 회장 관련 전화번호를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그런 게 안 나왔다"면서 "우리가 모르는 다른 전화로 통화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확인해 본 전화로는 (김영완과의) 통화기록이 안나왔다"고 답했다.

그러나 O씨는 물론이고 현대측 인사들은 정 회장이 당시 미국에 있는 김영완씨와 통화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현대의 한 임원은 "구체적인 통화내용은 모르지만 통화는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취재팀은 김영완씨 본인의 직접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O씨의 증언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O씨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즉 O씨는 김씨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으면 모를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또 O씨의 이런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는 적지 않다.

우선 앞에서 짚은 대로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인 김영완씨의 소재를 파악해 법정에서 증언케 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김씨가 지난해 8월, 11월에 변호인을 통해 보낸 달랑 2건의 자술서(진술서)가 전부다. 이 두 건의 자술서가 바로 박지원씨의 150억 수수혐의를 거증하는 핵심적인 '증언증거'이다. 그밖에 '물증'은 하나도 없다.

A 검사는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들도 김씨의 소재를 모른다고 한다"면서 "이용성 변호사도 다른 변호사 통해서 연락하지 자기와 직접 연락이 되지는 않는다고 합디다"고 해명했다. A 검사는 김씨가 미국에 있는지조차 불확실하고 다른 제3국에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소재 파악이 안되니 법정에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도 김씨가 범행을 은폐하려고 귀국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인정

그런데 김씨는 앞에서 보았듯이 민·형사 사건 따로따로 변호사를 선임해 해외에서 국내 재산을 관리하고 여유롭게 소송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미 소송을 통해 한국에서 30여억원이나 찾아갔다. 그리고 지난해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해외에서 김씨를 만나 자술서를 받아온 이용성 변호사는 공교롭게도 미국연수중이다.

김영완씨가 해외에서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 이 사건의 유죄를 '입증'하는 '절대적 증거'이다.
김영완씨가 해외에서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 이 사건의 유죄를 '입증'하는 '절대적 증거'이다.
김씨가 자술서에서 밝힌 해외에 체류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석연치 않다. 김씨는 자술서에서 자신의 건강상태와 가족들의 신변문제 때문에 한국에 갈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씨는 그 흔한 진단서 하나 첨부하지 않았다. O씨는 김씨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침울했으나 지금은 건강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신변문제도 별로 해명이 되지 않는다.

A 검사도 김영완이 귀국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진단서는 없었다"면서 "오면 귀찮고, 오면 여러 분이 가만 두겠어요, 검찰이 가만 두겠어요"라고 반문했다. A 검사는 또 "박지원씨의 관계도 껄끄럽고…"라고 덧붙였다.

A 검사는 또 "귀찮아서라고 그러는데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서 귀국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 것도 있지 않겠냐"면서 "자기가 당장 벌려 놓은 일이 있는데 귀찮다는 것이 남의 문제도 있지만 자기 일도 있지 않겠어요"라고 한 발 물러섰다. 김씨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귀국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검찰도 인정한 것이다.

A 검사는 그러나 김영완-이익치 두 사람이 공모해서 150억원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영완씨의 소재 확인을 위한 형사사법공조요청을 지난해 11월28일자로 했다고 하지만 요청한 지 10개월이 되도록 미측으로부터 아직 이에 대한 어떤 회신조차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김영완씨는 물론 이익치 회장도 입건조차 하지 않은 검찰의 봐주기 수사

게다가 김영완씨는 물론 이익치 회장도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이익치 회장은 150억원의 뇌물을 박 장관에게 전달한 뇌물 공여전달자이다. 그런데 뇌물이 아닌 단순한 정치자금 전달자도 처벌된 전례가 있다. 그것도 바로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사건에서 그랬다.

또 이익치 회장 본인도 정치자금 전달 혐의로 사법처리된 전례가 있다.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에서 현대가(家)의 '오너'를 대신해 이회창 후보 캠프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였다.

대북송금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의 형량과 비교해도 검찰의 불입건은 말이 안된다. 김 사장은 1심에서 외국환거래법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검찰이 제시한 범죄사실에 따르더라도 ▲피고인 김윤규는 이익치 등과 공모해, 재경부장관에게 신고하지 아니하고 ▲피고인 김윤규는 공소외 이익치 등과 공모해 통일부장관의 협력사업승인을 얻지 아니하고 북한에 4억5천만 달러를 송금해 협력사업을 시행하고 등으로 공모관계를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검찰이 다른 사람은 죄다 입건-구속하면서도 이씨에 대해서는 150억원 뇌물 공여전달은 물론 대북송금 공모혐의로도 입건조차 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에 대해 중수부 검사를 지낸 C 검사는 "이익치씨는 이 뇌물수수 사건에서 처벌을 받을 사람인데도 오히려 검찰 수사에서 면죄부를 받았다"면서 "검찰이 입건조차 하지 않은 것 자체가 '플리 바겐'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수부장 출신의 S 변호사도 "박지원 수사는 문제가 많다"고 전제하고, "검사가 죄지은 놈을 협박하면 자기가 살려고 거짓말하는데 이것을 증거라고 내세운 것뿐이고 물적 증거는 거의 없다"면서 "죄지은 놈들이 죄를 면제받기 위해 (박 장관에게) 뒤집어씌운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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