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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해 증언하는 박지원(오른쪽), 이익치씨.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해 증언하는 박지원(오른쪽), 이익치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A 검사는 "이 사건의 유력한 증거는 박지원에게 CD를 건넸다는 이익치의 진술인데, 이씨는 이미 99년 현대중공업 주가조작 사건 때에 구속된 전력이 있고 나중에 대선 때는 정몽준 후보가 시킨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으나 검찰은 이씨가 거짓말한 것으로 판단해 정 후보를 무혐의 처리했다"면서 "결국 이익치의 진술은 신빙성이 약하기 때문에 판사가 얼마든지 무죄판례 논거를 댈 수 있다"고 공언했다.

A 검사는 특히 이른바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 의혹을 강력히 암시했다. A 검사는 "이익치씨는 이 뇌물수수 사건에서 처벌을 받을 사람인데도 오히려 검찰 수사에서 면죄를 받았다"면서 "그 때문에 범죄가 있는데도 처벌을 받지 않은 이씨는 증뢰물 전달자더라도 거짓말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판사가 100% 무죄 사유 판결을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이 사건은 1심 재판부도 판시했듯이, 일단 김영완씨가 정몽헌 회장에게 돈을 요구하고, 정 회장 지시로 김재수 전 현대건설 부사장이 현대상선에 150억원을 마련토록 한 점, 이 돈이 이익치씨에게 건네지고 다시 그 돈을 김영완씨가 보관-세탁한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씨가 김재수 부사장으로부터 건네받은 1억원짜리 CD 150장(150억원)을 과연 박지원 전 장관에게 건넸으며 박씨가 이를 다시 김영완에게 맡겨 관리토록 했냐는 것이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쟁점은 과연 피고인이 현대에게 돈을 요구하도록 김씨에게 지시하고, 피고인이 실제 이씨로부터 돈을 받아 김씨에게 보관토록 했는지 여부인데, 관련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현직 중수부 검사 "판사가 무죄선고 취지의 판결문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 5가지"

우선 중수부 A 검사가 밝히는 '무죄 선고 이유 5가지' 가운데 첫번째는 박 장관이 설령 그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김영완씨한테 맡길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박 장관은 150억원을 CD, 즉 양도성 무기명 채권으로 받았는데 이 '뇌물'을 김영완씨를 통해 채권을 현금화해서 다시 채권으로 바꾸어 관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장관은 이 돈을 총선 때 쓴 것도 아닌데 그냥 김영완씨를 통해 보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박 장관이 CD 150장을 받았다면 대여금고에 보관하거나 간단히 들고나가 해외 대여금고에 보관해도 되는데 당장 쓸 돈도 아닌데 굳이 김씨한테 맡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익치씨가 김재수 부사장에게 '주문'한 돈의 형태는 '이름표가 없어 그것을 가진 사람이 임자'인 '양도성 무기명 채권 1억원짜리 150장'이었다. 그런데 그런 '가진 사람이 임자'인 CD를 오랫동안 친한 친구도 아니고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김씨한테 맡긴다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것보다 더 위험한 짓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대법원의 무죄판례 이유에도 해당되는데, 박 장관에게 150억원 CD를 건넸다는 이익치는 99년 주가조작 사건만 해도 자기가 했다고 시인했다가 나중에 대선 때는 정몽준 의원이 시켜서 그랬다고 부인하는 등 '거짓말 전과'가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이씨는 대북송금 사건으로 처벌받을 사람인데도 오히려 면죄를 받았다. 검찰과의 '거래'가 없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번째 무죄 선고 이유는 CD 150억원 가운데 박지원씨나 가족, 그리고 주변 참모들이 쓴 돈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김영완씨가 검찰에 보낸 진술서에 따르면, 박씨는 150억원 가운데 30억원 가량을 가져다 썼고, 그 가운데 최소한 2~3억원은 수표로 건네졌다. 앞서의 중수부장 출신 S씨는 그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5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가져다 썼으면 박지원 본인이나 주변 인사들로부터 돈을 쓴 흔적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증거다. 그런데 그런 흔적(증거)이 전혀 없다. 참모들과 사돈네 8촌까지 계좌 추적했는데 아무것도 안나왔다. 그래서 엉터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150억원의 흔적(증거)를 찾기 위해 광범위하게 장기간 계좌추적을 벌였다. 그렇게 계좌추적을 해서 추가로 발견되어 기소한 것이 손길승 전 SK회장으로부터 받은 7천만원과 박정구 전 금호 회장으로부터 받은 3천만원이다. 박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수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3천만원 쓴 것도 계좌추적으로 잡아내는데 그 100배인 30억을 썼는데도 검찰은 흔적을 찾지 못한 것이다.

"권-박이 '비자금 창구'를 동일인물로 공유했다는 것은 수사경험상 넌센스"

네번째 이유는 역시 정몽헌-이익치-김영완 3인이 등장하는 또 다른 현대비자금 사건인 권노갑씨 뇌물수수혐의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A 검사는 검찰 수사가 결정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은 권노갑씨와 박지원씨 두 사람이 같이 김영완에게 비자금 관리를 맡겼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 법하냐는 것이다.

권노갑-박지원 사건의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영완씨는 권노갑-박지원의 비자금 관리책이다. 그런데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권노갑씨나 미국에서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박지원씨나 돈(비자금)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결과적으로 서로 약점을 잡힐 수밖에 없는 '비자금 창구'를 동일인물로 '공유'했다는 것은 뇌물사건 수사 경험상 넌센스라는 것이다. 더욱이 박씨는 이미 한빛은행 대출의혹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사람이다.

다섯번째 이유 역시 정몽헌 회장이 김영완의 스위스은행 계좌를 통해 권노갑씨에게 건넸다는 미화 3천만 달러(실제로는 2천500만 달러) 송금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검찰에서 3천만 달러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이익치씨였다. 이씨는 지난해 7월 25일 검찰 진술에서 정 회장 지시로 3천만 달러가 '민주당'에 건네졌으며 자신은 김영완씨로부터 해외계좌를 받아 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날 정 회장은 2차 검찰진술에서 2000년 1월경 권노갑씨에게 3천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털어놓았다. 신라호텔 라운지 커피숍에서 이익치, 김영완씨와 함께 권씨를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권씨가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여당을 도와줘야 대북사업도 잘 되지 않겠냐"며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 진술에 따르면 3~4일이 지난 후 이익치씨가 집무실로 와 "권노갑씨 쪽에서 3천만 달러를 요구한다"고 전했으며 다시 며칠 후 이씨가 해외계좌(정 회장과 이익치씨에 따르면 김영완 명의의 스위스은행 계좌)가 적힌 쪽지를 들고 찾아왔다. 이에 정 회장은 바로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을 불러 쪽지를 건넸으며 김 사장은 며칠 후 송금이 완료됐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김영완씨는 지난해 3월 대북송금 특검법이 통과되자마자 미국으로 도피해 아직도 귀국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제3국에서 변호인을 통해 대검 중수부에 진술서를 세 번 보내왔는데 3천만 달러 건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즉 김씨가 스위스은행 계좌번호만 알려주면 3천만 달러가 누구에게 건네졌는지가 쉽게 풀리는데 김씨는 이 건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닫고 있다. 김씨가 말 못하는 계좌라면 결국 이 돈은 권씨에게 건넨 것이 아니라 정몽헌 회장의 해외비자금이거나 김영완씨가 관리한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검찰은 정몽헌 회장의 고교 동창이자 현대상선 미국 현지 법인 지사장(전 현대상선 전무)인 박기수씨를 통해 3천만 달러를 김영완씨 앞으로 송금했다는 김충식 사장의 진술에 따라 지난해 7월 31일 김 사장을 변호인과 함께 미국에 보내 외화송금 영수증을 확보토록 했는데, 김 사장 역시 김영완씨처럼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검찰의 아래의 2003년 8월 5일자 '진술청취서'와 같다.

3천만 달러 송금영수증 찾으러 미국 간 김충식 사장은 '함흥차사'

● 진술청취서
제목: 조○○ 변호사로부터 송금영수증 관련 진술 청취


김충식 현대상선 전 사장이 지난 7.26 검찰진술에서 3000만불 해외계좌 입금 사실을 진술하면서 그 송금영수증을 미국의 지인에게 보관하여 자신이 미국에 가야만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하여 김충식의 변호인인 김앤장 소속의 조○○ 변호사와 함께 미국으로 가서 자료를 가져오도록 하였는 바,

김충식 전 사장과 조○○ 변호사는 7.31 저녁 비행기로 미국을 가서 자료를 확보한 후 우리 국내시간으로 8.3(일) 16:00 경 조○○ 변호사가 대검 중수 ○과장에게 직접 전화하여 송금일자 및 송금액 등에 대해 진술하였으며 그 청취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검: 송금액이 얼마인가요.
조: 2500만불입니다.

검: 3000만불이 아닌가요.
조: 송금영수증상 2500만불이고 김충식 사장도 검찰조사시 3000만불로 알고 그렇게 진술하였는데 송금영수증상 실제 송금액은 2500만불이라고 합니다. 2500만불이 한화로 300억인데 그래서 당사자들이 3000만불로 알고 있지 않았냐는 생각도 듭니다.

검: 송금일자가 언제인가요.
조: 2000. 2. 26 입니다.

검: 해외 어느 은행으로 송금하였습니까.
조: UBS로서 스위스 연방은행입니다.

검: 계좌번호와 송·수신인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조: 계좌번호 등 자세한 내용은 송금영수증에 나와있는데 한국시간으로 8. 4(월) 09:10경에 ○ 과장님과 통화한 후 사무실로 팩스 송부하겠습니다.

검: 그러면 월요일 9시에 차질없이 팩스 송부해 주시고 송금영수증 원본을 가지고 조속히 귀국하시기 바랍니다.
조: 알겠습니다.


2천500만 달러 송금영수증 제출 약속일자와 일치하는 정 회장 자살 날짜

그런데 김 사장과 조 변호사는 송금영수증 사본을 팩스로 보내지도 원본을 가지고 귀국하지도 않았다. 김 사장측이 영수증 확보 사실을 검찰에 통보한 바로 그 다음 날(4일) 새벽, 2일 밤 늦게까지 검찰 조사를 받았던 정몽헌 회장이 현대 계동사옥 12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수증 확보'와 '정 회장 자살' 간의 연관성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검찰 조사를 전후해 정 회장이 김충식 사장과 연락, 영수증 확보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문제의 영수증이 정 회장 자살의 직접 동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8월 6일 귀국한 조 변호사는 검찰측에 김씨의 영수증 제출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 이유는 현대상선의 신용도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영수증 제출 약속일자와 정 회장 자살 날짜가 일치하고, 검찰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김충식씨가 아직도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점 등은 정 회장이 자살을 해서라도 숨기려는 '뭔가'가 있다는 얘기이다.

결국 이익치-김영완이 중간에 끼어 권노갑씨에게 건넸다는 2천500만 달러(약 300억원)도 박지원씨에게 건넸다는 CD 150억원과 마찬가지로 '정몽헌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대검 중수부는 왜 이런 엉터리 수사를 했을까

그렇다면 검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대선자금 수사성과를 거둔 대검 중수부에서 왜 이런 엉터리 수사가 이뤄졌을까. 당연히 이런 의문이 생길 법하다.

그런데 우선 이 사건은 시기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선자금 수사와 달리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시작된 수사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즉 대검 중수부가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검찰 독립의 첫발을 떼려고 시도한 시점보다 훨씬 더 시기가 앞선 '과거형 수사'라는 점이다.

또 이 사건은 대북송금 특별검사가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하다가 불거진 현대비자금을 추적하다가 나온 '정치적 수사' 사건이라는 점이다. 즉 박지원 150억 CD 사건은 지난해 4월 대북송금 특검이 개시한 수사를 그해 7월 대검 중수부가 바통을 이어받아 기소한 '정치적 수사' 사건이다.

그런데 역대 정권 교체기마다 검찰은 새로 들어선 권력의 '주문'(개혁 및 사정 드라이브)에 의해서건 아니면 권력에 '주파수'를 맞춘 생존본능에 의해서건, 새 정권이 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꾀하는 데 이용된 측면이 컸다. 노태우 정부 시절의 전경환씨 등에 대한 5공비리 수사, 김영삼 정부 초기의 박철언 의원 등 슬롯머신 사건 수사, 김대중 정부 초기의 IMF 관련 수사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를 종합하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북송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법을 수용함으로써 시작된 이 사건 수사는 검찰에게 당시로서는 전형적인 '주문에 의한 과거형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검찰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련자들을 사법처리 하는 것이 권력에 주파수를 맞춘 수사 목표였을 법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대중 정권의 '소(小)통령' 혹은 '대(代)통령'으로까지 불린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처음부터 검찰 수사의 최종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법처리의 틀에 맞춘 무리한 수사를 하다보니 이처럼 곳곳에 허점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곧 이어서 '현대 비자금과 박지원의 진실 ③ 정몽헌-이익치-김영완은 서로 통(通)했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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