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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계획했던 닷새 여행이 열흘째로 넘어가고 있었다. 제후가 언급한 곳은 니푸르, 슈루파크, 에리두, 우바이드 등이었는데 두두는 지나가는 곳마다 그를 이끌고 들어갔다. 그래서 슈르파크는 물론 예상에도 없던 움마와 바드 티비라까지 들려 일박씩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여행은 대체로 즐거웠다. 가는 곳마다 색다른 풍경인데다 남쪽으로 갈수록 도시들이 번창했고, 그 도시들마다 신들이 달랐다. 부족이 다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것은, 그 신들이 소호에서처럼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중앙이나 사람들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었다.

몇몇 도시에서는 신의 형상까지 세워두었는데 그 표정들이 잔인하거나 무서워보였고, 아다브 같은 아담한 도시에서는 큰 나무를 깎아 만든 신이 그 손에는 진짜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신은 인간을 교화하고 다스려야 하는 정신적인 존재였다. 한데 매서운 눈매로 칼을 들고 도시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의 정신 안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에인 자신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태무심하게 그 주위를 오고갔다. 부인들과 아이, 노인들도 무서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쩌면 무섭게 생긴 그 신이 칼을 들고 잡귀를 쫓아준다고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키슈의 모신(母神)도 그랬다. 산기슭 앞으로 옹기종기 둥지를 튼 그 도시 초입에는 넓은 제단이 있었는데 거기에 모셔진 신은 어머니 신이라고 했다. 소호 국에도 물론'여와'라는 여신이 있긴 했지만 여기서처럼 나라의 신으로 추앙받지는 않았는데 키슈 사람들은 그 모신이 도시의 하늘과 땅은 물론 사람을 만들고 보호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에리두는 그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곳엔 바다가 있었다(주-대홍수 전에는 에리두 앞이 바다였다). 에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는데, 그것이 어떻게나 넓은지 마치 하늘 호수가 거기에 모두 내려앉아 있는 듯했다.

또한 바다는 그 물색도 투명한 청옥인데다 흐름 또한 강물과 달랐다. 강물은 바람이 불어야 기슭으로 밀려오는데 바다는 바람이 없는데도 저희들끼리 왔다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에리두에는 신이 바다에 기거한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았다.

에인은 그 바닷물에 슬며시 손을 담가보았다. 이곳 바다 신은 나그네인 그에게 어떤 반응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한데 손을 넣자마자 별안간 물이 차디차졌다. 너 같은 나그네는 어서 꺼지라는 신호 같았다. 그는 얼른 손을 빼냈다.

에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신도 참 괴팍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바다에 사는 신이 그렇게 일일이 까탈을 부려서야 누가 이 바다를 찾겠느냐 싶기도 했다. 더욱이 이곳은 국제항구라고 하지 않은가. 수많은 타국의 배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서로 부드럽게 교통할 수 있단 말인가.

팔이 아직도 저릿했다. 그는 괘씸해서 지휘 검으로 바다를 마구 때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지휘 검은 물에 약하다는 금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만약 나의 천신이 이 바다에 계신다면 정적으로 반응하셨을 것이다. 설령 타민족이 접근한다 해도 먼저 시험을 해볼지언정 당장 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웅족과 호족에게 그러하셨듯이 떠나고 머무는 것도 당자의 의지에 맡기셨을 것이다.'

에인은 자기네들의 천신과 삼신은 매우 정적이고 슬기롭고 또한 온화하다는 것, 정신을 집중해야만 서로 교감할 수 있고 또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도록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부르짖었다.

"신이여, 어서 귀국하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소도에 올라 제사를 드리게 해주소서. 우리의 신들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신들보다 가장 훌륭하십니다. 저로 하여금 그 훌륭하심을 맘껏 자랑하게 해주소서."

그때였다. 등 뒤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바닷가 저쪽 모래톱에서 한 소년이 북을 치고 있었다. 소년은 앉은 자리에서 북을 치는데, 그 손끝에서 흘러나온 북소리는 끄나풀처럼 달려와 에인을 감고 그쪽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에인은 천천히 움직여 그 북치는 소년 쪽으로 다가갔다.

소년은 소매 없는 토가를 입었고 길고 가는 손으로 북을 쳤는데 그 납작한 북에서도 참으로 희한한 가락이 흘러나왔다.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그런 리듬도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그를 감싸는 듯할 때 두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군님."
돌아보니 두두는 말을 끌고 허겁지겁 해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에인은 얼른 달려가 두두를 붙잡았다. 두두의 몸은 빳빳했고 그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너 왜 그러니? 어디 아프니?"
"어서 가세요. 저이는 마술사에요."
"저 북치는 소년이 마술사라구?"
"소년이 아니에요. 백 살도 넘었다는데 항상 소년처럼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을 홀리는 거지요."
"마술사라면서 사람은 홀려서 뭐하냐?"
"몰라요, 제가 아는 건 저 북소리에 잡히면 헤어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지중해까지 마구마구 끌려다닌데요."

"어떻게 북소리가 사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수 있단 말이냐?"
"수십년 전 딜문에서도 한 상인이 여기에 왔다가 실종이 되었는데 아라랏드 산에서 발견되었대요."

두두는 다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주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에인은 소년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자신의 지휘 검으로 그 몸을 두들겨주었다. 그러자 두두의 몸 떨림은 거짓말같이 정지되었다. 에인이 말했다.

"그것 봐라, 우리에게 이 지휘 검이 있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끌고 다닐 수가 없단다."
"어쨌든 어서 이곳을 떠나요."

두두가 서둘렀다. 그들은 말에 올랐고 바다를 벗어나 중심지로 들어섰다. 다음 갈 곳이 우바이드라고 했으니 저녁 전에는 도착하겠다고, 에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순간 두두가 말에서 휙 뛰어내리며 말했다.

"저기가 시장이에요."
"시장은 또 왜?"
"장군님은 이곳 시장에 볼일이 있으시잖아요?"
"볼일?"
"남자는 여자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지요."

비로소 닌이가 부탁하던 천이 떠올랐다.
"그래, 그럼 시장에 가자꾸나."
그 항구 시장에도 볼거리가 많았으나 그들은 웨브 천만 산 뒤 곧 우바이드로 향했다. 우바이드는 에리두에서 북쪽으로 약 70리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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