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날마다 건승하고 계신지요? 오랜만에 글로 인사드립니다. 어제는 선배가 보내 준 학급문집을 꼼꼼하게 읽어봤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늘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으시는 선배의 열심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어느덧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하고 귀찮아하는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선배를 통해 늘 많은 걸 배웁니다.

지난 4월 1일에 고(故)김형석 선생님 추모제에 다녀왔다는 얘기 했었죠. 약간의 의무감과 동료애로 생전 일면식도 없는 분을 추모하기 위해 다녀온 자리가 제겐 작은 여운으로 남아 꽤 오래 가는군요. 하늘은 좋은 사람들을 먼저 데려간다지요. 김형석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인가 봅니다.

추모의 말을 통해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 졸업생들은 고인의 후덕하고 인자했던 생전의 모습을 추억했고 준비 없는 갑작스런 이별에 참 많이 허탈해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같이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고인이 얼마나 그 이름에 걸맞은 참 선생님이셨을지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다른 곳도 아닌 교실에서 보충수업을 하다가 끝내 죽음에 이르렀는데 그 죽음이 책임 있는 교육 당국자들에게 외면당하고, 게다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선생님의 죽음이 자신들의 잘못 같아 목놓아 울고 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그리 슬프던지요. 그 학생들 따라 야속하게 내리는 봄비에 의지해 오랜만에 많이 울었습니다.

김형석 선생님이 시달렸다는 주당 10시간이 넘는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그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고등학교에 있다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죠. 선배가 있는 수원은 더하다지요. 0교시를 당겨 6시 30분에 시작하는 -1교시가 생겨나고, 밤 12시 자율학습, 우열반 편성 수업 등 최소한의 인간적 상식과 실효성에도 의문이 가는 일들이 교육청의 '말로만 징계'를 비웃으며 버젓이 실시되고 있다지요.

혹시 기억하세요? 재작년 여름방학에 풀무학교 탐방을 다녀오는 길에, 보충수업을 거부하는 한 선생님의 얘기를 꺼내며 보충수업의 문제점을 얘기하려던 최선생님에게 제가 그건 인문계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던 일이요.

"나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힘들다…."

여름 방학 내내 팍팍한 보충수업으로 시간을 보낼 자신에 대한 연민을 그땐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나 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화의 자세나 태도를 떠나 문제를 대면하는 삶의 자세가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요.

제 삶의 깜냥은 그것밖에 되질 못해 '아니다' 생각하면서도 이따금씩 학생들에게 던지는 푸념이나 '보충수업은 내 인생의 적'이라는 우스개 같은 소리로 동료 교사들에게 해대는 넋두리가 외침의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부끄러워서인지, 문제를 두고 맴돌기만 한 제 자신이 한심해서인지 결국에, 그 날 그 자리에서 그렇게 눈물이 흘렀나 봅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전교조 대의원이다, 지회 집행부다 분주하게 다녔던 그간의 제 활동이 다 무엇이었나 싶습니다. 그 날 자책하며 울던 학생들에게, 요즘 전교조 홈페이지 불법 보충 신고센터에 가득히 고발 글을 올리는 학생들에게 우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15년 전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끊어 고발하고자 했던 일들이 오늘까지도 버젓이 진행되고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면, 우리의 언필칭 '참교육'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선배님,
그래서 저는 이제는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해 볼까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 전교조 광명 지회에서는 '0교시 및 강제 보충자율학습 폐지를 위한 투쟁위원회'를 꾸리고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보충수업의 내용적 타당성과 실효성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지도 만들고, 거리 선전전과 1인 시위로 시민들에게 알려내고 세부적으로 논의를 풀어가며 학교 내에서 부딪혀도 볼까 합니다. 물론 녹록치 않은 일이겠지요. 학교 내에서 보충수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조정해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견해에 따라 매일 얼굴 맞대는 동료 교사와 얼굴 붉히는 일일 수도, 현실적으로 애들 교육 팽개치는 무책임한 교사라는 비난을 옴팡 뒤집어 쓸 수도 있는 부담 가는 싸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너무 미뤄온 일입니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이 모습은 아니라는 확신으로 나서볼까 합니다.

교직 첫해에 보내주신 <프레이리의 교사론>에 선배는 '교사임을 자랑스럽게'라고 적어주셨죠. 죄송한 얘기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사임이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언제쯤이 되어야 교사임이 자랑스러울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마 그 자랑스러움은 제가 발딛고 있는 이 현장을 그래도 조금은 살만한 곳으로 변화시켰다고 느낄 수 있을 때 오는 것이겠지요. 이번 일로 그 자랑스러움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따금씩 중학교에 근무하는 선배는 "나는 이제 고등학교에는 못 갈 것 같아. 얼마나 팍팍하니."하며 엄살을 떠셨죠. 그래도 그렇게 되면 누구보다도 열심일 선배의 모습을 상상하기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선배처럼 열심인 선생님들의 노력이 정당한 구조와 제도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점점 모습을 바꿔 가는 것이 전교조 활동의 온전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늘 후배의 생각과 행동을 진지한 태도로 지켜봐 주는 선배가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모릅니다. 이번에도 많은 관심과 조언으로 함께 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마음과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수원에 한번 들르겠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고, 늘 건승하세요.

관련
기사
'보충수업 도중 고교 교사 사망' 일파만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