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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성심병원에 차린 고 김형석 교사 영정.
청구성심병원에 차린 고 김형석 교사 영정. ⓒ 윤근혁
"'너무 피곤하다. 보충수업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 채 형님이 떠나셨네요."

고인의 9살 맏아들 대신 상주 노릇을 하는 친동생 김아무개씨는 눈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모여든 이 학교 학생들은 “평소 조금만 참고 공부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시던 선생님이 먼저 가셨다”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 피곤해, 더 이상 보충수업 하지 못 하겠다"

경기도 고양시 ○○고에서 일하던 고 김형석 교사는 25일 오후 4시 40분께 보충수업을 진행하다가 어지럼증을 느껴 응급실로 후송되던 중 의식을 잃었다. 이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지만 다음 날인 26일 오후 1시 15분쯤 뇌출혈로 결국 숨을 거둔 것이다.

동료 교사들에 따르면 김 교사는 아침 7시 20분에 출근해 밤 9시까지 하루 14시간씩 근무했다고 한다. 정규수업시간 주당 19시간 말고도 아침 7시 40분에 시작되는 0교시 수업과 오후 보충수업, 그리고 밤 9시까지 진행되는 야간 자율학습을 빠짐없이 지도했다는 것.

동료인 박래운(가명) 교사는 “정부가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고 학교에서는 경쟁적으로 보충수업과 야자(야간자율학습)를 시켜서 이렇게 김 선생을 과로사하게 만들었다”면서 울먹였다. 또 다른 교사는 “고인은 얼마 전부터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지도가 너무 힘들다. 4월부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으며 피곤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 따르면 이 학교는 이미 몇 해 전부터 ‘0교시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강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의 ‘0교시 수업’ 불허 방침은 언론보도용일 뿐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이 지역 23개 고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반 강제로 ‘0교시 수업’을 벌이고 있다는 게 주변 교사들의 증언이다.

박석균(신일정보산업고 교사) 전교조 고양지회장은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대부분의 인문계 고교가 실시하고 있다”면서 “정부 사교육대책 이후 중학교까지 보충수업을 준비하고 있어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

이 지역 교사들은 26일 ‘살인적 보충수업 희생자 고 김형섭 교사 대책위원회’(집행위원장 정진후 전 교사)를 만들고 집단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책위는 앞으로 △교육부 차원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유족 보상 방안 제시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교사가 죽을 정도라면…"

학생들이 고인에게 보내기 위해 영안실에서 적어놓은 편지들.
학생들이 고인에게 보내기 위해 영안실에서 적어놓은 편지들. ⓒ 윤근혁
전교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학교의 학원화 정책이야말로 이번 김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범”이라면서 “밤늦게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귀가한 학생들이 새벽까지 EBS 과외를 시청하도록 만드는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결국 학생들까지도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교조는 26일 오후부터 서울, 대구, 경북, 제주 지역을 시작으로 ‘살인적 보충수업 반대’, ‘학벌주의 대학서열화 입시 교육 반대’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여는 한편, 전체 교사 대상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 교사는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인 두 딸과 9살 맏아들, 그리고 이제 갓 돌을 넘긴 막내아들을 전업주부인 이미정(가명)씨에게 남겨두었다. “전셋집에서 어렵게 사는 형편에서 과로사가 인정되더라도 36개월치 기본급만 보상받을 뿐이어서 앞이 깜깜하다”고 유족들은 입을 모았다.

한편,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이날 오전 직접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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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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