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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오늘 오전 10시 30분 강화 읍내에서 강화군 여러 시민단체 모임이 있어서 아침 9시 서둘러 차를 몰고 나갔다. 차 유리에 성에가 끼어 그걸 제거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월선포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려야 하고 또 바다를 건너 차를 타고 강화 읍내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얼추 약속 시간까지 빠듯했다.

마음이 급했다. 대룡리 교동주유소 앞에 화물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진행할 생각을 안 한다. 내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추월할 의사를 보이자 내 앞에 서 있던 트럭 운전자가 수신호를 해 주면서 앞으로 가라고 한다. 그런데 트럭이 도로 거의 중앙에 서 있어서 왼쪽으로 비켜갈 공간이 부족하여 조심스럽게 진행을 하는데 도로 왼쪽으로 유모차가 서 있지 않은가?

운전석 쪽 유모차에 신경 쓰며 진행하는데 "우지직~"하고 차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차를 계속 진행한 후 내려서 보니 조수석 백미러가 동강나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트럭 운전자에게 다가가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아저씨! 차를 세워 놓으려면 오른쪽 길 옆으로 바짝 세워 놓아야지 길 한복판에 세워 놓으면 어떡합니까? 지금 내가 배를 타려고 마음이 급한데….”

“이봐요! 지금 앞에서 큰 차들이 계속 오기 때문에 잠시 서 있는 것이지…. 당신이 끼어들다가 부딪힌 걸 갖고 왜 아침부터 소리는 지르는 거야.”


할 말이 없었다. 내 잘못으로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난감했다. 백미러를 교체하려면 몇 만 원은 족히 들 텐데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내에게 교회 승합차를 타고 돈을 갖고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통화 중 신호음만 ‘띡띡’하고 울린다. 계속 전화를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집으로 갔다. 집에서 나온 지 40분이 지났다. 집에 도착했더니 그 때까지 아내가 수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아니 무슨 전화를 그리 오래해? 가다가 접촉 사고가 났는데 돈 좀 갖고 나오라고 전화를 해도 받아야지. 돈이나 빨리 줘요!”

ⓒ 느릿느릿 박철
내가 화가 잔뜩 나서 툴툴거리며 말을 했더니, 아내는 돈만 내주고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잘못은 자기가 해 놓고 누구한테 화풀이를 하느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시 차를 몰고 배 터로 향했다. 백미러가 동강나고 줄이 두어 가닥 남아 있어서 백미러를 차 안으로 집어 넣고 가려니 문을 꼭 닫을 수 없어 찬 바람이 차 안으로 숭숭 들어온다.

배 터에 도착하니, 배가 선착장에 닿았는데 먼저 온 차들을 다 싣고 나니 바로 내 앞에서 끝나고 말았다. 배는 "부웅"하고 떠났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배를 기다릴 수밖에. 오전 10시가 지났다. 아무래도 약속 시간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10시 30분에 배가 다시 선착장에 도착했다. 차를 배에 싣고 강화 읍내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 훨씬 지났다. 모임은 거의 끄트머리에 와 있었다.

곧바로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점심 밥값 겸 회비조로 1만원을 지불했다. 메뉴는 갈비탕이었다. 아침밥을 안 먹고 나왔더니 몹시 시장했다. 서둘러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뿔뿔이 헤어졌다. ‘내가 오늘 기껏 갈비탕 한 그릇 먹자고 강화까지 나온 것인가?’ 속이 편치 않았다.

백미러를 수리하러 자동차 정비공장으로 달려갔다. ‘이러다 교동에 들어 갈 수 있을까’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정비공장에서는 백미러를 교체하고 도색을 해야 하는데, 도색한 것이 어느 정도 말라야 하니 적어도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또 기다릴 수밖에. 정비공장 사무실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며 두 시간을 기다리는데 갑갑하기 짝이 없었다.

백미러를 교체하고 도색한 비용이 자그마치 5만원이 나왔다. 그러니까 자동차 기름값 빼고 자동차 왕복 선적료(배에 자동차를 싣는 값) 1만8600원, 점심 값 1만원, 백미러 값 5만원, 도합 7만8600원이 든 셈이다. 오늘 비싼 갈비탕을 먹은 셈이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 하루에 대한 수지타산을 따져 보았다. 마음이 급해서 서 있는 차를 추월하다 사고가 났고, 그것 때문에 약속 시간도 지키지 못하고 밥만 먹는 꼴이 되었고, 생각지도 않은 5만원을 손해 보았으니 오늘 하루는 완전 적자였다.

ⓒ 느릿느릿 박철

‘느릿느릿’은 최근 나의 꼬리표처럼 되어 어디를 가든지 그렇게 소개된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르다. 나는 여전히 급하다. 급하게 서두르다가 매번 손해를 보거나 실수를 하면서도 급한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금전적 손실보다도 내 인격이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생각하니 심한 자괴감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트럭 운전자에게도 미안하고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그리고 화를 부글부글 끓이며 속을 태웠던 나 자신에게도 부끄럽다. 7만8천원짜리 갈비탕이 내 속에 들어가 얼마나 살과 피가 될지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오늘 비싼 갈비탕 참 잘 먹었다. 비싸게 먹은 만큼 값을 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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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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