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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출마를 선언한 노혜경 시인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혜경은 이제 겨우 물가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역사라는 80년대의 가혹한 시절, 만삭의 몸으로 부산 민주화운동 진영의 성명서들을 쓰면서, 그리고 그 고생하면서도, 그 맑음을 지켜내려고 가슴을 에었던 그 물가로. 그녀는 그곳에서 역사의 지혜라는 깨끗한 조약돌 몇 개를 집어들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던 다윗처럼 맨몸이다. 게다가 그녀는 여성이다. 이제 그녀는 겨우 전장으로 가는 에움길에 들어섰을 뿐이다. 얼마나 험난한 길이 그녀 앞에 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지난해 말 시인 김정란 교수가 자신의 홈 페이지에 남긴 글 '노혜경의 도전 - 부산시민들이여 자존심을 회복하라'의 일부다. 부산북·강서갑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진 동료시인 노혜경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경을 밝힌 것이다.

노혜경 시인은 '안티조선의 전사(戰士)'다. 인터넷 공간에서 안티조선의 불길을 당겼던 '우리모두'의 운영위원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을 했다.

부산외대에서 학생들 가르치랴 논문 쓰랴 살림하랴 잠시 쉴 틈도 찾지 못할 만큼 바쁜 와중에도 서울, 대구, 대전 가리지 않고 안티조선을 위해서라면 몸을 돌보지 않고 전국을 누볐다.

이제 노혜경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어쩌면 이것도 안티조선운동의 연장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가 맞서려고 하는 정형근이란 자가 <조선일보>의 복사판이라 해도 조금도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극복해야 하는 영남의 지역주의란 괴물도 <조선일보>와 한 몸이 아니던가. 그녀가 재작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부산의 척박한 대지를 누볐던 까닭도 기실 안티조선운동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시인 노혜경이 정치에 발을 내딛는 것에 대해 공연히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이 아니다.

사실 나 뿐 아니라 노혜경 시인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출마소식에 놀랐을 것이다.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굳이 그 험난한 길을 선택했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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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해보면 정치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기도 한다. 노혜경과 정형근, 누가 국민을 위한 바른 정치를 하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자명해진다.

그러나 험로의 시련은 엉뚱한 곳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지도부에서 정형근의 대항마로 문재인 정무수석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노무현 답지 않은 정치이며, 아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구시대적 발상이다. 더구나 한사코 고사하는 문 수석을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악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부산에서, 한나라당의 간판타자와 맞서려면 선수가 전의로 불타올라야 한다. 당장의 지명도야 문재인이 앞서겠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명도만 고려해서는 문재인으로 정형근을 이기지 못한다. 부산에서의 재야활동 정도로는 총선에 명함을 내밀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며, 지난 1년여 청와대 민정수석의 성적표로도 민심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가들이 눈데?" 한다는 것 아닌가(중앙일보 1월25일자 5면). 공연히 부족한 재원에 아까운 인재만 소모하여 죽도 밥도 아닌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정략의 냄새만 풍길 뿐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노혜경은 뚜렷한 목표를 내세우는 명분과 적극성이 정형근에게 맞설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부패정치와 지역주의 등 우리 시대의 극복과제가 농축되어 있는 <조선일보>를 가장 극명하게 상징하는 정형근과 안티조선을 상징하는 노혜경의 대결은 상징성도 크다. 본선에 들어서면 이 상징성은 부산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 마당에 또 신기남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은 25일 기자들에게 정형근의 대항마로 이철 전 의원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신기남 의원은 "이같은 상징적인 지역구 경쟁도 우리당의 승리를 위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상상이야 자유지만, 상징적인 경쟁을 고려하는 사람이 왜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진 안티조선의 전사 노혜경은 안중에 없는 것일까? 기성 정치인들의 시야와 사고의 폭이 너무 좁다.

열린우리당은 기성정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혜경 시인은 정형근의 대항마로서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야 할 상징적인 인물이다. 다행히 본인이 스스로 뜻을 세우고 의지를 다지고 있으니 감읍해야 할 일이다.

열린우리당이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문 수석의 출마를 종용한다면 노 대통령이 말려야 하며, 문 수석 자신도 불출마의 뜻을 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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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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