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입구에는 조화가 숙연히 도열해 있다. 문상객이 그리 많이 않은 시간이라 곡소리는 나지 않았다. 입구에서 눈썰미로 장인과 장모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게 싫어 마당에 차려진 빈소에 들어가 문상을 했다.
상주들은 일제히 곡을 시작했다. 목례 후 향을 피우고 제례(祭禮)를 다했다. 상주와 상배를 하고 그들을 올려봤지만 잘 모르는 기색이라 고인의 외손녀 사위라고 밝혔다. 그때서야 알아차리는 눈치다.
고인의 유해는 집안에 모셔져 있었다. 문상객의 편의를 위해 빈소와 식당은 마당에 차려졌다. 한켠에서는 연탄 수십장을 한꺼번에 태워 마당에 온기를 보태고 있었다.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경이다. 그리고 또 한 켠에 고이 모셔져 있는 꽃상여.
고인의 몸집만큼 작은 꽃상여지만 세상 어느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색의 종이꽃으로 치장한 꽃상여를 오랜만에 본 터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순간 엄습하는 죽음이라는 심연의 공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상이 났을 경우 여느 길흉사 때와 마찬가지로 일거리는 아낙네들들 목이다. 남정네들은 이리저리 문상객을 맞으면서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며 술 한잔 마시는 게 일이라면 큰 일이다. 저녁이 되면서 문상객의 발길이 많아졌다. 덩달아 아낙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문상객들은 고인의 운명에 대해 한결같이 조의를 표하고 상주들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슬픈 날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한적한 시골 상갓집 풍경이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문밖을 지키던 조화도 언젠가는 스러지겠지. 우리네 인생이 모두 그런게 아닌가.'
어느 문상 때 보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외조모의 명복을 빈다.
"꽃상여 타고 고이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