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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통장, 성금 3316만5325원 넘어

지난 11월 27일 이후 날마다 두 차례씩 은행 현금지급기에 가서 통장확인하는 게 일과였는데, 지난 12월 7일 ID ‘구라’라는 독자가 "계좌조회는 인터넷으로 가능합니다. 따로 인터넷 뱅킹을 신청하지 않으셔도 되고, 주민번호, 계좌번호, 통장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면 됩니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 분의 가르침에 따라 잔액조회를 했더니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시간 절약에 성금을 보내주신 독자들의 존함이 새겨진 통장의 희미한 글씨를 돋보기를 끼고 더듬거리며 일일이 게시판에 올리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너무 쉽게 받는 것 같아서 무척 송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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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백범 선생이 등 두드려준 듯

▲ 겨레의 정성이 담긴 성금 통장, 지난 11월 27일 만든 후 그새 다섯 개로 늘어났다. 이 통장은 적당한 곳에다 길이 보존하고 싶다.
ⓒ 박도
어제는 오후 수업이 없기에 아무래도 다섯 번째 통장을 발행해야 될 것 같아 C은행 이화여대지점에 가자 창구의 여직원이 반겨 맞았다. 직원 아가씨가 네 번째 통장을 기계에 넣자 '드륵 드륵' 인쇄가 되고, 예상대로 다섯 번째 통장을 만들어주었다. 그동안의 열기를 확인하고는 놀라는 눈빛이었다.

“언제 떠나세요?”
“아직 확정은 안 됐지만 내년 1월 하순이나 2월 초순쯤 생각하고 있어요.”
“환전은 꼭 저희 점포를 찾아주세요. 최대로 우대해 드리겠습니다.”
“권 선생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돌아오는 길, 여느 때처럼 통장을 펴들고 고마운 분들의 존함을 살폈다. 거의 대부분(90퍼센트 이상) 낯선 분들의 이름들이다. 간혹 낯익은 그리운 이름도 보였다.

오늘은 30년 전 오산(五山)중 3-11반 담임을 했을 때 반장이었던 강아무개 녀석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토끼처럼 귀여웠던 녀석 끝까지 선생님을 기쁘게 해주는구나!'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손자 이아무개 이름도 보인다. 한미은행에서 보낸 걸 봐서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권 선생님이 아침에 격려 전화를 받았다는 올해 88세의 영등포에 사시는 주아무개 할아버지의 존함도 보였다. 자녀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보내셨다고 했다.

지난 11월 27일 통장을 만들어 성금을 접수한 이래 12월 11일 17: 00까지 보내주신 분은 총 700여분에 3316만5325원이다.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려주신 분은 원아무개씨로 여러 차례 쪽지로 계좌번호를 물으시더니 기어이 1착을 하셨다.

익명의 성금자, 그 뜻 받들겠습니다

성금액수는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로 1만에서 5만원 정도의 성금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 기명이었지만 익명으로나, 굳이 쪽지함으로 익명을 요구하시는 분도 더러 있었다.

익명 기탁자 중에는 ‘익명’ ‘힘내십시오’ ‘민족정기회복’ '노동자' ‘부탁드립니다’ ‘건투하세요’ ‘백범사랑’ ‘소원성취’ ‘진실은 반드시’ ‘벼리똘비’ ‘건강기원’ ‘존경’ ‘고맙습니다’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승자’ ‘대한민국 만세!’ ‘화이팅’ ‘성공하세요’ ‘한국인의 혼’ ‘반민특위 재개’ ‘바로 서는 역사’ ‘자랑스럽습니다’ ‘작은 소망으로’ ‘믿습니다’ ‘진실과 화해’ ‘독립자금’ ‘잘 다녀 오세요’ ‘민족정기 부활’ 등 많은 격려의 글을 이름대신 새겨 보내셨다.

지난 5일 윤근혁 기자의 “그는 현금지급기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라는 기사가 나가 내 신분과 얼굴이 확실히 드러나자 ‘목포고 2학년 5반’학생들과 제자 그리고 친지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이밖에도 전 민족문학작가회 이사장님, 독립운동가인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님, 같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이름도 보였다.

가장 인상에 남은 분은 한 스님으로 ‘진실과 화해’라는 익명에다, 별도 쪽지함에는 "진실은 규명하되 원수는 만들지 말라"는 말씀도 덧붙여 보내주셨다. 이번 백범 암살 진상 규명 방미에 지침으로 삼을 만한 거룩한 말씀이었다.

'촌부'라는 이름으로 "망설이다가 하루 일당을 보냅니다"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졌다. 모금운동을 벌인 게 미안했다.

이름을 알 수 있는 분보다 더 고마운 분은 낯선 존함과 이름조차 숨긴 분들이다. 이 분들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이 모금함에 성금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겨레된 도리로 독립운동의 화신 백범 선생의 암살 배후를 밝히는데 당신들이 대신 해달라는, 권 선생님 가시는 길에 여비를 보태드리는 순수한 우리네 인정으로 기분 좋게 던진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당초 목표했던 3천만원 모금은 이미 달성됐습니다

처음 모금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단시일내에 목표액(2~3천만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아울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격려글을 보내줄 것이라는 것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금액은 이미 3천만원을 넘어 12일 현재 3346만원에 이른다. 당초 목표했던 모금액을 달성했는데도 모금계좌를 닫지 않은 이유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백범 김구 암살 배후를 추적한다는 일이 권중희 선생이 소망으로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시간을 요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다.

또 미국에 계신 분들이 보내주신 정보에 따르면, 미 국립문서보관소에만 정보가 있는 게 아니고 역대 대통령 기념관에도 산재해 있고, 미 국립문서보관서의 파일만 해도 수백만 개나 된다고 한다. 거기에서 한국관련 문서를 가려서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게 예삿일이 아니라고 한다.

천우신조로 아주 단시일에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도 있지만 몇 달이나 걸릴 장기 소모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 시간을 두고 문서를 찾는다고 해서 꼭 '배후'를 밝힐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권중희 선생은 다만 '속시원히' 뒤져나 보자는 생각인 것이다.

권 선생과 나는 오랜 고민 끝에 공식적인 모금운동은 끝내되, 모금 계좌는 그냥 열어두기로 했다. 다만, 독자들이 보내준 소중한 성금은 1원 한푼까지도 철저하게 공개할 것이다. / 박도
퇴근 무렵 권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침 한 신문사와 인터뷰가 끝났다고 하기에 상의 드릴 일도 있어서 독립문에서 만나자고 했다.

독립문 앞에서 권 선생님은 오후 1시부터 3시간이나 긴 대담을 나누었다고 말하며 외투도 없이 벌벌 떨고 계셨다. 점퍼라도 사서 드릴 양 옷가게로 모시려고 했으나 굳이 사양을 해서 가까운 삼겹살구이 집으로 가서 저녁을 함께 했다.

권 선생님은 몽매에도 그리던 미국 가는 소원이 이루어진 요즘 체중이 2킬로그램이나 줄었다고 했다. 한두 사람의 독지가의 성금이 아닌 수많은 겨레의 성금으로 가게 되니 더욱 가슴이 벅차서 잠이 안 오고 반드시 암살 배후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부담으로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래서 입에 대지 않았던 약주를 한 잔 들고 주무신단다.

"사람이 도와주셨으니 이제는 하늘의 도움을 기다려 보자"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 후 밥집을 나와 땅거미가 지는 지하철 역 어귀에서 권 선생님과 나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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