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첫공판이 열린 2일 오후 서울지법앞에서 송교수의 부인 정정희씨와 아들 린씨가 참석한 가운데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주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첫공판이 열린 2일 오후 서울지법앞에서 송교수의 부인 정정희씨와 아들 린씨가 참석한 가운데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주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송두율 교수에 대한 첫 공판이 2일 오후 서울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렸다. 서울지법 형사합의 24부(재판장 이대경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송 교수는 검찰이 제기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송 교수는 이날 공판에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활동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한편 북한 관리 및 학자들과의 접촉 사실, 금품수수 등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작활동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독일 내 한국학술연구원을 통한 북체제 선전과 입북 사전교육, 오길남씨 방북권유, '남북한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이하 통일학술회의)를 통한 주체사상 전파, 88년 서울올림픽 반대 행적 등에 대해서도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그는 또 노동신문에 보도된 자신의 북한 찬양발언은 사실 무근이며 "노동신문이 자의적 관례대로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검찰이 공소장을 통해 밝힌 송 교수의 혐의는 노동당 가입과 정치국 후보위원 활동, 금품수수, 남북 학술회와 저술활동을 통한 북체제 찬양과 주체사상 전파 등 크게 4가지로 이중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활동 여부였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활동한 적 없다"

송교수는 이와 관련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통지 받은 적이 없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활동한 적이 없다"며 "후보위원으로서 북한체제를 찬양하거나 전파하려고 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송교수는 "94년 김일성 주석 장의위원으로 선임되고 북에 들어가서 노동신문을 보고 장의위원 중 23번째 김철수가 나를 지칭한 것임을 알게됐지만 당시 공식 석상에서 내 앞에 놓여진 명패는 모두 '송두율'이었다"고 밝혀 자신이 북에서 김철수로 활동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94년 당시에는 장례식이어서 (이름이 두 개인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갔지만 95년부터 김철수라는 이름을 정리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으며 97년 황장엽 망명 이후 신변 보호를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송교수는 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노동당 입당 사실과 자신이 김철수임을 숨긴 이유에 대해 "황씨의 주장 자체가 사실과 어긋난 부분이 많았고 당시 김철수란 이름으로 북에 들어간 사람이 많았던 상황에서 황씨의 주장을 인정하면 마치 내가 정치국 후보위원에다 '노동당 유럽위원장'인 것처럼 오도될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밝혔다.

송교수는 또 노동당 가입에 대해서는 "노동당 가입은 통과의례로 받아들였고 살아오면서 노동당 당원이라는 점을 인식한 적이 한번도 없었을 만큼 비중을 두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금품수수 부분에 대해서도 "당시 북에 방문할 때마다 제공받은 1, 2천 달러는 여행경비로 생각하고 받았고 94년 이후 북으로부터 받은 2-3만 달러는 독일 내 한국학술원 운영자금으로 받은 것"이라며 공작자금으로 받았다는 혐의를 부인했다.

한국학술원 운영과 관련, 검찰측이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입북자를 사전 교육하는 장소가 아니었느냐"고 질문하자 송 교수는 "한국학술원은 비영리 공익단체로 독일 법원에 등록된 기관이며 소장된 1만5천권의 책 중에 북한 관련 서적은 500여권에 불과했다"며 "학술연구원 운영은 독일 내 미흡했던 한국연구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기 위한 것이었고 현재 이 책들은 독일 아시아재단에 모두 기증되어 있다"고 말했다.

검찰 측은 또 이날 공판에서 송 교수의 저술 활동과 학술활동들이 북한을 찬양하고 주체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긴 시간을 할애해 집중 추궁했다.

"제대로 읽으면 경계인의 긴장이 느껴질 것... 왜곡 말라"

검사-변호인 간 치열한 기세싸움

이날 첫 공판에서는 검찰측과 변호인간 치열한 기세싸움도 벌어졌다.

재판이 시작되자 변호인단은 송 교수의 핵심 공소사실인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 혐의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언제, 어떤 절차에 의해 선출됐는지에 대해 검찰이 공소장에 명시해야 한다"고 문제제기했다. 이에 검찰측은 "북한 체제 특성상 노동당 규약에 명시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후보위원 선임이 가능하다"며 "이는 재판과정에서 제출될 증거로 입증될 것"이라고 맞받아 쳤다.

변호인단은 또 검사측이 신문과정에서 송 교수의 과거 행적 관련 사실관계와 그에 대한 검찰의 해석을 섞어 묻는 바람에 송 교수가 답변하는데 다소 힘들어하자 "사실관계와 검찰의 의견을 분리해서 질문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송 교수의 변호인단은 이돈명, 김형태, 송호창, 박연철 변호사 등 총 6명으로 구성됐고, 검사 측은 주임검사로 서울지검 공안 1부 전정식 부부장 검사 등 총 3명이 재판에 참여했다. / 이승훈 기자
검사측이 "북의 지령을 받고 북한의 현실을 호도하고 찬양하기 위해 저술활동을 한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자 송 교수는 "검사들이 책 속에 들어있는 많은 내용들 중 일부를 발췌하고 서로 다른 맥락에 있는 것들을 기계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어 의도적으로 진의를 왜곡하고 있다"며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면 남과 북 체제 사이에서 내가 가진 '긴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또 북의 지령을 받고 주체사상 전파를 위해 통일학술회의를 주도했다는 혐의에 대해서 "통일학술회의는 새 세기를 준비하기 위해 남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나는 남과 북 사이에서 대회 성사를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며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남북한 학문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학술회의를 적극 개최하고 싶다"며 자신의 결백을 강변했다.

이날 재판에는 부인 정정희씨, 둘째아들 린씨, 김세균 교수를 비롯한 '송두율교수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보수우익단체 회원 등 200여명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공판을 지켜본 방청객들 중 보수단체 회원들은 오른쪽 방청석에 모두 자리를 잡았고 송 교수 측 인사들은 대부분 왼쪽에 자리를 잡아 묘한 대비를 이뤘다.

짙은 남색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등장한 송 교수는 검찰 신문에 앞서 자필로 작성한 편지지 2장 분량의 모두진술서를 통해 재판에 임하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낡은 것과 새 것의 긴장 속에서 열리는 재판... 전환의 계기 될 것"

송교수는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오늘을 정말 오래 기다렸다"고 말문을 연 뒤 "재판정에 서기도 전에 벌어진 여론재판에 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해 절망감과 참을 수 없는 분노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수는 자신의 상황을 전기(轉機)를 뜻하는 '에포케(epoche)에 비유하고 "새것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관성적으로 달려온 속도를 우선 멈춰야 한다"며 "낡은 것과 새것의 충돌이라는 긴장 속에서 열리는 이 재판에 전환을 위한 '일단 정지'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한편 독일 한국학협회 의장이자 송교수 석방 유럽대책위 활동을 하고 있는 라이너 베르닝 박사는 "남과 북의 화해를 위한 송 교수의 노력을 국가보안법을 적용, 처벌하는 것은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심각히 침해하는 것"이라며 송 교수의 석방 및 선처를 호소하는 해외 학자 920명의 탄원서를 이날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송호창 변호사는 "재판부도 이번 사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동안 송 교수가 제대로 된 반론을 펴지 못하고 일방적인 조사를 당해온 만큼 앞으로의 재판에서는 충분한 반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첫 공판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12월 16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열릴 2차 공판에서는 송 교수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송 교수에게 관용과 자유를" - "간첩 송두율 강력히 처벌하라"
[현장] 법정 밖 '송 교수 대책위'와 보수우익단체의 신경전

▲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첫공판이 열린 2일 오후 서울지법앞에서 재향군인회, 자유시민연대 등 우익단체 회원들이 송교수의 추방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송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방은 법정 안뿐만 아니라 법정 밖에서도 이루어졌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재향군인회 등 7개 보수우익단체로 구성된 '안보를 지키기 위한 비상회의'(이사 비상회의)는 법원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송 교수의 처벌과 추방을 촉구한 반면 송두율 교수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충돌을 피해 법원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 교수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독일 한국학협회 의장이자 송교수 석방 유럽대책위 소속인 라이너 베르링 박사 및 해외학자 92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발표했다.

"양심있는 유럽 지식인들, 송 교수 석방위해 함께 할 것"

탄원서에서 대책위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남북한 화해를 위한 송 교수의 학문적 활동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이적성이 담긴 행위로 매도된 이번 사태는 국제적으로 한국 사회가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민주사회로서의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책위는 이어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민주적일 수 있는가 또 남북한 화해가 얼마나 더 진전될 수 있는가를 국제적으로 드러내줄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며 송 교수에게 이해와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탄원서 작성을 주도한 베르링 박사는 "하버마스를 비롯한 양심있는 유럽 지식인들은 송 교수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고 그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반면 비상회의는 10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집회에서 "송두율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어 북한으로부터 주체사상 전파의 지령을 받고 학술대회개최와 저술활동을 한 골수 김일성 추종자"라며 그를 중죄로 다스리고 영구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물 간첩 송두율 추방해야"

지만원(61) 시스템사회운동 대표, 박찬성 목사 등 보수우익인사들은 "송두율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고뇌하는 지식인인양 거짓 모습을 보여왔으나 결국 건국 이후 최대 거물 간첩임이 드러났다"며 "친북세력의 영웅인 그가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강력히 처벌하고 그 배후세력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법정 안으로도 이어져 송 교수의 모두발언에 방청객들 중 일부가 박수를 치자 우익인사들이 "하여간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발언해 잠시 법정이 소란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이대경 재판장은 "맘에 들지 않는 진술이 있더라도 정숙을 지켜달라"며 이례적으로 재판 진행에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독일인 베르링 박사는 "사회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냉전시대의 잔해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놀라워 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법원 정문 앞 집회를 마치고 공판을 방청하려던 40대 보수우익단체 남성회원 3명이 가스총을 소지한 채 법정으로 가려다 청원 경찰에 제지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 이승훈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