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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 심포지엄에서 `통일의 철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송두율 교수
지난 9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 심포지엄에서 `통일의 철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송두율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금까지 국내 대학의 교수초빙 노력에도 귀국이 허용되지 않아 번번히 무산됐던 송두율 교수의 철학 강의가 법정에서 이루어졌다.

16일 오후, 서울지법 형사합의 24부(재판장 이대경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송 교수에 대한 2차 공판에서는 변호인 반대 신문이 송 교수의 학문 세계와 사상을 소개하는 대담형식으로 진행돼 마치 한편의 철학 강의를 듣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1시간여 동안 계속된 대담형식의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송 교수는 자신의 사상,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에 대한 견해, 경계인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이러한 학문적 노력이 처벌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송 교수는 먼저 자신의 내재적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장자의 추수편에 나오는 장자와 혜자간의 대화를 담은 고사를 인용해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로 역사와 전통에 따라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각국의 사회주의를 연구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재적 방법론에 의한 비교연구"라며 "내재적 방법론은 70년대 당시 소련과 중국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논쟁하는 학자들의 방법론의 결함을 지적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또 "북한을 방문한 것은 내재적 연구를 위해, 소련과 중국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비해 공개자료가 부족했던 북한의 자료를 직접 수집하고 북한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며 "내재적 방법론은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과 더불어 한국의 자생이론 20위에 안에 들만큼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평가하는 학문적 방법 중의 하나로 보편적인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북한의 주체사상과 체제에 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짤막하게 언급하며 그 한계를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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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체제 폐쇄성과 관료주의의 문제 있어"

송 교수는 주체사상 연구에 대해서 "비교사상사적 관점에서 주체사상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족볼세비즘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 흥미를 가지고 연구·분석하게 되었다"며 "주체사상은 피히테가 말한 변방 세계의 자기 긍정의 철학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국제적인 교류통로(채널)를 갖지 못하고 북의 언어로만 끝나 버리는 자폐증적 요소, 폐쇄성의 한계가 있어 이를 북한의 학자들에게 지적해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검찰-변호인간 신경전 2라운드
"송씨 피고인이라 불러라"-"이번 재판 시대착오적"

이날 공판에서도 변호인단과 검찰 간 신경전은 계속됐다. 이날 공판에서 변호인단이 송 교수를 '피고인'이 아니라 '송교수'라고 부르자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공판 때도 변호인단에게 피고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했다"며 피고인으로 호칭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변호인단 송호창 변호사는 "송교수를 전두환이나 노태우에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불쾌해 하며 "우리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이루어지고 있는 이번 송교수의 재판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송교수'라고 계속 부르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또 "변호인 입회없이 작성된 송교수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판부에 밝혔다.

변호인단은 또 신문을 통해 송교수가 천식을 앓고 있고 대장 종양 제거 수술 후 정기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송교수의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를 재판부에 전달했다.

변호인단은 이삼열 숭실대 교수, 소설가 황석영씨등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검찰은 증인으로 탈북 귀순자들 5인을 신청하면서 이례적으로 비공개 재판을 재판부에 요청하는 등 양측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 이승훈 기자
그는 북체제와 관련해서도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당히 건전한 경제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관료주의의 문제점, 즉 경제부분에서도 군대의 체제를 유지하는 바람에 혁신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며 "특히 북한은 수령체제 하에서 군부를 중심으로 관료주의가 더욱 강화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개방정책을 통해 관료적 경제체제가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 교수는 이어 경계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고향을 찾아 나섰던 오디세이에 비교하고 경계인은 '생산적인 제 3자'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오디세이가 자신의 고향을 찾아 방황할 때 자신을 유혹하는 요정 사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나 고향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에 묶었다"며 "나 역시 오디세이처럼 독일에서의 성과에 자족하지 않는 심정으로 분단된 조국에 대한 관심 속에서 37년을 살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경계인을 기회주의자로 폄하하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한국 사회는 아직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를 강요당하는 불행을 안고 있다"며 "무한한 창의성의 원천인 '틈'과 '중간'을 고려하는 마음 없이는 21세기를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려운 법률용어 이해 못한 상태에서 조사 받았다"

송 교수는 또 검찰과 국정원의 수사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에서 수사기관의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용어 때문에 질문 취지 또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사가 진행됐다"며 "이 때문에 변호인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변호인 입회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부정확한 진술이 조서에 기재됐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그러한 사례로 "검찰 조서와 언론보도에 내가 김일성을 아직도 존경한다고 나와 있는데 나는 김일성의 항일운동이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한 것뿐"이라며 "이는 검찰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전달한 것"이라고 검찰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진리와 허위를 가리는 학문의 코드를 적법과 불법을 기준으로 하는 법의 코드에 끼워맞추려는 것은 '중세식 마녀사냥'이자 '히틀러식 분서갱유'와 같은 것"이라며 "검찰이 학문적 노력에 대해서 단편적인 내용을 문제삼아 국가보안법을 적용 기소함으로써 내가 이 법정에 서게된 것은 남한 자유민주주의의 현실이 어떠한지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후 이어진 변호인단의 본격적인 반대 신문에서 송 교수는 또 1차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돼 활동한 혐의와 학술회의와 저술활동을 통한 주체사상 전파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양측 방청객들 말다툼에 퇴장명령 받기도

변호인단은 이날 공판에 대해 "대담형식의 신문은 형사재판에서 상당히 특히한 시도였다"며 "송교수가 공소사실을 떠나 철학, 사회학, 정치학을 연구하면서 그 학문적 결론에 따라 북한에 직접 들어가 자료 수집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통일에 기여하려고 했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도 보수우익인사들과 송 교수 측 방청객들 사이의 말다툼으로 소란이 일어났다.

공판이 시작되고 검정색 양복 차림의 송 교수가 법정으로 들어서자 일부 방청객이 응원의 박수를 쳤고, 이에 '자신은 국가유공자'라고 밝힌 한 남성이 "여기가 노동당 법정이냐"며 큰 소리로 야유를 보내다 재판부의 퇴장명령을 받았다. 이들 보수우익 인사들은 또 "송 교수에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너무 많이 허용된 것 같다"며 이날 대담형식의 재판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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