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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 안두희의 변명

▲ 백범 암살자 안두희의 늘그막 모습
ⓒ 권중희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암살자다. 그는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길뿐더러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살 배후자가 거사 전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꾀고 평생 책임진다면서 자기 간이라도 떼 줄 듯 호의를 베풀지만, 일단 일만 끝나면 태도가 돌변하기 일쑤다. 암살자가 살아 있는 한 배후자는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날까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자기들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또 다른 하수인을 구한다. 그에게 암살자를 현장에서 곧장 사살케 하여 자신들의 정체를 미궁에 빠트리게 한다.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가 암살 후 곧장 사살되었고, 필리핀 지도자 아키노를 암살한 무장 괴한들도 그 자리에서 총살되었다. 암살자는 끝내 배후자에게 이용만 당하기 마련이다. 그게 암살자의 말로이다.

무서운 음모를 계획하는 세력의 하수인이 되는 날부터 암살자는 불행의 그림자에 가리운다. 그 음모를 거역해도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저승길로 가게 되고, 그 음모대로 실행해도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이다.

백범 살해범 안두희- 우리나라 역사가 남아 있는 한 그 이름이 남을 것이다. 그야말로 유취만년(遺臭萬年)으로, 그 더러운 이름을 만대로 남기게 될 것이다.

안두희는 이런 역사 의식도 전혀 없는 무지몽매한 자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비뚤어진 소영웅주의의 발로인가? 아니면 “시저를 미워한 게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한 것입니다”라고 시저에게 칼을 뽑은 브루투스인가?

“처녀가 애를 낳고도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안두희에게도 할 말이 있을 거다. 그가 왜 백범 선생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는가를. 하지만 그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설사 그가 살아 있다 해도 전력을 볼 때 입을 쉽사리 열 사람이 아니다.

▲ 경교장 앞에서 권중희 씨, 지금은 강북 삼성병원 본관으로 쓰이고 있다.
ⓒ 박도
다행히 안두희 수기 <시역의 고민>이라는 책이 전하고 있다. 이 책은 1955년 학예사에서 발간한 바, 서문만 본인이 쓰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썼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았지만, 어쨌든 안두희의 이름으로 판권에는 안두희의 도장까지 버젓이 찍혀 발간되었다.

1992년 9월 23일, 안두희가 권중희씨에게 밝힌 바로는 이 책의 원고를 쓴 사람은 자기와 같은 고향으로 인천특무대장 김아무개와 암살 배후로 지목되었던 김창룡 밑에 있던 장아무개 대위라고 했다. 아무튼 이 책은 누가 썼건 간에 암살자와 그 배후 세력 일당들의 논리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안두희가 이북에 있는 아버지에게 올리는 편지글 형식으로 썼다.

… 아버님! 5년 전 6월 26일 그날 두희가 꿈 아닌 생시의 두희가 제 총을 가지고 제 손으로 분명히 김구 선생님을 쏘았습니다. 일찍 아버님께서도 경모 숭배하시는 백범 선생을 자식인 두희가 제 정신으로 살해하였습니다.

… 범행 자체가 우둔하였으나마 순수한 나 자신의 행동이었고, 필형(畢刑, 형을 마침)의 경위 또한 혼란 중에서도 소정의 법절차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부의 방담자(放談者)들은 “모 고위층 인물에 사주된 범의(犯意)”이니, “모 군부에 의한 범행”이니, “불법의 석방”이니 하는 별의별 왜곡된 풍설을 유포시키고 있사오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본문은 백범 선생을 살해한 다음날인 1949년 6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일기체 형식으로 썼다. 그 중 6월 30일 일기에서 살해 당일 날(1949년 6월 26일) 거사 직전을 회상한 부분만 발췌 요약해 본다.

그날 11시 무렵 안두희는 경교장을 찾았다. 그는 옹진 국사봉 전투에 제1진으로 떠난다면서 백범 선생님에게 출진 인사차 왔다고 했다. 하지만 먼저 온 손님이 있어서 아래 층 응접실에서 기다리다가 12시 30분 무렵 2층 백범 선생 거실로 올라갔다.

안두희는 그때부터 백범 선생에게 국회소장파, 김약수, 남북협상, 미군철퇴, 5.10선거, 여순반란, 송진우 장덕수 암살 등 여러 정치 현안을 질문하거나 논쟁을 벌였다고 했다. 그런 중 마침내 백범 선생이 진노(震怒)하셨다.

“붓이 날아오고, 책이 날아오고, 종이뭉치가 날아오고…. 나는 고개를 수그리고 잠깐 생각의 여유를 포착하려 했다, 무슨 말씀인지 기억은 없으나 선생님께서는 노후(怒吼, 성내어 으르렁거림)를 계속하시는 것이었다.”

안됐다. 선생의 심기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구나. 저 그늘 밑에 칩복(蟄伏, 집안에만 틀어박히어 있음)한 것들을 제(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도로(徒勞)일 것이다. 그들의 주체인 대목(大木)을 찍어버리자. 그것이 비상시에 봉착한 국가민족을 위하는 길이요, 백범 선생 장본인의 오명(汚名)을 막는 길인 것이다.

… 뒤 허리를 스친 나의 오른편 손에는 어느새 권총이 뽑혔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왼손은 날쌔게 총신을 감아쥐었다. 제그덕! 장탄을 하면서 얼굴을 들었다. 앗! 선생께서는 그 거구(巨軀)를 일으켜 두 팔을 벌리고 성낸 사자같이 엄습하여 오는 것이 아니냐. 눈을 감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영감과 나라와 바꿉시다.” 고성인지 신음인지 나도 모르는 소리를 지르며…. 빵! 빵! 빵! 유리 깨지는 소리, “으응”하는 비명,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 겨우 눈을 들었다. 선생님의 커다란 몸집은 사지가 늘어지고 두부(頭部), 흉부(胸部)로 피를 쏟으며 의자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 안두희의 흉탄에 운명하신 백범 선생
ⓒ 백범기념회
무서웠다. 나는 발을 옮기어 옆 마루 미닫이 뒤로 돌아섰다. 아현동 쪽으로 향한 들창에 기대어 섰다. 광활한 푸른 하늘 저편에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늘도 고요하고, 땅도 고요하고, 내 마음도 고요했다. 공허한 내 마음에는 ‘사람을 죽였다’는 쇼크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 총구를 오른편 이마에 댔다.

“아니다. 죽을 때가 아니다. 지금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말없이 이대로 죽으면 영원히 역적이 되고 말 것이다. 첫째 겨레의 안녕과 국가의 질서를 위하여 이 가공할 복마전의 정체를 폭로하여야 할 것이고, 후대 자손을 위하여 참된 단심(丹心)을 밝혀 두어야 할 것이다. …”


안두희가 2층으로 올라간 지 1, 2분 뒤 곧장 총소리가 난 걸 그날 경교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들었는데도 암살자들은 안두희와 백범 선생이 20, 30분은 더 걸렸을 논쟁이 있었다고 날조했다.

다시 <시역의 고민> 끝부분인 8월 2일 자에서 발췌한다.

R 중위는 이번 나의 형을 무기징역 정도 예언하면서, 복역 중 후견인이 되어 주마하며 만약 사형이 되면 후일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 농담 아닌 웃음을 웃는 것이었다. 나는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했다.

밤이 깊었는데 “안 소위 자는가?” 하며 R 중위가 또 왔다. 들고 온 종이조각을 내민다. “애국자 안두희를 석방하라” “안두희 만세!” “무죄석방 만세!” 라고 쓴 아직도 풀이 마르지 않은 벽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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