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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빈이 얼굴이 접시꽃 같습니다.
은빈이 얼굴이 접시꽃 같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엄마, 내 주변에는 왜 못생긴 남자들만 있는 것일까요?”

요 며칠 전 우리집 은빈이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심밥상을 물리고 은빈이가 한다는 말이 “엄마, 나는 시집을 빨리 가고 싶어요!” 가끔 가다 우리집 은빈이가 엉뚱한 말을 할 때가 있지요. 누구한테 들은 말도 아니고 자기가 생각하고 하는 말인데, 얘기의 앞뒤가 맞아 떨어져 대답하기가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은빈이가 도회지 아이들처럼 보고 들은 것이 많아서 잔머리를 굴릴 만큼 영악하지도 않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 흙장난을 하고 놀든지, 동네 친구하고 놀다가 해가 지면 들어와서는 “엄마는 내가 지금 배가 고파 죽겠는데 왜 밥도 안주냐?"고 할 정도로 순진한 시골아이입니다.

아내가 은빈이에게 되묻습니다.
“그럼, 몇 살에 시집가고 싶은데?”
“응, 엄마 난 23살에 시집갈 거예요”
“왜 23살에 시집가고 싶은데?”

“응, 엄마 아빠는 늦게 결혼하고, 또 나를 늦게 낳으셨잖아요. 나는 엄마아빠랑 오래 살고 싶은데요, 엄마 아빠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나랑 오래 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난 애들이랑 오래 살려고 일찍 결혼하고 싶어요.”

엄마와 함께 사진 나들이. 아빠, 예쁘게 찍어주세요.
엄마와 함께 사진 나들이. 아빠, 예쁘게 찍어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은빈이는 평소 ‘엄마 아빠가 자기를 왜 늦게 낳았냐고?, 엄마아빠랑 오래 살고 싶은데 왜 자기를 늦둥이로 낳았냐?’고 울상이 되어 투정을 부릴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기는 일찍 시집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은빈이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엄마, 한 가지 걱정이 있어요.”
“무슨 걱정이 있는데?”
은빈이가 잠시 멈칫멈칫 하더니
“엄마 아빠, 결혼식 하는데 가면 신랑들이 다 잘생기고 예쁘잖아요. 키도 크고. 그런데요, 내 주변에는 다 못생긴 애들만 있어서 그게 걱정이야. 결혼식에 가보면 어디서 그렇게 잘생긴 남자들을 구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아빠 한번 생각 좀 해 보세요, 인호는 뚱뚱하고 못생겼지, 재경이도 까불기만 하지, 승환이는 코를 질질 흘리고 다니지, 재룡이 오빠도 그저 그렇지,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를 보면 다 못생겼어요. 빨리 시집은 가야겠는데 어디 가서 예쁜 남자를 구해올지 그게 걱정이에요.”

아내와 나는 박장대소하고 웃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집 다섯 식구가 오랜만에 대룡리 시장으로 외식을 나갔습니다. 우리가 단골로 가는 중국집은 주문한 음식이 많이 밀려 한참 기다려야 한다길래 하는 수 없이 감자탕 집에 가서 감자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은빈이가 또 그 얘기를 합니다. 정말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은빈이가 23살에 시집을 간다면 그 때 내 나이가 65살이 됩니다. 23살에 시집가는 것은 은빈이 희망사항이고, 혹 은빈이가 시집가는 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걱정도 팔자인가 봅니다. 돼지 뼈다귀를 뜯으면서 은빈이 얘기에 우리집 식구가 다 웃었습니다.

“할머니, 아무래도 나는 지옥 갈 것 같애요.”

우리집 은빈이가 하루에 한번 꼴로 할머니 집에 놀러갑니다. 할머니가 은빈이를 무척 예뻐해 주십니다. 바깥출입을 못하시는 은빈이 할머니는 은빈이와 노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낙입니다. 은빈이가 할머니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할머니께 묻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옥 갈 것 같아요.”
“은빈아, 그게 무슨 소리냐? 착한 은빈이가 천국을 가야지, 왜 지옥엘 가니?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할머니, 제가요, 저녁 예배 마치고 아빠가 인사하러 먼저 나오실 때 제가 쫓아 나가서 아빠 신발 돌려놓고, 아빠 손잡고 나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한테 ‘안녕히 가세요’ 하고 큰소리로 인사하는 것도요.”
“그래, 우리 은빈이가 참 잘하는구나.”

“엄마, 밥 좀 많이 잡수셔야겠어요.”


강낭콩과 옥수수를 뽑아낸 밭에다가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비를 맞아가며 강낭콩 심을 때 덮었던 비닐을 걷어내고, 밭을 일구어 새 비닐을 덮었습니다. 무씨를 뿌리고 집에 올라왔더니 안 하던 일을 해서인지 꽤 피곤하였습니다. 점심준비를 하기 전에 좀 쉬기로 했습니다. 방에 누워있는데 방학이라 요즘 정신없이 놀아서 새까매진 은빈이가 다가 앉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어디가 아프세요?”
“응, 다리가 많이 아프네.”
“엄마,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

하더니 다리를 꼭꼭 주물러 주물러 줍니다. 고사리 손이지만 제법 야무진 게 시원합니다.

“은빈아, 정말 시원하다 고마워.”

다리를 주무르던 은빈이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엄마, 밥 좀 많이 잡수셔야겠어요.”
“왜?”
“다리를 주무르는데 손에 뼈밖에 안 만져지잖아요. 밥 좀 많이 드세요.”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핑 돕니다. 아직도 애기처럼 밤에 잘 때는 엄마 품을 찾는 우리 은빈이가 이렇게 엄마 걱정을 해 줄 만큼 자라다니…. 대견함과 고마움에 은빈이를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 (엄마. 김주숙)
“그런데 할머니, 다른 건 다 못해요. 예배 시간에 맨 날 딴 짓만 하거든요. 아빠가 재미있는 얘기할 때만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하나도 안 듣고 잘 못해요. 그래서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이러다가 지옥 가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집 은빈이는 저녁예배에 꼭 참석을 합니다. 엄마 옆에 앉아 찬송을 부르면 목소리가 커서 앞자리까지 다 들립니다. 대답도 제일 크게 하지요. 은빈이가 예배당에 나와서 엄마 옆에 앉아 입을 크게 벌리고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모릅니다.

어른들에게 하는 설교를 은빈이가 알아들을 수 있겠어요? 이따금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떼를 쓰기도 하고 한번 울었다면 울음을 그칠 줄 모르지만, 우리집 은빈이가 천국엘 가지 못하면 누가 천국엘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국과 지옥은 기독교가 갖고 있는 특수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집 은빈이가 자기가 예쁘고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는 삶의 등식을 벌써부터 간파하고 걱정하기보다, 그냥 밝고 씩씩하게 자랐으면 합니다.

이 글을 쓰는데 은빈이가 밀린 방학숙제를 한꺼번에 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거실에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이 잔뜩 어질러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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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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