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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지, 다랭이, 다랑이, 다락논 모심기
다랑지, 다랭이, 다랑이, 다락논 모심기 ⓒ 김규환

새꺼리를 다 먹고 나자 오전 9시 반이 조금 넘었다. 배도 든든하겠다 취기도 어렴풋하니 허리 아플 일도 다리 아플 일도 없으니 모내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때는 오후 느즈막 때 보다 2배를 더 심는다. 이 때 박차를 가하면 심어야 될 논배미가 적어 보인다. 오늘 꼭 심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논배미는 그래도 일단은 한 번 씩은 다 꽂아줘야 한다. 뜬 모는 가족끼리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 발길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논은 자그마치 열 닷 마지기다. 한 군데 몰려 있지도 않아 옮겨가 심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2모작인 관계로 그 때는 망종(芒種)을 훨씬 지나 하지(夏至)까지가 절정이었다. 그러고 나서 뿌리박음에 열흘 가량 걸리고 소나기에 장맛비를 맞으면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리라.

어머니와 누나는 설거지를 냇가에서 하여 차곡차곡 포개 상포로 덮어두고 다시 집으로 가셨다. 미리 준비해 둔 것도 있으나 1시쯤 점심을 먹으려면 일각이 급하다.

못줄을 띄워주는 이가 따로 생기고 모쟁이 하던 아들들도 합류함에 따라 숫자도 늘었다. 이 때 참에는 큰 집 셋째 누이도 집에서 음식 장만을 그만두고 도우러 나오니 총 25명이나 되었다. 여전히 나는 모쟁이를 하기로 했다.

한 가락 하시는 아버지께서 앞소리를 하매 아주머니들의 뒷소리가 이어졌다.

이 농군들 잘도 허네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우리 농군들 잘도 헌다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앞산은 점점 멀어지고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뒷산은 점점 가까워지네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월출동녘에 달 떠오고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네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풍년일세 풍년이여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금년에도 풍년일세 (어기야 어기여루 상사듸여)


이러기를 두어 시간 했을까? 출출하니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그 때였다. 지나가다 모 밥 얻어먹은 김에 한나절은 못줄 띄워 밥값이라도 하려는 심사로 눌러 있는 이장님을 찾는 마을 방송이 어렴풋이 흘러나왔다.

“아~아~. 알려드리것씀니다. 양지마을 리장님께서는 얼렁 댁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것씀니다. 이장님은 집에 벌이 새끼를 쳤응께 속히 댁으로 오싯쇼.”

“원메 안되겠구만이라우. 그만 가볼라요~”
“애쓰셨구만 얼렁 가보더라고~”

미루나무와 뒷골 당산나무 근처에 매단 마을 앰프는 동네 주막에 있었는데 급할 때 누구나 가서 방송을 해도 되었다. 다룰 줄 아는 동네 청년이 대신한 방송이었다. 이장님은 싱글벙글 좋아하며 뛰어서 가셨다.

새로 반찬을 해와도 점심은 아침 새꺼리에 미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바로 참난쟁이 논으로 남은 모 타래를 남정네들은 지고 아주머니들은 손에 들고 옮겨 붙었다. 논두렁 길로 이동하는 일꾼들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옮기면서 흐뭇하게 들여다본 논배미에는 급히 심느라 군데군데 둥둥 뜬 모가 보였다. 아버지는 물꼬를 조금 열어 모를 냉해와 햇볕에 그을리지 않게 보호하시고 이내 뒤따라 오셨다.

이 논 심구고 저 뱀이로 가세
떳구나 떳구나 못방우가 떴네
홀엄씨 오강에 똥덩이가 떴소
저그 과부가 영도나 잎이나
이 뱀이 심구고 웃뱀이로 가세


사람 가는데 막걸리도 따라 가야하는 건 당연지사. 출렁이는 둥그런 막걸리 통을 지게에 지고 가기도 쉽지 않다. 벌써 거나하게 취하신 몇 분은 한창 인기가 있는 유행가를 흥얼거린다. 모내기하면서 술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물 속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고개 쳐들고 따뜻한 기운을 받으며 몇 발짝 걸으면 갑자기 휘청거리면서 취기가 확 올라오는 느낌을. 그래도 허리가 끊어지려 하니 술로라도 통증을 줄여주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노동 중이든 후든간에 휴식은 꿀맛입니다. 휴식은 일하는 사람의 권리입니다.
노동 중이든 후든간에 휴식은 꿀맛입니다. 휴식은 일하는 사람의 권리입니다. ⓒ 김규환

떡자반 부침개에 걸쭉한 막걸리 한 잔 드시지요 "쭈욱~ "
떡자반 부침개에 걸쭉한 막걸리 한 잔 드시지요 "쭈욱~ " ⓒ 김규환

농사로 번잡스럽기 한도 없는 시기인 농번기는 하루 하루가 축제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품앗이로 하는 모내기는 그 중 으뜸이다. 풍년이 들고 안 들고는 하늘에 달려 있기도 하지만 모심기가 첫 출발인데 한 달이나 되는 긴 기간을 즐기지 않고는 당장 앓아 눕고 만다.

그러니 주인이라고 닦달하지 못하는 것이니 적당히 사람들 눈에 띄지만 않게 자신의 몸을 추슬러야 견딜 수 있다. 음식을 잘 챙겨먹고 적당히 틈을 보아 허리를 펴야하며 자신의 능력만 믿고 넓은 공간을 독차지하면 안 된다. 거기다 술을 즐겨서 해질 녘 되면 집에 들어가 기본적인 일만 하고 곤한 잠을 자야 다음날 아무 탈이 없게 되는 것이다.

두 번 밥을 먹고 이동하니 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꽂고 또 꽂고, 심고 되심어도 한정 없을 성싶은 논바닥, 논두렁 언덕 밑에서 시작하여 한 걸음 뒤로 두 걸음 뒤로 물러서니 어느새 콩 심어야할 논두렁을 한 번 밟는다.

이제 세 줄만 띄우면 이 배미는 끝이다. 차차 구불구불한 논에서 사람들이 빠져 나온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식들이 애써 붙여놓은 아직 채 굳지 않은 논두렁을 밟아 아이들 마음을 상하게 하므로 아침 잠 없는 사람 몇 명만 남기고 다음 논으로 옮겨가야 한다. 긴 못 줄을 앞에서 끌고 중간에서 받치고 서서히 뒤를 따르느라 더디기만 하다.

윗배미로 옮기자 누나가 또 나타났다.

“아부지~”
“또 뭐 각관냐(갖고 왔냐)?”
“엄니가 새꺼리 드시고 하시라요~”
“아짐씨들 새꺼리 드시고 허싯쇼~”

밥도 벌써 두 끼를 먹었으니 물릴 만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가지가 나왔다. 국수를 삶아서 양념장을 만들어 가져오고 하지감자(당감자는 고구마니 지금 쯤 제철인 감자를 하지감자라 한다.)를 득득 물에 씻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소금 좀 뿌려 삶은 것이었다. 뚜껑을 열자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 감자에는 소금에 찍어도 좋고 김치랑 같이 먹어도 맛있지만 고추장에 찍어서 먹으면 그만이었다.

이제 여기를 마저 심고 ‘짐때거리’로 옮겨 한말갓지기(한마지기 반)를 심으면 오늘 일은 끝난다. 몇 사람은 다랑지 귀퉁이에 남고 이동시간이 꽤 걸리므로 앞장서 옮겨가기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지 사람들의 그림자가 미루나무만큼 길게 드리워져 있다. 힘없이 걷는 사람들의 어깨도 축 쳐져 있다. 산촌의 해는 빨리도 진다.

모레부터는 우리 어머니도 품앗이를 나가시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늦더라도 다 꽂고 나와야 서로간에 낯붉힐 일없고 한갓지니 어슴푸레 어둠이 몰려와도 이렇게 하는 것이다. 주인만 서두르는 게 아니고 놉들도 바삐 움직였다.

“원메~ 허리 뿌라질라그요~(부러지려고 그래요)” 이 말씀을 끝으로 우리 집 모내기가 끝이 났다. 남은 모타래는 가에 뜬 모를 할 요량으로 스무 단 정도 남겨 물에 담가놓았다. 이 때가 정확히 저녁 8시 10분이었다.

이제부터 더 바빠지는 건 부녀자들의 발걸음이다. 도랑에 발을 담그고는 흙만 물감 붓 씻듯 털어 내고 달음질로 집으로 향하는 분이 더러 있다.

“오산땍 진지 드시고 가싯쇼잉~”
“금방 집에 들렀다 올께라우~”
“글고 오산양반도 집으로 오라고 하싯쇼.”
“알것구만이라우~”

논두렁 앞쪽을 마저 심고 나오는 아주머니들
논두렁 앞쪽을 마저 심고 나오는 아주머니들 ⓒ 김규환


못줄을 지게에 지고 집으로 향했다. 긴 노동의 하루를 마감하고 가는 길은 몸은 지치기는 했으나 마음은 홀가분하다. 오늘은 소죽도 풀만 썰어서 짚과 섞어주는 걸로 대신해야될 모양이다.

도착하는 대로 미리 준비해둔 저녁밥을 드시고 가는 강례마을 아주머니들과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분들이다. 품앗이 할 때는 밤 9시가 넘어서 들어가니 있는 대로 챙겨 먹을 수 있으니 안심이지만 노인네가 계시던가 애 아버지가 까탈스러운 경우는 그 늦은 때에도 밥을 해드려야 하니 삶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이런 분들은 아주머니를 댁으로 모시러 가야하고 아저씨도 같이 모셔와야 한다. 간혹 아이들이 따라 오니 동네 절반은 한 집에서 밥을 먹는 셈이다.

문간에 가서,

“김샌 계시오?”
“용민이 이샌?”
“화순 양반” 하고 부르고는,

“아부지가 진지 잡수로 오시라요~.” 말씀드리고,

“나 묵었다.”
“금방 뒤따라 갈란다.”
“묵은 거나 다름없다고 말씀드려라.” 하는 답변을 듣고서야 다음 집으로 옮겨다녔다. 그러니 내 밥 먹는 것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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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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