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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20명이 넘는 사람이 모내기를 했으니 못 줄 띄우기가 노는 것 같지만 제일 힘든 일이었습니다.
모내기. 20명이 넘는 사람이 모내기를 했으니 못 줄 띄우기가 노는 것 같지만 제일 힘든 일이었습니다. ⓒ 신안군
새꺼리 먹으러 500년 묵은 소나무 그늘로 몰려드는 사람들

오전 9시 백아산(810m) 희뿌연 연기가 걷히자 하얀 돌이 울퉁불퉁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의 거대한 흰기러기가 지리산 쪽을 향해 꼼지락 날개쭉지를 퍼뜩이며 금방이라도 날 태세다. 그 아래 4~500m 대의 낮은 산줄기에 둘러 쌓인 구불구불한 다락 논 한 가운데 묘동이 있다. 이곳은 어린 아이들 놀이터다.

500년은 족히 넘어 거북이 등짝 마냥 쫙쫙 갈라진 소나무 세 그루가 비학(飛鶴)의 꿈을 한껏 펼치려고 하니 어깨를 빌려 소년은 날고 싶다. 소나무 진을 빨아먹는 진딧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개미도 크기별로 진을 치고 줄기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농사철엔 이곳이 밥 먹는 자리다. 사람들은 잔디가 깔린 300여 평의 동산 소나무 그늘 밑으로 곧 올 것이다.

30리 떨어진 ‘방석굴장’(지금은 광주지역 상수원인 동복댐 확장으로 수몰된 화순군 이서면 도석리의 재래시장)에서 봐 온 재료와 미리 ‘굴터 둔’ 밑반찬으로 만든 온갖 푸짐한 찬에 잘 퍼진 가마솥 쌀밥이 차려지고 있다. 제사 때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음식을 나누는 인심 좋은 이들이 몰려 사는 순박한 동네에서는 음식도 품앗이다. 농번기에 들판으로 나가면 누구든 막걸리 한 잔에 점심까지 얻어먹으니 한 둘이 일을 나갔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벌써 ‘천두아줌마’는 보리 이삭을 줍다가 밥 먹는 곳으로 와 있다.

먼저 욋등 쪽에서 혼자 논을 갈고 있는 ‘학천양반’을 부르러 갔다.

“아제~ 진지 드시로 오라그요.”
“곧 따라가마~”

기계 소리 하나 나지 않은 산골 들판에 “줄이야~ 줄!” 하는 외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새꺼리 드싯쇼” “진지 드시고 하시랑께요~” 하는 소리에 놉들은 세 번 줄을 더 띄우고 하나 둘 보또랑에 첨벙 들어가 흙 범벅이 된 몸을 대강 씻고 검정 고무신을 찾아 정지동으로 몰려온다.

“이 배미는 허벌나게 크단 말여라우~”
“못줄을 몇 번에 나눠서 띄워야 할랑가?”
“그래도 이 한 배미에서 나오는 나락이 얼마나 많간디~”
“이 근방에서는 이 논이 제일 클 것이구만~”
“‘묵갈림’만 아니면 금순이 집 대식구가 먹고도 남을 것이구만~”
“금순이 집도 한 때는 서른 마지기가 넘었잖우~ 그 땐 알부자였는데...”

삼삼오오 허리를 펴며 허기진 몸을 이끌고 올라오고 있었다.

‘북면동국민학교’ 쪽 논에 물 잡으러 나오신 이장 님이 바지게를 지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직접 큰소리로 불러 세우신다.

“어이~ 이장 한 술 뜨더라고~”
“나 묵을 것 까장 있는가 몰라~”
“아따 이 사람아! 고런 건 걱정 하덜 말더라고.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는 걸 가지고 뭘 걱정하신당가?”

이리 저리 불려오신 분에 농악대원, 일하는 ‘놉’과 가족을 합치면 서른 대여섯이 넘었다. 빙 둘러 차린 곳만도 다섯 곳이나 되었다. 일 하는 사람보다 먹을 때는 왜 그리 사람들이 많았던지?

한 술 뜨시려던 최 연장자 어른께서 “꼬시레!” 하며 밥 한 술에 반찬을 덜어 아래 논 쪽으로 조심스레 던지셨다. 몇 술 안 되는 양이었지만 집에서는 밥 티 하나도 버리면 안되었고 떨어진 밥 한 알도 주워 먹는 게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하지만 들로 나오면 ‘고수레’를 한다. 이렇게 하는데는 지신(地神)께 먼저 올려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리라.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결국 그걸 들짐승들이 먹고 갈 터니 같이 사는 생명들과의 나눔의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이윽고 다른 몇 분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밥그릇에서 덜어내 고수레를 한다.

바지게 지고가시는 이장님도 오셨습니다.
바지게 지고가시는 이장님도 오셨습니다. ⓒ 김규환
제사 때와 못밥은 보릿고개 시절에도 반드시 쌀밥.
김치 다섯 가지에 감자로 만든 온갖 조림에 밑반찬...


모내기 할 때 먹는 못밥은 진수성찬이다. 평소 보리밥 먹기도 힘든 보릿고개가 끝나지 않은 때지만 이날만은 흰쌀밥이다. 여기에 차려진 찌개에 밑반찬도 가지가지다.

초피는 산초와 비슷하지만 향과 맛이 전혀 다르답니다. 추어탕이나 흑염소탕 끓일 때 조금 넣으면 고약한 냄새가 싹 가십니다.
초피는 산초와 비슷하지만 향과 맛이 전혀 다르답니다. 추어탕이나 흑염소탕 끓일 때 조금 넣으면 고약한 냄새가 싹 가십니다. ⓒ 김규환
김치는 그 바쁜 중에도 파릇파릇한 생김치를 담그는데 정성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확독’에 간장 조금 넣고 불려 둔 마른 고추를 득득 갈아 어느 정도 고추 형태를 잃고 고추씨마저 자취를 감춰 된 죽처럼 걸쭉해지면 식은 밥 조금 넣고 더 갈다가 생강 두 쪽, 마늘을 듬뿍 넣어 더 갈아 나간다. 그러다 제법 몽글게 갈아졌다 싶으면 초피나무 잎인 ‘잼피’ 잎을 한 줌 따다가 마저 갈아내서 김치를 버무린다. 버무리는 과정을 제외하고 전 단계만 근 한 시간 가량을 갈아야 하는 중노동이다.

그래도 이렇게 까지 하는 데는 고춧가루로 쉽게 담가버릴 수도 있지만 어디 손님 불러 놓고 대강대강 음식을 만들면 되겠는가? 그 깔끔하고 알싸하며 시원한 맛은 어디에도 견줄 수 없다.

여기에 열무김치는 물을 넉넉하게 잡아 김칫국으로 떠먹기 좋게 하였다. 줄기와 귀가 붙어있는 미역으로 ‘욋국’(오이냉국)을 시원하게 만들어 왔다. 부추로 담근 ‘솔지’ 마저 준비되었으니 김치 종류만 해도 다섯 가지나 되었다.

감자꽃필무렵이 모내기 철입니다.
감자꽃필무렵이 모내기 철입니다. ⓒ 김규환
망종 무렵이고 하지를 향하는 때인지라 이른봄에 심었던 감자가 제철이다. 감자 꽃 핀 지가 며칠 지났으므로 이제 알이 찰 만큼은 찼다. 큰 걸로 ‘갈치조림’을 하고, 집에서 기른 토종닭 한 마리를 잡아 만든 ‘닭탕’(닭‘도리’탕도 일본말이라 쓰기가 뭐하여 대체한 용어입니다.)도 풋고추 썰어 넣고 되직하고 매콤하게 만들었다. 새끼감자로는 멸치 넣고 장조림처럼 뽀글뽀글 졸여 왔다. 간고등어(냉장고가 없던 시절 교통이 불편한 산골마다 고등어를 항아리에 넣어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해서 오랜 동안 두고두고 먹었으니 안동지역만의 특산품은 아니었다.)를 넣고 지진 조림도 차려졌다.

머위대와 죽순나물은 들깨를 갈아 국물 조금 있게 끓이고 겨우내 먹다 조금 남겨 둔 호박고지도 마찬가지다. 고사리도 조리 방법이 같았다. 고춧가루 하나 들어가지 않으니 우리 입맛에는 최고였다.

마른반찬도 있었다. 지난 가을 서리 오기 전날 따서 밀가루 입혀 말려 둔 끝물 풋고추를 아삭아삭하게 튀겨내고, 며칠 전 새싹으로 나온 ‘참중나무’(가중나무 또는 가죽나무와 비슷하나 실제로는 가중나무 잎은 노린내가 많이 나서 먹기 힘들다.) 잎을 말려 김 가루처럼 볶아낸 반찬, 고추장 발라 튀긴 김부각, 누런 메주콩을 마른 새우에 고춧가루 넣어 지글지글 끓여서 쪼글쪼글한 모양으로 바뀐 약간은 딱딱한 반찬에 취나물도 있었다. 시루에 집에서 직접 기른 까만 진저리콩나물 무침은 한 양푼이나 되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양동이에 샘물 길러오던 금순이 누나가 저 만치서 가까이 오고 있었다. 얼른 달려간 형이 대신 들고 왔다.

음식 사진은 직접 찍지 않으면 좀 체 구하기 힘들군요. 아쉽지만 좀 드세요.
음식 사진은 직접 찍지 않으면 좀 체 구하기 힘들군요. 아쉽지만 좀 드세요. ⓒ 김규환
오전 새꺼리가 못밥 중 최고의 성찬

시장이 반찬인데 음식도 걸게 차려졌으므로 사람들은 한 그릇 먹고 또 먹는다. 맨밥에 반찬을 하나씩 젓가락에 조심조심 먹는 아저씨들과는 달리 아주머니들은 널찍한 대접에 밥과 갖가지 찬을 넣고 두엇이 어울려 비벼 먹는 모습이 참 좋다. 나물 반 밥 반으로 먹음직스러워 보여 ‘뽀짝거리니’ “이 집 막내 도령님 한 술 드려야제!” 하며 한 숟갈을 주신다.

남자 분들의 대화는 모내기철 가뭄에 쏠려 있다.

“시방 쩌기 원리 밑에만 가도 논을 갈 수가 없어 모내기는 작파했다요.”
“글도 여긴 윗쪽인께 그나마 괜찮은가 보네.”
“면서기들이 양수기를 싣고 댕기면서 아무리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헙디다.”
“이 놈의 하늘이 비를 언제나 내려 줄라고 그러는지 몰라~”
“이러다가 7월 넘기면 메밀이나 심어야 될 지도 모르는 가배.”
“콱 하늘을 가락으로 쑤셔 부려야 헐랑가봐!”

누런 주전자에 쏟은 막걸리가 따라지고 잔이 왔다갔다한다. 집에서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아주머니들도 허리를 숙이고 해야하는 일인지라 두어 잔 씩 마셔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거시기 엄니, 한 잔 혀?”
“성님, 많이 못 헝께 쬐까만 주싯쇼.”
“아따, 물에 들어가면 금방 깨분디 이왕지사 마실 거믄 한 대접 몽창 해부러야제~”
“어~어~어~ 넘치요. 넘친당께. 흐미 이 거 다 묵으면 비틀거릴 것인디...이천떡, 나눕시다.”
“지비가 마셔. 나도 석잔 마셨응께 그만 먹을라만...”

친구 병문이 아버지 학천양반이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짐 잘 묵고가요.”
“아제 더 자시고 가제 그요?”
“많이 묵었으라우~”
“핑 가셔서 논 갈아야 되겠구만이라우~그럼 살펴 가싯쇼~”

한 쪽에 비켜선 어른들은 ‘새마을’이나 봉초를 말아서 한 모금씩 빨아댄다.

잠시 뜸들인 사이에 우리 형제들은 모를 적정한 거리에 툭툭 던져 놓았다. 주인이 얼른 일하자는 말을 못 하므로 아이들이라도 일 하는 척 하고 있으면 놉들도 곧 논으로 다시 들어서게 되어있다. 이제부터 아버지와 어르신 한 분이 못 줄을 잡으실 거고 우리도 중간에 끼어서 모를 심어야 한다.

모내기하는 날 가장 걸고 푸짐하게 차린 오전 새참이 오늘의 실질적인 성찬이다. 이제 점심과 오후 새참 그리고 밤에 밥을 먹어야 하니 하루 네 끼는 밥을 먹는다.

지금은 한 나무가 5년 전 태풍에 쓰러져서 두 그루만 남았습니다. 너무 먼 고향이라 요즘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설날 가서 눈올 때 찍은 것이니 아쉽더라도 좀 봐주세요.
지금은 한 나무가 5년 전 태풍에 쓰러져서 두 그루만 남았습니다. 너무 먼 고향이라 요즘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설날 가서 눈올 때 찍은 것이니 아쉽더라도 좀 봐주세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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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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