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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무겁게 한다. 그것이 머나먼 땅 이라크에서 종교적 신념과 침입자에 대한 분노로 폭탄을 둘러메고 미군들에게 뛰어드는 임신부의 자살이건, 우리 땅에서 과도한 빚에 몰리다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채무자의 자살이건간에 자살은 한 인간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택하는 최후의 방법일 것이다.

최근 전교조와 갈등관계에 있었다는 학 초등학교 교장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조중동'의 보수신문들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자살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이 사건을 '전교조 때리기'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이 된 서 교장이 사과를 요구하는 전교조의 협박과 공갈에 시달리고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면서 전교조를 비난하고 있다.

역시 가장 맹렬히 나선 것은 <조선일보>이다. 4월 7일 사설 '교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학교의 현실'에서는 '우리의 학교에서는 지금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참아내기 어려운 모욕을 가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인민재판식 '인격(人格) 살인'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서 교장을 자살에 이르게 몰아세운 것이 전교조의 서면 사과 요구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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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같은 날 <조선데스크> '누가 교장 선생님을 죽였나'에서도 "서 교장이 유서를 남기지 않아 정확한 자살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자살의 원인으로 전교조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 교장은 죽음으로써 전교조의 횡포와 독선을 고발한 셈이다.

근간에 '갈라지는 교단'이라는 3차례의 기획 연재물을 통해 전교조와 비전교조라는 대립 도식을 이끌어내고, 전교조를 과격한 이념집단으로 설정한 <조선일보>로서는 서 교장의 자살 사건은 절묘한 타이밍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차분히 생각해 보면 전교조의 서면 사과 요구가 평생 교육에 전념해 온 교육자를, 노모에게 효심이 지극했던 한 아들을 과연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만큼 가혹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지울 수가 없다.

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매일매일 새벽에 노모의 집에 문안 인사를 한 뒤 아침 식사를 할 정도로 효심이 깊었던 분이었으니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자살이라는 것이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겠으나 서 교장 같은 분이 그러하였을 리는 없을 것이니 서 교장의 자살에 대해 섣불리 전교조 때문이라고 예단하고 더욱 흥분해서 날뛰는 일은 오히려 고인에게 누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 아닐까?

2003년 1월 23일, <조선일보>에 어느 장군의 죽음이 보도된 일이 있었다. 제목이 '현역 장군이 목매 자살했다'이며 부제가 '창군이래 처음…'나약해진 軍' 걱정도'였다. 그런데 육군 장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이 신문이 내린 해석이 상당히 특이하였다.

군 안팎에선 이번 사건에 대해 과거에 비해 나약해진 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근래 들어 병사에서 초·중급 장교에 이르기까지 자살 사건이 잇따르는 데에 심각한 우려가 번지고 있는 터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비역 장성은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장성이든 장교든 직업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후배들이 나약해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권 당시의 햇볕정책 때문에 우리 군의 '주적' 개념이 약해지고 있다고 틈만 나면 주장하던 <조선일보>가 육군 장성의 자살 사건에서 '근래 들어 나약해진 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한 사람이 도저히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막다른 현실에서 택한 죽음을 이런 식으로 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경우도 고인이 유서도 남기지 않았음에도 멋대로 자살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 인간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가장 잘 이용된 예가 아마 1991년 5월에 있었던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자살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정작 김기설씨의 자살이라는 본질은 사라져 버리고 '유서 대필'이라는 해괴한 공방이 진행되었다. 결국 유서를 대필했다는 강기훈씨는 실형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유서 대필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당시 서강대 박홍 총장의 말을 시발로 공안 정국의 한파가 몰아 닥쳤다.

서 교장이 자살한 시점이 '차 시중 사건'을 둘러싸고 전교조와 갈등을 빚은 시기로 전교조로서는 무거운 책임감과 참담함을 느낄 만하다. 하지만 애초에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차 시중 사건'에 대한 전교조의 대응이 교권을 지키고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합당한 것이었다면 비난의 화살이 전교조에 집중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서 교장의 자살을 앞세워 '전교조 때리기'라는 의도로 여론 몰이를 시도하는 것은 언론의 본분을 걷어 차버린 처사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그 동안 거대 신문들이 애용하던 '기계적 양비론'조차도 찾을 수 없다. 참으로 거대 보수 신문들은 서 교장의 유서를 대필해 주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서 교장의 유족들이 전교조 교사 몇 명을 명예 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였다고 하니 이제 이 문제는 법정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제 차분히 진실을 밝히고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이다. 고인도 설령 전교조에 대한 원망에서이던, 인간적인 모멸감에서 죽음을 택하였다 할 지라도 이런 식으로 언론의 정치적 의도에 자신의 죽음이 이용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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