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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을 둘러싼 음모와 야욕, 배신따위를 말할때 우리는 곧잘 마키아벨리를 들먹이곤 한다. 마치 '권모술수의 화신' 이라도 되는양 그는 주로 이렇게 비쳐져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국가 일개 서기관에 불과했던 그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남긴 그림자는 너무나 크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의 작가쯤으로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어느 공식 교육기관에도 속하지 않은 채 혼자 공부를 해서 오늘날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대단한 작가다. 이방인이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서 살았던 자신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녀의 문체는 너무나 읽기가 편했다. 마치 옆에 있는 친구를 소개하듯이 다가오는 애정이 넘치는 작가의 목소리는 읽는이를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한 가운데에 데려다 놓은듯 했다.

마키아벨리를 통해 르네상스를 바라봐

▲ <나의친구 마키아벨리>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 김상욱
이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 마키아벨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제2부 마키아벨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제3부 마키아벨리는 무엇을 생각하였는가' 이다.

1부에선 주로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기 전의 이탈리아 반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부에선 마키아벨리가 서기관으로 동분서주 보낸 시절에 대해 나와있다. 3부에서는 마키아벨리가 관직에서 쫓겨난 이후, 복직을 위해서 <군주론>, <정략론>을 비롯한 작품들을 남겼던 정치사상가 로서의 활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왜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는 택했는가? 그녀는 마키아벨리를 보는 것이 곧 르네상스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피렌체에서 평생을 보냈던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는 르네상스를 둘러싼 전후시기였다. 그만큼 역동적인 시대를 살다간 사람이었다.

혼란스러운 때였기에 그에 맞는 정치사상이 태어날 수 있었다. 도시국가 중심의 사회에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출현하던 시기였다. 이탈리아 반도를 넘보는 프랑스, 에스파냐와 같은 외부세력간의 힘겨루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간의 갈등,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 등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의 정세를 정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날카로운 통찰력의 소유자

만약에 그가 관직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널리 알려진 <군주론>과 같은 작품은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관직 생활을 너무나 즐겁게 수행했다. 복직을 위해 피렌체의 명문가였던 메디치가에 바친 책이 바로 <군주론> 이다. 그러나 오늘날 마키아벨리는 일개 서기관 보다는 정치사상가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시오노 나나미를 통해 바라본 마키아벨리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음흉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엉뚱했고 불운했지만 늘 유쾌한 남자였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그에게 아쉬운 점이라면 그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사람이었다. 서기관 이라는 자리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은 대단히 막강한 자리였다. 자리의 위치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하는 일은 매우 많아서 모든 정보는 자연히 그에게로 집중되는 자리였다.

그는 용병제가 판을 치던 당시에 국민개병제를 주창했다. 애국심을 가지지 않은 채 돈만 써서는 절대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당시에는 이상주의자로 비쳐졌던 그의 주장들은 오늘날엔 당연시 여기는 현실이 되어있다. 그는 시대를 앞서서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어느새 마키아벨리가 친구처럼 다가와

그가 살았던 시기는 기독교의 위세가 아직 등등해서 정치를 윤리와 동일시하던 때였다. 권모술수가 가득한 정치현실을 꿰뚫어 본 정치사상을 내놓았으니 당시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는 권모술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단지 정리해놓은 사람에 불과했다.

그가 바친 <군주론>을 메디치가에서는 아예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미 반메디치가 로 낙인찍힌 마키아벨리의 복직은 이루어질수가 없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남긴 책이 오늘날까지도 그를 권모술수의 달인 쯤으로나 생각하게 만들어놨으니 그는 불행한 편이었다고 보는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편으론 그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의 저자 시오노나나미 처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친구를 두고 있다는 것이 부러울 정도였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독자여러분. 이책을 다 읽고 나신 지금, 여러분에게도 마키아벨리가 '나의 친구' 가 되어있습니까?>

나는 '네' 라고 대답하고 싶다. 시오노 나나미가 15년전에 마키아벨리의 생가를 방문하고선 그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듯이 이 책을 읽고난 독자인 나 역시 마키아벨리의 친구가 되어버렸다. 정치는 다 썩었다면서 마키아벨리를 언급하고 싶은 분이라면 '친구' 를 변호하는 측면에서라도 이책을 한번 꼭 권해드리고 싶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한길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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