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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시의 숨결은 190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살아숨쉬고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뜨거움이 아나톨리아의 평원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를 달구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를 끈질기게 견뎌온 유적들은 이미 익숙해진 태양의 열기를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그곳에선 나와 같은 낯선 이방인만이 더위에 못이겨 땀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 셀수스 도서관
ⓒ 홍경선
신전을 벗어나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가 무섭게 '셀수스 도서관'이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과 함께 에페스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AD 135년 C. 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도서관 입구에 남겨져 있는 비문에 의하면 도서관을 지으라고 명한 C.Aquila는 이 건축물이 완성하기 전에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후계자에 의해 건축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도서관은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어 에페스 최고의 유적지이자,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모두 16개의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들이 완벽하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은 2층짜리 건물로 되어있다. 9개의 넓은 계단을 올라 1층에 오르면 세개의 입구가 나오는데 그 양옆의 벽감에는 각각 지혜, 사색, 학문, 미덕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 셀수스 도서관의 비석
ⓒ 홍경선
하지만 이는 복제품으로 진품은 현재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에페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2층은 마치 1층을 그대로 복제해 놓은 듯한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입구 바로 앞에서서 고개를 위로 들면 청명한 하늘에 다을 듯이 높게 세워진 도서관의 위용에 다시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에서 풍겨나는 묘한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각각의 처마에 새겨진 꽃무늬 조각들이 한층 더 세련된 예술적 가치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화려하진 않지만 여성스런 부드러움이 듬뿍 묻어난다.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웅장한 외부의 모습과는 달리 왠지 허전해 보였지만 건축 당시만 해도 무려 12,000여권의 장서가 과학적인 구조에 의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 마자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
ⓒ 홍경선
도서관의 바로 옆에는 아고라로 들어가는 두 개의 커다란 문이 있는데 각각 '마자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으로 불리운다. 이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아내 리비아, 그의 딸 율리아, 사위 아그립파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 문에 서서 바라보는 셀수스 도서관은 또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뜨거운 햇빛이 완벽히 차단된체 적당한 그늘에서 한없이 바라볼수 있는 도서관은 그 원래의 용도보다는 오히려 웅장한 신전처럼 느껴진다.

문 안쪽으로는 아르테미스 여신상과 에페스의 과거 복구 작업의 전개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음침한 공간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다산의 여신으로 불리듯이 가슴에 수많은 유방을 달고 있었다. 한때 이곳 시민들의 믿음을 듬쁙 받아왔던 그녀였지만 기독교가 전파된 후로 신화로밖에 머물지 못한 서러움이 혼자 남은 아르테미스 여신상에 서 쓸쓸히 묻어났다. 그 문을 벗어나 길게 뻗은 대리석 보도를 지나니 거대한 반원형극장이 나타났다.

▲ 아르테미스 여신상
ⓒ 홍경선
2만5천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이 야외극장은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AD 1∼2세기경의 유적이란다. 총 3단 구조로 이루어진 원형극장의 각 단은 모두 2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까지 오른다해도 상당한 운동량을 소모해야할 만큼 높은 건물이었다. 3층의 일부는 아직 발굴, 복원중이어서 철조망으로 막혀져 있다.

3층 꼭대기에서 바라본 극장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의 야외오페라 극장과도 같았다. 야구경기장의 홈베이스처럼 파인 중앙의 홈에는 당시 바닥에 깔았던 대리석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그 앞으로 총 높이가 18미터에 달했다는 실내 정면의 흔적이 부서진채로 남아있다. 한참동안 밑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 원형경기장
ⓒ 홍경선
또한 극장 뒷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피온산 언덕과 똑같은 크기로 차곡차곡 쌓인 계단은 스스로 음향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크게 한번 고함을 질러대면 곧바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는 것이 자연적인 음향시절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곳은 한때 아르테미스 신을 섬기던 데미트리우스와 장인들이 사도 바울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이며 바울의 추종자들을 공격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선 복원 후 매년 봄마다 에페스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극장의 높은 곳에 앉아 오랫동안 휴식을 취했다. 이곳 경기장에 오기전까지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지붕하나 없는 에페스 유적을 쉼없이 돌아다녔다. 높은 언덕아래로 길게 곡선으로 뻗어있는 거리를 따라 걷고 있노라면 저절로 AD 100여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거리 양옆으로 세워진 높다란 기둥들은 과거 번영했던 에페스의 영화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처량하게 남겨진 기둥들은 그 어떤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단지 오랜 세월의 흐름속에 견디지 못한 옛 추억들만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청명한 하늘과 하얀 대리석 건물들, 그리고 누런 들풀로 뒤덮인 아나톨리아 지방의 황량함이 서로 묘한 조화를 이루며 과거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했던 찬란한 도시국가 에페스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로마제국 아시아속주의 수도이자 아시아 무역항로의 종착지로서 막대한 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던 당시 에페스 시민들의 생활상을 떠올릴수 있었다.

그렇게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높은 계단에 앉아 BC 1500∼1000년 사이 전설속의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로스에 의해 처음 세워진후 페르시아와 알렉산더의 지배를 거쳐 로마의 속주가 되어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때까지 그 기나긴 역사의 흔적을 통과했다는 기쁨을 스스로 만끽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배부른 상상을 하고난후 극장을 벗어났다.

극장에서 나오면 이곳 야외 원형극장에서 에페스 항구까지 길게 뻗어있는 아카디우스 도로가 보인다.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아카디우스 황제 시대에 복구된 이 길은 총길이 530m, 폭은 11미터에 달한다. 도로의 양옆으로 수많은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이 서있다. 하지만 아직 복구공사가 한창이어서 멀리서 바라만 볼뿐 직접 거닐어보진 못했다. 이 도로를 옆에 끼고 길을 나서다 보면 아름드리 소나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거리가 나오는데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벌겋게 익은 맨살을 건드리는 느낌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수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기를 세시간여. 어느덧 에페스 여행의 막바지에 다라 이렇게 상쾌한 기분에 취하게 된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다 왼쪽의 샛길로 들어서면 기독교의 성지순례지 중 하나인 성모 마리아의 집이 나온다. 하지만 이곳 역시 복구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들어가질 못했다.

▲ 셀수스도서관
ⓒ 홍경선
아쉬움을 머금은체로 출구를 빠져나왔다. 출구이자 또다른 입구인 그곳엔 여러 가지 관광상품이나 토산품들을 파는 상점들로 가득했다. 이미 귀에 입은 '꼬레아' 소리를 외치는 상인부터 또다른 관광지로 안내하려는 여행사 삐끼들까지 모두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유혹을 했다. 한참동안 그 소란스러움에 오랜 역사의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 사그러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차가운 음료수로 목을 축인후 숙소로 돌아가는 승합차에 올라 눈을 감았다.

굳게 닫힌 창밖으로 좀전까지 지나왔던 기나긴 에페스 유적군의 모습이 투영되기 시작한다.이곳까지 길게 이어진 도로 양옆으로 부서진 옛 건물들이 수두룩한 그곳은 기원전부터 시작하여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번영을 누렸던 고대도시였다. 그 흔적을 다른 어느곳보다도 온전하게 보존해놓은 이곳 에페스 유적군은 과거 에페스의 영광을 한눈에 읽을수 있을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에페스 유적군
ⓒ 홍경선
구석구석 일일이 유적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아도 곧게 정돈된 도로 양옆으로 무수히 많은 유적들이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둔체로 서있다. 이곳을 찾는 우리들은 그저 지나가면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개를 살짝 좌우 양옆으로 돌리듯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고대도시의 흔적을 엿볼수가 있다. 여기에 에페스에 대한 사전지식까지 익혀둔다면 짧은 시간내에 천여년의 역사를 잠시나마 훑어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는 그저 길을 따라 그 기회들을 하나하나 주어담으면 그만인 것이다.

고대도시 에페스.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나마 온전한 상태로 당시의 영광을 유지하고 있는 이 건축물들은 고고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쉽게 접할수 있는 기회를 남겨두고 있다. 우리는 그저 뜨거운 태양빛을 감당할수만 있다면 하나하나 그 유적들을 살펴보면서 몸소 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듯이. 임자가 없다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섭취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숨쉬는 고대도시의 흔적을 자연스레 접하면서 함께 숨을 쉬고 내밷으면 되는 것이다. 이곳 에페스의 유적은 예나 지금이나 또 먼훗날 미래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한결같이 머물고 있을테니까.

덧붙이는 글 | 지난 2002년 6월에 떠난 두달간의 유럽 배낭여행 도중 터키 에페스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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