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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시 에페스. 다도해라 불리는 터키 서부지역의 에게해에 살아숨쉬고 있는 이곳은 일찍이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나가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당한 후 융성해진 곳이다. 이후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 소아시아의 행정수도이자 교통의 중심지로서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며 오늘날 이스탄불, 카파도키아와 더불어 터키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 반드시 거쳐가야할 최고의 관광지로 제3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성요한 교회를 둘러본 후 숙소에서 대여해준 승합차를 타고 에페스 유적지로 향했다. 셀축에서 이곳까진 30여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창 밖에서 황량한 아나톨리아의 풍경이 스치듯 지나간다. 열린 문틈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한없이 얼굴을 내밀어 본다. 부딪치는 바람에 의해 전해지는 상쾌한 촉감이 온몸에 퍼져간다. 하지만 이도 잠시뿐 어느덧 '에페스 유적지'에 도착하자 뜨거운 태양이 고대도시를 달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황량한 벌판을 붉게 물들인 들풀 사이로 고대 유적의 흔적이 처량하게 남아있다.

▲ 'VARIUS의 목욕탕'
ⓒ 홍경선
에페스 유적의 입구는 두 군데가 있는데 내가 들어간 곳은 언덕위쪽의 'VARIUS의 목욕탕'이 있는 곳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에페스 유적군은 마치 한바탕 폭격을 당해 폐허가 돼버린 것처럼 보였다. 군데 군데 부서진 기둥과 돌덩이들이 가까스로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나마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무너져 내린 채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무참히 부서진 고대도시로 서서히 들어가 본다.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은 메마른 건초더미 언덕 아래로 약간이나마 형체를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는 AD 2세기경에 지어진 로마시대의 목욕탕이라 한다. 지금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돌덩이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아치형의 문 세 개가 전부이지만 예전에는 바닥으로 뜨거운 공기가 들어올 정도로 발달했었다고 한다.

목욕탕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거대한 기둥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고대 아고라(시장)와 바실리카가 나온다. AD 14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재건축된 아고라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기둥조각들을 빼놓고는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엔 큰 은행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곳이었건만 지금은 이렇게 하얀 기둥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 고대 아고라와 바실리카 유적
ⓒ 홍경선
바실리카 역시 단 두개의 기둥만이 옛 흔적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네 개의 둥근 돌을 쌓아 올려놓은 바실리카의 기둥들은 대접받침 장식이 전아한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오니아 양식이었다. 아무래도 이곳 에페스가 로마시대 소아시아의 수도였던만큼 오리엔트 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록 높다란 기둥 두 개만이 전부였지만 왠지 모를 여성적인 경쾌함과 우아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 두 유적 위로는 언덕의 한 면을 깎아지른 듯이 놓여있는 '오데이온'이 자리잡고 있다. 폼페이에서 보았던 원형경기장의 1/4도 안되는 작은 넓이였지만 AD 150년경 지어질 당시에는 1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서는 각종 공연이나 귀족들의 회의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시장과 바실리카, 그리고 콘서트홀이 함께 어우러진 이상적인 공간구조였다고 볼 수 있다.

▲ 앙코르왓을 떠올리며
ⓒ 홍경선
다시 발걸음을 옮겨 하얀 돌기둥들이 쓸쓸하게 서있는 시청을 지나 계속해서 부서진 건물들을 통과했다. 사방 어느 곳을 둘러봐도 초라한 돌덩이 뿐이었다. 뭐하나 온전하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오랜 시간 세월의 모진 풍파에 견디지 못한 것이었을까? 특히 AD 17년에 일어난 대지진은 찬란했던 고대도시 에페스를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이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재건축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붉게 달구었다. 듬뿍 바른 썬크림도 소용없었다. 이미 옷이 미치지 않는 맨살들은 벌겋게 익고 있었다. 변변한 지붕하나 제대로 붙어있는 곳이 없었기에 특별히 햇빛을 피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거대한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유적이 있어 그 안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좁은 공간 사이로 알 수 없는 바람이 밀려온다. 천정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절묘하게 엉켜있는 바위들의 공간적 구조로 인해 안심할 수 있었다.

특별히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기에 각 유적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이나 건축양식에 대해서도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있어 가장 최적의 느낌을 주는 것은 그 건물이 얼마나 온전한 상태로 나를 맞이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군은 잊을 수 없는 환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이곳 에페스와 같이 세계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나라에 의한 유적은 아니었지만 그 예술적 가치만으로 따져볼 때 세계 어느 곳에서도 앙코르 유적만한 곳은 없으리라.

그렇게 잠시동안 그늘이 안겨다준 짧은 휴식에 취해 옛 추억을 더듬어보았다. 비록 앙코르와트에서의 추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지만 이왕 로마의 역사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이곳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고대도시의 영광이 남아있지 않은가. 뜨거운 태양은 좀처럼 지칠 줄 몰랐다. 유난히 파란 하늘은 하얀 대리석 유적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나톨리 지방 특유의 황량한 벌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사이로 듬성듬성 높다란 기둥들이 일렬로 늘어서며 오고 가는 관광객들에게 까만 그림자로 인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다시 힘을 내어 도서관 앞쪽으로 쭉 뻗은 내리막길을 따라 걸으니 커다란 두 개의 기둥이 앞을 가로막았다. 사자의 가죽을 입은 헤라클레스가 조각되어 있는 '헤라클레스의 문'이었다. 4세기에 지어진 이곳은 특히 다른 건물들의 기둥에 비해 두 기둥사이가 무척 좁아보였다. 이는 동쪽문으로부터 오는 수레들이 들어갈 수 없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이 문을 통과하여 커다란 돌덩이들이 바둑판처럼 정돈된 CURETES 거리를 지나갔다.

길 양옆으로는 많은 기둥들이 듬성듬성 위태롭게 서있었다. 금방이라도 다가가 힘을 준다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기둥들 사이로 아직 뜨거운 태양의 공격을 당하지 않은 잡초들이 그 푸르름을 한껏 뽐내고 있다. 하지만 황량한 벌판을 가득 메운 건 여전히 메마른 건초들이었다.

▲ 모자이크
ⓒ 홍경선
거리 왼쪽의 높은 비탈에는 부서진 많은 건물들이 모여있었다. 대부분 AD 1세기에서 7세기까지 사용되었던 부유층들의 집이란다. 하지만 아무리 구석구석 훑어봐도 도저히 이곳이 집이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3층으로 쌓여진 기둥들이 복합거주 지역이라는 흔적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이 집들의 바닥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터키의 특산품 중 하나인 양탄자를 보는 듯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자이크는 폼페이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양을 띠고 있었다. 중앙의 별모양 주변으로 다양한 색깔의 돌들이 한 쌍의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냈다. 또한 부분 부분 새나 나무들이 장식되어 있어 그 예술적 가치를 한껏 드높이고 있었다.

▲ 화장실
ⓒ 홍경선
집들의 앞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화장실과 목욕탕이 나온다. '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이라 불리는 이 목욕탕은 당시의 부유한 크리스찬 여자인 스콜라스티카의 이름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L자 형태의 구조로 그 안에는 탈의실, 냉탕, 온탕, 열탕 등 완벽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그 옆의 화장실 역시 L자 형태였는데 마치 열쇠구멍처럼 생긴 변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하지만 겉으로 단순해 보이던 것과는 달리 직접 앉아보니 엉덩이에 딱 맞게 만들어져 있었다. 19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그 위에 앉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표면은 상당히 닳아있었다. 어쨌거나 당시 사람들의 힙 사이즈가 지금의 나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봐서 몸집 역시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 같다.

▲ 하드리아누스 신전
ⓒ 홍경선
이 목욕탕의 옆에는 AD 2세기에 지어진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있다. 하드리아누스(Hadrianus)신전은 이곳 에페스에 남아있는 신전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도미티안 신전 이후 두번째로 로마의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란다. 로마 건축물의 대부분이 황제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만큼 이곳 역시 AD 138년에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곳이다.

AD 117∼138년 사이에 로마제국의 황제로 있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5현제 중의 하나로 추앙받던 황제로서 속주들의 안보와 육성에 힘썼으며 국가의 내실을 다지는 행정, 군사 등 제국의 기초가 되는 제도들을 다듬고 혁신했으며 학문과 예술 등의 학술적인 면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역대 황제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의 양자이자 후에 황제가 되는 안토니누스피우스 황제에 의해 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모든 로마인의 존경을 받아왔던 그의 치세를 뽐내기라도 하듯이 신전은 입구에서부터 이전의 유적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비록 입구의 기둥과 본관의 기둥만을 남겨놓고 있었지만 지붕과 벽을 수놓은 부조물은 그 아름다움에 있어 로마시대의 유적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 운명의 여신 '티케'
ⓒ 홍경선
하얀 대리석 기둥이 인상깊은 입구는 모두 4개의 기둥이 남아있는데 이중 2개의 기둥은 다양한 건축양식이 복합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매끈한 기둥끝은 나뭇잎을 묶은 듯한 모양으로 봐서 코린트 양식인 것 같았다.

하지만 기둥 위에 얹혀있는 아치형의 처마는 9개나 되는 화려한 무늬의 대리석들로 약간의 오차도 없이 서로 단단히 이어져 있었다. 그 위로 살며시 또다른 처마가 얹혀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는 이오니아 양식과 코린트 양식이 복합되어 만들어진 콤포지트 양식으로써 특히 운명의 여신 '티케'가 조각된 화려하고 섬세한 부조가 인상깊다.

▲ 신전 안쪽문의 메두사 조각
ⓒ 홍경선
하지만 이내 안쪽문의 지붕에 조각된 메두사를 보고 있노라면 그 자리에서 마치 돌이라도 된 듯이 굳어져 버린다. 이탈리아의 로마를 거쳐 폼페이 유적을 지나 이곳 터키 에페스까지 왔건만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로마시대의 건물 부조중 이보다 아름다운 부조는 보지 못했다. 봉긋한 가슴과 양팔을 넓게 벌린 모습에선 공포의 존재가 아닌 포용의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비록 수없이 많은 뱀들이 머리를 수놓고 있었지만 하얀 대리석의 질감이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두 문 사이로 이어진 돌담에는 다양한 모습의 신들과 로마군단의 행진, 혹은 전투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002년 6월에 떠난 두달간의 유럽 배낭여행 도중 터키 에페스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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