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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이는 학교 잘 다니나?

숱하게 듣게 되는 질문이지만 항상 답변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의례적인 단순한 안부 물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대안학교다 뭐다 유난을 떨면서 떼어 놓는 것은 교육적으로 좋을 게 없다는 핀잔이 섞여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아직 실험단계인 대안교육에 대한 염려가 묻어 있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사람은 진지하게 자식의 중학교 진로 선택을 위해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 역시 내 대답은 마찬가지다. 늘 머뭇거려진다. 내 경험상 백이면 백 몰라서 묻는 사람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섣불리 이러쿵저러쿵 했다가는 논박을 당하기 일쑤다. 자식 교육에 대해서는 단순한 열정의 단계를 넘어 너나없이 전문적인 식견으로 무장한 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자식 가진 모든 학부모들이.

지난 1년간 그런 질문과 그런 대답을 주고받으며 이제 와서 간추려지는 것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잘 한 것인지 또 우리애가 계속 실상사 작은학교를 다닐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리산 실상사에 대안 중학교가 세워진다는 것을 논의 초기부터 알았지만 우리 애를 그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벼르고 별러서 보낸 기억이 아니다. 실상사 작은학교와 무관하게 우리는 실상사에 드나들었고 작은학교와 관계없이 도법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작은학교가 생기기 전에 인드라망이라는 실상사가 주도하는 생활공동체에 가입을 했었고 녹색평론의 독자모임에서 실상사 귀농학교 교감선생님도 만나게 되었고 환경운동연합 등산모임에서 그런저런 이야기도 오고갔다. 어디든 아빠를 잘 따라 다니는 새날이도 그런 대화와 분위기에 늘 가까이 있었다.

이것만으로 어린 딸을 없는 살림에 한 달 근 40만원씩이나 부담해가면서 멀리 산기슭 절 동네로 유학(?) 보냈으리라 보기에는 왠지 석연치 않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8년 전 완주군 소양면으로 이주해 와서 시골 초등학교에 두 아이를 보내고 새날이를 졸업시키면서 학교와 선생들에게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니다. 학교의 폭력성 때문이었다. 학교주변의 폭력배 문제가 아니라 학교 자체가 폭력 뭉치라는 생각에 절망했었다. 이것도 대안학교를 택한 원인이라면 원인이 된다.

폭력과 거짓말로 뭉쳐진 제도교육

방학 내내 탱글탱글 놀다가 날밤을 새워 인터넷에서 한 달 동안의 날씨를 조사해 가며 일기를 쓰는 자식을 보고 달 포만의 개학 첫날 존경하는 선생과 사랑하는 제자여야 할 그들의 첫 대면이 회초리 밑에 손바닥부터 벌려야 하는 운명이라는 게 참 비참해 보였다.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니 학교교장과 학부모 관계가 주종관계 같았다. 선생과 교장관계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렇다면 교장이 성인이었냐 하면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존경은커녕 뒷구멍에서는 서로 욕하고 면전에서는 쩔쩔매고 했다. 그렇지 않은 선생도 있다고 누군가가 귀띔해 준다해도 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제도 자체에 대한 실망이어서 그렇다.

생활과 훈육이 분리되면서 그 간극을 폭력과 사기가 메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동생들을 절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때렸으니 맞을 짓을 한 너는 맞아야 한다면서 몇 대 맞을 거냐고 윽박지르는 선생. 학생들보다 야단맞을 짓을 더 많이 하는 어른들. 이건 비극이지 못해 희극이다. 인성교육이네 영성훈련이네 하면서 벌어지는 공포와 협박을 기초로 하는 부모들의 아이에 대한 다그침은 또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실상사 작은학교는 최소한 버스에 앉아 효도가 뭐고 어른에 대한 공경이 뭔지 하는 책을 읽느라고 곁에 서 있는 노인을 못 본 체하는 그런 사람을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하나 가지고 보냈다. 생활을 잘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머리보다는 손발이, 책상보다는 밥상이 살아가는데 몇 배 중요하다는 것을 안 이상 그런 것을 가르치는 학교라면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보내자고 한 것이다.

대안학교 학부모가 되고나서....

작은학교 학생들은 빈농가를 고친 집에서 선생님 한분과 학생 서너 명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당번을 정해 자취를 한다. 이를 '작은가정'이라고 부른다.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가정생활이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작년 어느 봄날 이 작은가정에 갔다가 어린 중1 여학생들의 면 생리대가 기저귀처럼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훨훨 날리는 것을 보고 어떤 전율 같은 걸 느꼈다. 성적 전율? 천만의 말씀. 그런 고약한 말씀 마시라. 생명과 환경을 대하는 학교 측의 철저함과 이에 잘 순응하는 학생들에 대한 환희의 전율이었다.

지난 일년간 이런 예는 참 많았다. 아이가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데 아이가 와 있던 어느 날. 내가 밖에서 일하고 늦게 집에 돌아왔더니 집 마당에 늘어놨던 빨래랑 장작더미랑 캐다 놓은 감자소쿠리랑 아이가 모두 잘 들여 놔서 비를 맞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밭에서 상추나 쑥갓을 보면 저건 어떻게 데치면 맛있고 어떻게 해서 된장을 풀면 좋은 국이 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살림이 뭔지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 새날이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몇 번 시내로 놀러갔던 적이 있다. 송현이, 민지, 유화 등등 우리집에도 자주 놀러오던 아이들이다. 새날이에게 물어봤다. 잘 놀다 왔니? 무슨 얘기들 했어? 어디어디 다녔니? 용돈 얼마 남겨왔니. 이리 내놔라. 등등. 장난스럽게 소나기 질문을 한 아빠에게 새날이는 시무룩하게 대꾸를 했었다. 애들이 게임 얘기하고 시험 얘기만 해서 지루했다는 것이다. 선생 욕하고 가수 얘기가 전부라서 화제를 돌려보려고 잠시 말이 끊기면 잽싸게 작은가정 얘기 지리산 등산 이야기, 텃밭 가꾸기, 나무다루기 등 이야기를 꺼내 봐도 허사였다고 했다.

이런 말들을 자식에게서 듣게 된다는 것은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의 행운임에 틀림없다.

새날이가 학교 잘 다니냐고 묻는 사람들은 으레 고등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나는 단 한번도 고등학교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 그렇다. 왜냐? 고등학교 보내기 위해 중학교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 시절이 온전한 그의 인생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무엇을 위한 수단이나 과정으로 교육이 자리 잡으면서 교육이 아이에 대한 억압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학든 취직이든 인격적 자질 함양이든 다 마찬가지다.

세계평화를 위한 거대담론으로 밤을 밝히면서도 이웃과는 땅 한 평 놓고 재판을 벌이는 그런 인간이 안 되기 위해 학교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시절에는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 좋아서 새날이는 실상사 작은학교에 다닌다. 무엇을 위해 인내하고 자기를 억압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교육인가 의심해 볼 일이리라.

그래서 내 머뭇거림은 참 깊다.

과연 새날이가 2학년 때도 계속 학교를 다녀야하나? 집에서 나랑 같이 살면 안 될까? 이제 6학년이 되는 작은아이만이라도 지금부터 나랑 같이 나다니면서 내년에 실상사 작은학교 가지 말고 집에서 살자고 공을 들여볼까? 새날이는 이왕 버린 몸 포기하고? 뭐 이런 갈등들이다. 그래서인지 새날이 엄마는 나를 상당히 위험시하고 있다.

대안학교를 흔히 대안적 삶을 사는 훈련을 하고 자질을 키우는 기관이라고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르다. 지금 여기서 이 순간을 대안적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대안학교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를 통해 보고 듣고 만들고 했던 '보따리학교'가 자꾸 나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학교라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다 스승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요새는 새날이 학교 잘 다니느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해 버린다. 모든 게 만족스럽다고. 내일도 그렇게 말 할 것이다. 이곳 소양중학교에서 학교로 나오라는 공문서가 집으로 배달되어서 학교에 가봐야 하는 날이다. 부모로써 자식에 대한 교육은 국민 된 도리로써 신성한 의무사항인데 왜 학교 안 보내느냐는 닦달이다. 작년부터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된 덕분에 십여년만에 나는 다시 범법자가 되었다. 교육법 위반이다. 인가도 안 난 실상사 작은학교 같은 곳은 아무리 다녀도 교육도 아니라는 것이 교육당국의 공식적인 태도다. 이럴 땐 모든 게 만족스럽다고 말해버리면 제일 속 편하다.

교육의 본래 속성이 다양성이어서 내 대답도 때와 장소에 따라 이렇게 다양할까? 생각할수록 잘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전북지역 종합 문화잡지 '문화저널'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달 초에 썼던 글인데 시의성을 고려하여 손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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