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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천주교 대전교구 태안교회) 신자들은 지난달 23일 제12대 주임으로 부임하신 구본국(베난시오) 신부님과 처음으로 설 명절을 함께 지냈다. 특별한 일들이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이곳 태안을 떠나 타지 본가로 설을 쇠러 가신 신자들도 많고, 또 출가하여 살면서 설에 고향에 오지 못한 신자들도 많겠기에 어제 설날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풍경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우리 교회는 설날과 추석날의 '조상들을 위한 합동위령미사'를 특이한 모습으로 지낸다.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로 하여금 집에서 마련한 음식들을 조금씩, 또는 한 가지씩 가져오게 한다. 그 음식들을 미사 전에 제대 앞에 마련한 큰 상 위에 보기 좋게 진설을 한다. 그리고 그 상 앞의 작은 탁자 위에 두 개의 향로와 향가루를 놓는다.

말씀의 전례 후 봉헌예절 시간에 신자들은 가족별로 차례로 제대 앞으로 나와서 나란히 선다. 가족 대표가 손으로 향가루를 조금 집어 분향을 한 다음 다함께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미사예물을 미리 내지 못한 신자들은 이때 향대 옆에 놓여진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다.

신자들은 연기가 너무 나지 않도록 향가루를 조금씩만 집어 향로에 넣는데, 향내음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성당 안을 은은히 울려 퍼지는 고전적인 테이프 음악이 매우 정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 본당의 이런 명절 미사 모습은 제10대 백성수 시몬(현 대전 가양동 주임)신부님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것이 제11대 김종기 세자요한(현 대전가톨릭문화회관장)신부님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벌써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신자들은 이런 명절 미사를 무척 좋아한다. 이런 미사를 처음 시행하신 백성수 신부님과 그것을 계속 이어가시는 신부님들께 감사하는 마음도 크다. 명절날 성당에 와서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지내는 '맛'이 한결 진중해지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미사 후에는 제대 앞에 진설했던 모든 음식과 술을 성당 마당이나 친교실로 옮겨놓고 음복을 하는데, 이 음복에도 많은 신자들이 참여한다. 자유롭게 자리를 옮겨가며 서로서로 설 인사와 덕담을 나누며 음식을 즐기는데 하나같이 즐거운 모습이다.

그런데 올 설에는 미사 때와 미사 후에 특이한 모습들이 있었다. 말씀의 전례 후 분향 배례 시간에 맨 먼저 분향을 하신 신부님은 그냥 허리만 굽혀 절을 하는 게 아니었다. 바닥에 꿇어 엎드려 큰절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 가족이 모두 제대 앞으로 나와 일렬로 나란히 섰을 때 나는 대표로 분향을 하고 나서 나도 신부님처럼 큰절을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큰절을 하면 다른 가족과 다음의 가족들 중에 큰절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될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통일적이지 않은 혼잡한 상황이 빚어질지도 몰랐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 나는 종전처럼 그냥 허리를 굽히는 절로 대신했다.

(우리 가족은 삼형제 가족이 모두 모이니 어머니까지 13명, 대가족이었다.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마다 맨 먼저 분향 배례를 한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맨 앞자리에 앉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성가대 석에 앉아 있다가, 그리고 아들녀석은 복사를 하다가 내려와서 합류를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대체로 성당의 앞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내 아이들로 하여금 알게 모르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품을 갖게 하기 위하여 미사 때마다 맨 앞자리에 앉고 하는데, 이제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신부님은 미사가 끝나고 파견성가를 부르기 전에 또 한 가지 특이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신자들에게 우리 다같이 하느님께 세배를 드리자고 했다. 신자들은 당신을 따라 90도로 허리 굽혀 절을 하라고 하시고는, 제대 앞으로 내려오신 신부님은 바닥에 꿇어 엎드려 큰절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부님은 자신과 신자들 모두 맞세배를 하자고 하셨다. 올 한해도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행복하게 사시기를 축원하신 신부님은 신자들을 향해 다시 바닥에 꿇어 엎드려 큰절을 했다. 신자들은 의자 때문에 그냥 허리만 굽혀 절을 해야 하니, 어찌 보면 신자들이 신부님의 큰절을 받는 형국이었다.

마지막으로 신부님은 신자들끼리 세배를 하자고 하셨다. 신자들은 이미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지만, 다시 한번 서로서로 절을 나누면서 진짜 세배를 주고받는 기분 때문인지 하나같이 함빡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였다.

신부님은 미사 후에 신자들이 사제관으로 많이 와서 세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뱃돈의 액수를 공표했다. 어른에게는 1천원, 어린이들에게는 2천원, 중학생에게는 3천원, 고등학생에게는 4천원, 대학생에게는 5천원을 주겠다고 하셨다.

참으로 엄숙하고 기분 좋고 즐거운 설 미사를 마친 신자들은 제대 앞에 진설했던 음식들을 들고 친교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즐겁게 음복을 시작했다.

그 시간에 신부님은 사제관에서 세배를 받기 시작했다. 세뱃돈의 액수까지 공표된 탓인지 먼저 학생들이 사제관의 집무실 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 가족은 우선 친교실로 가서 음복을 했다.

잠시 친교실로 와서 음복을 하신 신부님은 다시 사제관으로 가셨다. 우리 가족도 곧 친교실을 나와 사제관 앞으로 갔다. 먼저 아이들이 사제관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세뱃돈이 담긴 하얀 봉투를 하나씩 들고 나오며 즐거워했다. 대전에서 온 막냇동생네 아이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어른들 중에서는 맨 먼저 세배를 한 내 가운데제수씨는 세뱃돈을 1만2000원을 받았다며 싱글벙글했다. 어른으로서는 첫 번째로 세배를 했기 때문에 특별히 더 받은 것이라는데, 신부님은 천원짜리 두 장에다가 만원짜리 한 장을 주시며 '2천만원'이라는 말을 강조하셨다고 한다. 2천만원처럼 쓰라는 뜻일 터였다. 그런 일에 누구보다 앞장을 선 그녀에게 참으로 뜻 있는 보상이 주어진 셈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어서 나는 가운데제수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김용순 사목회장님이 세배를 하고 나온 후 우리 부부는 함께 사제관으로 들어갔다. 집무실의 맨바닥에 다리를 개고 앉으신 신부님은 고마워하시는 표정이었다. 우리 부부가 세배를 드리니 신부님은 맞절을 하셨다. 나는 신부님께 세배를 드리며 저 옛날 내 아버님과 노인들이 젊은 신부님께 정성스럽게 세배를 드리던 그 정겹던 풍경이 한 순간 아슴히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는 것 같은 감미로운 느낌을 받았다.

우리 부부의 세배를 받으며 맞절을 하신 신부님은 "올해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시며 교회 일을 많이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서 옆에다 놓은 1천원짜리 돈 다발에서 빳빳한 새 돈 한 장씩을 집어 흰 봉투에 담으신 다음 우리 부부에게 하나씩 건네주셨다. 그러며 하시는 말씀.

"이 돈은 천원 짜리면서 복권이기도 해요. 이 세뱃돈이 축복이 되어 더욱 큰 기쁨을 얻게 될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시는 게 여러 가지로 좋지 않겠어요?"

"물론입니다."
나는 대답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님에게서 세뱃돈으로 받은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이 복권이기도 하다는 신부님의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한해의 첫날인 설날 신부님으로부터 참으로 좋은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이었다.

사제관을 나오며 아내도 한껏 즐거워했다. 어른이 된 이후로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우리 부부뿐만이 아닐 터였다. 신부님께 세배를 하고 나온 어른 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말을 했다.

"신부님 세뱃돈으로 우리 '또또복권' 한번 사볼까?"
이런 나의 농담에 아내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평생 동안 간직하고 살아야지요. 아니면 불우이웃 돕기에 보태던가…."
나는 즐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내와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신부님의 세뱃돈 때문에 한결 즐거운 우리 가족은 내 12인승 승합차에 모두 동승하고 곧 성당을 나와 더욱 열심히 성묘를 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성묘를 하면서 미사 강론 시간에 신부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되새겼다. 설날을 맞아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당에 와서 미사를 지낸 그 정갈한 마음으로 열심히 성묘를 하고, 가능한 한 옛날처럼 이웃집들에 세배를 다니고, 성묘 길에서나 어느 길에서나 만나는 사람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새해 인사를 하라는 말씀….

무슨 말씀이든 듣고 되새기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을 터였다. 예수님의 말씀이든 부처님 공자님의 말씀이든 실행을 해야 제대로 말씀을 사는 것일 터였다. 평소의 내 버릇이기도 하지만, 성묘 길에서, 그리고 저녁 무렵 가족과 함께 한 백화산 등산길에서도 보는 사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설 인사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모르는 사람에게도 반갑게 새해 인사를 하고, 고마워하는 상대방으로부터 답례 인사를 받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쁘고 즐겁게 쇠고 있는 설이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삼가 새해 인사를 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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