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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경찰과 검찰의 고문 및 잔인한 폭력행위를 줄일 수 있는가? 물론 적법절차를 따르며,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하며, 경검의 폭력과 고문 피해자는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도록 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검의 폭력과 고문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방안들이 있겠지만, 더들리(W. Dudly)가 편집한 저서에 따르면, 우선 경찰조직의 강력한 리더십, 내부개혁, 경찰과 지역사회간 접촉 강화, 경찰관의 거짓과 위증에 대한 확실한 기소와 처벌, 경찰도보순찰 활용, 민간인 조사위원회, 관련 법규의 강화, 연방 수준 및 풀뿌리 지방자치 수준의 개혁, 경찰의 폭력 및 고문행위에 대한 민간인 수사관의 함정수사 기법의 동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현재 민주화 이행기에 있는 동유럽 국가의 경찰들에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지만, 그뿐 아니라 불과 몇 년 전에야 비로소 군부정권시대를 마감한 우리나라의 경검에 대해서도 실정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법제도에 관한 한 그 바탕과 기본 시각은 우리나라야말로 일제시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이제야 사실상 민주화 이행기에 와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여러 방안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성이 더 큰 것은 경검 옴부즈만 같은 민주적 책임제도와 외부 감시 및 제재기관 제도의 도입이다. 이에 비하면 나머지 방법들은 결함이 매우 크다. 사건 발생 이후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검의 폭력 및 고문을 감시할 수 있는 민간독립기관이 긴요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연 국가인권위원회가 경검 옴부즈만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검증된 바는 없는 상태지만 그리 실효성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경찰과 검찰 비리에 대한 내부의 '침묵의 윤리규범' 및 경찰에 대한 공포심이야말로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다. 일반적으로 경찰폭력 비리에 대한 내부 침묵의 윤리규범 문제는 선진국이나 민주화 이행기 국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렇지만 경찰에 대한 공포심 문제는 민주화 이행기 국가들의 공통된 특성에 속한다.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의 구타와 고문 피해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처벌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면서 그와 같은 경찰의 비리에 대해 고발하도록 변호사들이 설득하는 경우에조차도, 이들 피해자들은 추가적인 고통을 당하게 될까봐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기 마련이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이들 민주화 이행기에 있는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경찰에 대한 그토록 커다란 공포심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법원과 기소 당국에 속해 있는 당사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심지어 대법원에서 무죄가 밝혀진 김모 순경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현직 경찰관마저 수사과정에서 고문당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의문사사건 진상 조사에 있어서 유가족들이 공포를 무릅쓰고 나서고 있는 상황에 있어서조차도, 예컨대 장준하, 이철규, 온갖 군의문사 사건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흔히는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해 조사권한이 제대로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해당 범죄를 저질렀을 기관 자체적으로도 진상규명에 따른 여파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도 경검 인권방지 역할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실효성도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1993년 이후 문민정부를 수립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민주화 이행기에 놓여져 있다고 볼 필요가 있다.

국제 고문방지제도

한편 국제법이나 국내법 수준뿐만 아니라, 경찰 및 검찰의 직무와 업무범위에 관한 규정과 훈령들도 유엔고문금지조약에 맞게끔 개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으로 수사를 검찰이 독점하고 있으므로 의당 검찰 관련 규정에 대해서도 경찰에 대해서와 똑같은 조치를 취해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검찰은 사실상 경찰인 것이다.

유엔고문금지조약 제2조는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고문행위에 대해 개별적으로 책임져야 하며, 상급자나 기관이 지시했다 할지라도 잔인한 폭력이나 폭력행위에 대한 핑계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교육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검이 국제고문방지협약 및 관련 규정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취해진 조치들은 무엇이었는지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및 법무부 인권과가 있지만, 과연 이들 기관이 경검 폭력과 고문 방지를 위해서 어떤 지침을 마련해서 시행토록 하고 있는지도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엔고문금지조약에 따른 고문 책임 및 교육시행 기관은 역시 경찰도 경찰이지만, 가장 우선적으로는 수사권을 독점 행사하며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에 적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찰에게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은 채 그리고 기존 수사인력을 경찰로 이전하지 않은 채, 지금 서울지검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강력범이나 마약사범 수사를 경찰에게 돌려주자는 방안은 검찰의 기관이기주의의 소산일 뿐이다.

한편 유엔고문금지조약은 전세계 189개국 중 129개국이 가입하고 있지만, 국제앰네스티 측은 그중 대부분의 나라가 고문행위를 방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고문 피해자가 유엔인권위원회 산하 고문방지위원회에 개별적으로 직접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협약 22조의 수용을 천명한 가입국은 50개국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유엔총회 승인을 남겨두고 있는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는 고문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국제사찰단의 무제한적 고문현장 방문을 허용하며 국내에도 유사한 기구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선택의정서는 2002년 7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서 통과되었다.

이 선택의정서는 이제 유엔총회의 승인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 골자는 고문의혹을 받고 있는 구금장소에 대한 국제감시단의 방문조사 보장, 선택의정서 가입국에 대해 국제감시단과 동일한 국내체제 수립, 국제방문 활동경비에 대한 유엔 예산지원 등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1987년 당시 발효된 고문금지협약을 비준했으면서도, 금년 7월 이 선택의정서 채택을 논의할 때 처음에는 미국과 함께 반대편에 섰었다.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금년 8월 회의의 최종 투표에서는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초 이 선택의정서를 우리 정부가 유엔경제사회이사회에서 갑자기 선택의정서 안을 제안한 것이라서 논의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는 주장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이 선택의정서 자체가 최종적으로 유엔총회에서 통과되어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능동적으로 이 문제를 선도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경검이나 교도소 그리고 군대 등 관련 기관에 대한 국민들 및 시민단체들의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들의 참여를 어떤 형태로든 제도화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경검 유치장과 구치소에 대한 민간인 방문제도 신설이나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기간 연장 아닌 상설화 등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피노체트?

국제적으로 피노체트 사건은 국제사법에 대한 일대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국내의 억압통치 및 학살과 관련하여 국제법의 심판을 가하게 만들었다는 매우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거꾸로 우리나라의 경우 이유야 어떠하든 간에 광주민중학살의 주범이 이런 국제법의 심판을 피하고 있는 이유가 만일 국제형사법원조차 무력화시키고 있는 바로 그 미국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면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던 재판결과를 정치보복을 피한다는 이유로 사면해야 했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비극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골드스타인(Harvey Goldstein) 같은 학자는 결론적으로 경찰의 무력사용 권한 그 자체를 아예 없애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경찰이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전체 사회 구성원 중에 법을 준수하지 않고 경찰에 저항하는 사람이 있는 한, 무력은 경찰활동의 불가피한 수단적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때 문제는 잔인한 폭력이나 고문행위를 저지른 경검 측의 범죄에 대해서도 마땅히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검찰의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진상 및 은폐의혹들이 정확히 밝혀져 관련자들에 대해 응분의 정당한 국가폭력(?)이 가해지도록 함은 물론이고, 이를 감시할 수 있는 민간독립기관의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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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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