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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문인가?

이번 살인피의자에 대한 고문치사 사건은 경찰 아닌 검찰에 의해 저질러졌다.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 법원은 재판이라고 하는 국가형벌권 담당기관의 기초적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며, 이에 따라 경찰수사권이 독립되어 있었더라면, 이번 검찰 측의 고문치사 의혹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검찰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겠지만, 그리고 아직 그를 대신할 만한 과학적 수사방식을 충분히 발전시킨 상태는 아니지만, 인권수사에 관한 한 최근 우리나라 경찰은 오히려 검찰보다 진일보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경찰이 저지르는 잔인한 폭력 중에서도 고문은 독특한 유형에 속한다. 고문은 흔히는 경찰이 자백을 강요하거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때 저질러지게 된다. 물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살인 피의자 사망사건을 저지른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 아닌 수사단계에서 경찰의 역할을 도맡아 하다가 발생한 것이다.

고문은 경찰의 수사방식의 하나로서, 위력만이 실효성이 있다는 생각에서 경찰에 구금중이거나 통제 아래 있을 때 경찰관서나 다른 은폐된 장소에서 저질러지게 된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이런 점이 잘 알려져 있으며 흔히 관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진국도 경찰관서 내의 구타나 비인간적 처우가 중대한 문제로 부각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1987년 유엔총회는 고문금지조약(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을 채택했고, 동 조약 17조에 따라 그 감시기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최근 설립된 국제형사법원도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저질러진 경찰의 고문 문제를 관할권으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유엔고문금지조약의 고문에 대한 개념은 경찰학계에서조차 개념 규정을 통일하고 있지 못한 경찰의 잔인성에 대한 대체 규정으로서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고문이란, 공직자나 해당 위치에 있는 사람의 부추김이나 동의나 혹은 묵인 하에, 어떤 사람 혹은 제3자로부터 첩보나 정보 혹은 자백을 받기 위하여, 혹은 그가 저지른 행위나 그런 행위를 저지를 것 같다는 이유로 그에게 차별적으로 형벌을 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심각한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아픔과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때 단지 적법한 제재에 의한 것이거나 적법한 제재의 부수된 고통이나 아픔은 포함되지 않는다"(제1조).

경찰의 고문이나 잔인한 폭력행위는 그 속성상 은밀히 저질러지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에서 실증해 내기가 원천적으로 어렵게끔 되어 있다. 어느 나라 경찰을 막론하고 경찰 내에는 '침묵의 윤리규범'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밀주의를 지키라는 내부 규정까지 마련되어 있다.

내부침묵의 윤리?

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나 외부 단체가 이와 같은 경찰비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 내부적으로 이를 밝혀내 징계하는 경우란 없으며, 설사 있더라도 극히 드물다. 따라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경찰관은 물론이고 상급경찰관에 대해서까지 당연히 처벌토록 하는 것이야말로 그런 행위를 근절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

경찰의 일상업무에서 어떤 분명한 목적이나 필요가 없는데도 잔인한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경찰이 권위를 세우려고 이유 없이 물리적 폭력이나 욕을 통해서 누군가를 해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건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를 막론하고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인식이다.

라이스(Albert Reiss)는 '경찰의 폭력행위는 개인들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하다. 두 경우 모두 상대방이 실제로 도발하거나 아니면 도발하려 하는데 대해 화가 나서 위력을 사용하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이 지적은 고문 아닌 잔인한 행위에 해당되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것처럼, 경찰의 잔인한 폭력행위는 대체로 집회나 시위 혹은 소요사태가 있을 때, 공공장소에서 체포나 수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경찰이 잔인한 폭력행위를 저지르는 동기를 굳이 설명한다면, 경찰업무 그 자체가 이미 잔인하며 비인간적인 것인 데다가, 업무 자체에서 좌절이나 공포감을 일으키거나 긴장의 연속 그리고 하나 하나의 행동이나 부딪침들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경찰관들은 개인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것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엄청난 긴장에 빠지게 되며 그래서 자위적 행위가 심하게 표출되고, 이에 따라 잔인한 행위도 증폭되기 마련이다.

일반범죄와 경찰폭력

범죄 발생율이 높아지는 경우에도 경찰의 잔인한 행위가 증폭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국민들은 경찰의 잔인한 폭력행위를 용인하는 정도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어느 한 무정부주의 운동가 출신의 경우 과거의 활동을 접은 이후, 소속 주교에게 범죄나 무정부 사태를 막기 위해 심지어 경찰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 부여를 축복하여 달라고 탄원하기까지 했던 경우가 있었다.

한편 프랑스 파리 인근지역에서 경찰관의 총기휴대를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정책을 철회해달라는, 그러니까 계속해서 경찰이 총기를 휴대토록 해야 한다는 청원서에 5천여 명의 시민들이 서명하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 문제는 경찰의 조직윤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예컨대 스탠포드 대학에서 실시된 유명한 교도소 체험 실험에서 교도관 연기자는 죄수 연기자에게 엄청난 폭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죄수에 대한 교도관의 폭력은 교도관 자신을 의식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일상화되어 있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결과를 원용하여 이야기한다면 경찰도 경찰조직 구조 그 자체가 잔인한 폭력의 온상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의 잔인한 폭력과 고문, 이 양자는 그 동기와 원인, 진상이 밝혀지는 정도, 그런 행위를 해야 하는 필요성 수준 측면에서 상당히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나아가 고문이 정부 수준에서 책임져야 하며 국제기구의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인 반면, 잔인한 폭력 행위는 일반적으로 경찰조직(국가경찰이든 자치경찰이든) 내부 문제에 그친다는 점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구분은 경찰의 잔인한 폭력 행위라고 하는 것이 과연 경찰이 군사적 지위나 기풍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바꿔 말하면 군대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빈발하게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을 논의할 때, 매우 유용한 구별이 된다. 이 문제는 최근 특히 경찰이 준군사화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EU 국가들 사이에 있어서도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고문과 군대식 경찰모델

사실 경찰의 군사적 지위 그 자체는 경찰의 고문행위 발생 빈도수와는 아무런 실증적 관계가 없다. 경찰의 고문행위 그 자체는 문민경찰 모델이든 군대식 경찰 모델이든 상관없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를 통계화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예컨대 스페인의 '국가경찰'(문민경찰)보다는 오히려 '시민수비대'(군인경찰)가, 이탈리아의 '내무부 경찰'보다는 '국방부 경찰'이, 프랑스의 '사법경찰'보다는 '헌병경찰'이, 벨기에의 탈군사화되어 있던 이전의 '헌병경찰'보다 지금의 준군사화된 '헌병경찰'이,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경찰보다 북아일랜드 경찰이 각각 고문행위를 더 저질렀다는 외견상의 근거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일부 동유럽 국가들에 있어서 민주화되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다는 것은 투명성 정도 문제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전의 사회주의 체제 당시 경찰의 고문과 잔인한 행위는 거의 전적으로 은폐되었다. 즉 피해자들은 더욱 더 커다란 고통을 받게 될까봐 통상 감히 신고를 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점진적으로나마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동유럽 각국에서 관련 입법 정비, NGO 활동 및 경찰학 연구의 급증 등으로 인해 경찰의 잔인한 폭력과 고문행위에 대한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사정이 전보다 악화된 게 아닌가 하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가 되었다.

경찰이 저지르는 잔인한 폭력행위와 관련하여 경찰이 군대식 지위와 기풍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더 그런 측면이 강화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군대식의 미숙하며 생경한 직업 스타일이 그대로 표출될 뿐만 아니라, 군대식 경찰 조직 형태도 경찰을 주변환경으로부터 격리 고립시키게 된다.

이 경우, 경찰이 주민들과 친숙하게 접하며 지역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경찰활동을 하게 될 때보다, 경찰의 법규 준수수준은 떨어지고 잔인한 폭력행위로 빠질 가능성은 더욱 더 커지게 된다.

즉 군대는 기본적으로 적의 섬멸을 통한 승리가 목적인 반면, 경찰은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통한 서비스를 행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양자의 목표와 문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위진압에 있어서 주로 군복무를 대신하는 전의경 수준에서 경찰폭력이 빈발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폐쇄조직과 개방조직의 차이

한편 군대식 모델은 경찰과 지역사회간 접촉을 권장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력사용의 억지력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커뮤니티나 지역사회 중심의 자치경찰 활동에도 적합하지 않다.

군대식 모델에서는 경찰이 관할구역의 전반적 평화와 복지 문제에 대해 관심을 제대로 기울일 수 없다. 군대식 모델은 경찰의 잔인한 폭력 및 고문행위 저지르기와 이를 은폐하는데 있어서도 더욱 더 호조건이 된다.

이 경우 경찰이 시민들에 대해서 지켜내고자 하는 체제는 군부와 그 소속 구성원이 된다. 법집행은 단지 이런 군부정권의 정책과 입장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최근 세르비아의 경우 군대식 경찰모델은 전쟁범죄의 주역이 되었던 경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과거 군부정권 당시의 경찰도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저지해야 했던 일본 경찰 제도와 인맥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건국 초기의 호국경찰로 활동해야 했던 역사적 전통을 지금도 완전히 탈피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물론 검찰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검찰이 외국에서는 경찰이 담당하는 수사업무를 고집하다가 발생한 이번 고문치사 사건도 결국 일제시대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을 탄압하던 일제 관헌과 검찰로부터 내려온 폐습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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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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