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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환경의 영향

과학적 범죄수사를 위한 곤충학에 있어서 사후 시신에 바로 달라붙는 파리라는 이 곤충은, 성장단계에 있어서 여러 탈피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시신의 분해과정에 따라 그 단계가 일치되며, 이때 파리의 종에 따라 각기 다른 분해과정에 상응하게 된다.

그러나 파리의 탈피과정이 정해진 시간표대로 곧이곧대로 그대로 진행된다고 집착하게 되면, 사건이 발생한 계절, 지리적 위치, 시신의 크기, 기타 변수들에 따라 시신분해 속도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게 되므로, 파리의 탈피과정에 입각한 그 판단이 잘못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한편 시신이 발견된 지리적 위치는 시신에 발견되는 곤충들의 다양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산울타리 속에서 발견된 시신에서 발견되는 곤충군은, 불과 몇 미터 떨어졌더라도 숲이나 열려 있는 공간의 목장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과 비교해 보았을 때, 커다란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매장된 시신과 곤충

매장된 시신의 경우, 특히 분해속도에 통상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곤충인 금파리의 접근을 막아준다. 심지어 불과 2.5 센티미터 두께의 흙조차도 분해를 크게 막는다. 왜냐하면 금파리가 시신 아닌 지표면에 알을 낳는 경우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곤충이 매장된 시신에 모여들어 파고드는 것 역시 흙의 형태, 그 흙이 부패냄새가 새나가는 것을 막는 정도, 곤충이 얼마나 용이하게 그 흙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매장된 시신의 사후 경과시간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이렇게 곤충학적 증거는 별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되기 이전에 시신에 대해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 설명할 때 매우 귀중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예컨대 매장되기 이전에 경과된 시간은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가 없는 시신

시신 상에 금파리 같은 곤충학적 표본이 없는 경우, 이 점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여러 복잡한 상황이 전개된다. 예컨대 여름이며 외부임에도 불구하고 1주일 된 시신에서조차 파리 유충이 없는 경우, 이것은 시신이 여러 날 동안 곤충활동의 공격을 방어하게끔 조치되어 있었음을 가리키며, 따라서 이것은 발견 당시 시점에서 바로 최근에서야 비로소 그 장소에 버려진 것임을 입증해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시신이 놓여져 있는 주변에 있는 동물군과 시신 상에 있는 동물군들을 비교해봄으로써 사망 후 옮겨졌는지 여부를 확정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머리 없는 시신 사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1983년 9월 젊은 여인의 머리가 없는 시신이 영국 잉글랜드의 남서부 지역인 데본 카운티의 덤불 속에 숨겨져 있는 채 발견되었던 사건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시신엔 다 자란 많은 오피라(Ophyra) 종의 금파리 유충과 번데기가 시신의 옷 속에서 발견되었지만 칼리포라(Calliphora) 종은 극히 적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신에 금파리 유충이 별로 없으며 총격이 가해진 흔적도 없으며 신체기관 중 구명에 해당하는 부위를 파먹은 흔적도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시신은 여러 달 동안 아마도 실내에 있다가 그곳으로 옮겨졌으며, 그나마도 최근에서야 비로소 시신이 발견된 곳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해 주었다.

오피라 종이 나타난 데다가 사체의 내장기관이 비교적 잘 보존(이로 인해 당시 병리사는 사망한지 불과 7일 내지 10일 정도 지났다고 추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한다)되어 있는 탓에 시신 저장소는 따뜻하고 건조한 곳으로 판단되었다.

칼리포라 유충과 번데기가 있다는 사실은 시신이 약 20일 정도 발견된 장소에 있었으며, 그래서 그곳이 건조한 탓에 극소수의 금파리만 모여들었거나, 아니면 시신 저장소가 어디이든지 간에 머리 부분은 금파리에게 노출되어 파 먹혔고, 시신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되었던 시점에서 비로소, 따로 떼어내 제거되었다고 추정되었다.

나중에 가서 머리가 발견되었을 때, 칼리포라 종의 여러 유충과 번데기가 들어 있었으나, 시신의 몸통과 달리 머리 부분에는 오피라 종이 단 한 마리만 있었다.

이렇게 머리와 몸 부위에 각기 다른 구더기들이 있다는 점이 확정되었을 때, 몸통과 머리 부분이 노출되었다가 나중에 따로 떼어져서는 밀봉돼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가 되었다.

나중에 진상이 밝혀진 살인범은 실제로 희생자를 총으로 쏴 죽였으며, 5개월 동안이나 사우나 실에 보관했었고, 그 다음에 가서 시신이 발견된 숲에 버렸다고 자백했다. 머리 부분은 유기된 곳에서 따로 떼어내 도로 가지고 와서 차 트렁크의 플라스틱 가방에 보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약수사와 곤충학

앞에서 지적한 대로 파리 구더기의 경과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과학적 범죄수사를 위한 곤충학의 가장 흔하며 딱 들어맞는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러나 곤충은 그밖에도 여러 형태의 법의학적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는데 활용되고 있다.

예컨대 용의자, 물건, 피해자나 용의자의 차량의 이동상황에 관하여 곤충학의 도움으로 추적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 라디에이터나 타이어에서 곤충들 일부 혹은 전체 곤충들을 집어낼 수 있다.

그렇게 발견된 곤충과 각 곤충들의 생물학적 실태와 분포도를 점찍어 봄으로써 가장 많이 중첩되는 장소를 찾아낼 수 있으며, 그 결과 용의자가 있었던 곳을 묘사하여 집어낼 수 있다.

한편 마취제와 마약류 등의 제품 보관품에서는 흔히 여러 종의 절지동물들이 발견되게 되어 있다. 불법 마약류는 제조된 나라와 판매하는 나라가 서로 다른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어디서 제조되었는지 알아내는 일이 수사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여기서 찾아낸 절지동물들이 어느 종인지 그리고 그 세계적 분포가 지도상에서 식별되어질 수 있다면, 그 중첩정도를 판별하여 그 마약이 어느 나라가 생산지인지 또는 어느 나라에서 포장되었는지를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대마초 포장 박스에서 찾아낸 곤충들을 면밀히 조사함으로써 그 원산지를 알아내 이를 증거로 하여 처벌이 회피되고 마는 일을 막은 사례도 있었다. 예컨대 뉴질랜드에 밀수된 대마초에서 발견되는 곤충들의 분포상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덕분에, 그 대마초의 원산지가 지리적으로 어디인지 판단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경우가 그 좋은 사례가 된다.

당시 뉴질랜드에서 압수된 대마초 포장 박스 등에서 60여 종의 곤충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중 뉴질랜드에 존재하는 것은 쌀 바구미가 유일했으며, 다른 8종의 곤충은 오직 아시아에만 존재하며, 각 종별로 그 지리적 분포 지역들을 점찍어 나가 중복지역을 좁혀 보았을 때, 이 대마초는 서쪽으로 안다만 해에서 동쪽으로 태국에 이르는 테나서림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이 곤충들의 습성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이 대마초는 근처에 흰개미 서식처와 무화과나무가 있는 계곡이나 호수 근처에서 수확되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이 증거에 따라 용의자들 중 한 사람은 무죄변론에서 유죄변론으로 입장을 바꾸어야 했다.

한계와 전망

법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건들이란 대체로 각기 관련 변수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각기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이로 인해 흔히는 부족한 데이터에 대해 높은 정확성을 기하여 분석 평가하는 일이 극도로 어렵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금파리의 일생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향후 형태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측면의 확인방법을 개선하며, 사후경과시간 추정을 보다 더 정교하게 하기 위한 연구의 여지가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편 범죄수사 영역과 관련하여, 예컨대 시신의 위치 및 시신에 입혀져 있는 옷이나 시신에 무엇이 덮여져 있었는가 하는 요인이, 금파리의 접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밤낮의 주기 및 온도가 금파리 및 그 구더기의 활동에 어떻게 영향은 미치는지, 구더기 변형활동이 주변 온도와 나아가 그 자체 성장속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에 대한 세부연구가 더 필요하다.

한편 전자현미경을 통하여 이런 곤충들을 정교하게 조사하는 기법이 일상적인 확인을 위해서도 점점 더 많이 사용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것은 앞으로 특별히 알과 미처 자라지 않은 유충에 대한 향후 연구에 대해서도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향후 연구가 축적되면 법의학적 곤충학이 계량화 수준을 보다 더 높여가며, 보다 더 과학적인 한 전문분야로 자리잡게 될 것이고, 범죄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도 그 질과 정확성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서구에서 발달하고 있는 이 분야 연구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구에서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통상적인 법의학 분야 역시 우리나라는 그 폭과 깊이가 일천한 점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과학적 범죄수사를 위한 곤충학 발전은 아직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경검 수사당국도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엔 곤충학에 입각한 과학적 범죄수사를 실시하는 부서가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어느 방법 못지 않게 정확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곤충학을 통한 사후경과시간 추정 방법에 대한 연구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도 관계 당국 및 학계의 관심과 분발이 크게 요망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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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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