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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황찬란한 퇴임식 대신 참회의 퇴임 강연을 진행하는 이상선 교장.
ⓒ 윤근혁
"44년 5개월 동안 교직 생활하면서 내가 저지른 큰 죄는 3가지입니다. 바로 민주주의 교육 못한 죄, 통일교육 제대로 못한 죄,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몬 죄…."

지난 28일 오후 3시 40분부터 경기도 성남시 은행초등학교 2학년 5반 교실에서는 굵고 젖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8월 말로 정년 퇴임하는 이 학교 이상선(62) 교장이 휘황찬란한 퇴임식 대신 교사와 학부모 앞에서 소박한 퇴임 강연을 시작한 것.

퇴임식 대신 퇴임 강연 진행

▲ 이상선 교장
"참회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평교사 생활 32년 5개월, 교감 생활 7년 6개월, 교장 노릇 4년 6개월 동안 잘못한 게 너무도 많습니다."

교실을 꽉 메운 200여명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몸을 세워 이 교장을 쳐다봤다.

그는 평교사 시절 자신이 벌인 죄의 보기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꼽았다.

"학급 규칙을 일방적으로 정한 것, 용의검사 해서 더럽다고 아이 기죽인 것, 운동장에서 조회하면서 아이들 줄 세운 것, 3·15부정선거 때 소극적이지만 참여한 것, 박 정권 때 유신헌법을 찬양한 교과서로 교육한 것, 동족을 적으로 보는 6·25 노래 가르친 것, 웅변으로 글짓기로 북한을 적으로 가르친 것, 1등과 꼴찌를 발표한 것….'

공덕비 대신 눈물 젖은 참회록을 남긴 채 학교를 떠나는 이 교장. 하지만 그의 교직생활은 이날 그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는 게 전교조 이수호 위원장의 말이다.

이수호 위원장은 이날 송별사에서 "교장으로서 남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참교육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이상선 교장선생님은 아마 모를 것"이라고 칭송했다.

공덕비 대신한 눈물 젖은 참회록

사실이 그랬다. 이 교장은 교장으로서 다른 교장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실제로 이 교장은 교장 재직 시절, 평교사 중심의 전교조가 파견한 교장으로 통했다.

80년대 말부터 전교조 전신인 경기교사협의회 회장을 맡아 탄압을 이겨내며 전교조를 결성한 주인공이 바로 그였다. 교장이 되어 전국 최초로 소년신문을 거부한 것도 그였고, 운동장 조회를 없앤 것도 그였다. 올해 평화통일 잔치를 일주일 넘게 학교에서 벌인 당사자도 바로 그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모를 아픔도 많았다. 이 교장은 몇 달 전 술을 한 잔 걸친 사석에서 "교장회까지는 그래도 참겠는데 이젠 동문회까지 나를 '왕따'시킨다"면서 눈시울을 붉힌 적도 있었다. 지역으로 갈수록 대학 동문회는 교장이나 교육관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형편. 교육계에서 동문회 연줄이 곧 승진 밧줄이라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안다.

"아이들한테 죄만 짓던 제가 87년 6월 항쟁에 우연히 참여했는데 거기서 참교육을 하는 후배 교사를 만났어요. 진짜 내 교육이 잘못되었구나, 내가 여태껏 가르친 교육이 친일 군사문화에 바탕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치더군요."

87년 6월 항쟁에서 만난 후배 교사

이 교장은 이날 아침 아이들 앞에서 한 송별사에서도 스스로의 잘못을 고스란히 털어놨다.

"교장선생님도 지난 30여년 동안 북한을 적으로 미운 생각을 갖도록 가르친 점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지지난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얼싸안고 화해하는 그 모습은 감격과 환희의 눈물로 이 땅을 적셨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도 있고 나라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교직생활을 마감하며 이 학교 2400여 명의 아이들한테 시 한 편을 선물했다. 한 평생 교직생활을 정리하며 가슴으로 쓴 다음의 시는 아이들 하나 하나의 가슴 속으로 이어져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교직을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바치는 시
이상선

온실 속에서 부모님 사랑 듬뿍 받고
자란 너희들은
비바람 눈보라 휘몰아치는
경쟁의 거친 들판으로
발을 디밀었다

오늘의 우리 교육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교과서 지식 달달 외우게 하여
머리통 터지게 하는데
시험이다 시험이다 닦달하고
점수 올려 점수 올려 다그치고
일등부터 꼴등까지 등수 가리는데
사지 선다형 ○, ×가려내는
시험기술자 만드는데
그 속에서 너희들은
사랑보다 미움을, 우정보다 시샘을 배우게 하는데
공부 잘하면 대접받고 못하면 개밥에 도토리 되는데
커 갈수록 웃음을 잃고
안으로 안으로 마음을 닫아 가게 하는데
너희들에게 나는
무슨 얘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애들아!
민들레처럼 메마른 땅 곳곳에 흩어져
뿌리 내리고 꽃피워 갈 사랑하는 아이들아!
강한 아이는 약한 아이를
괴롭히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
많이 가진 아이는 못 가진 아이를
업신여기지 말고 나누어주어야 한다.
영리한 아이는 미련한 아이를
속이지 말고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어야 한다.
잘났다고 못난 아이
깔보지 말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건강한 아이는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이를
놀려대지 말고 부등켜 안아야 한다.
남누리 아이 북누리 아이
서로 미워하지 말고 얼싸 안아야 한다.

그래야 살맛 나는 참 정의와 평등 세상
그래야 사람답게 사는 참 자유와 해방된 세상
그래야 신명나는 참 평화통일 세상 되지 않겠니!

너희는 메마른 이 땅을
일구고 기름지게 가꿀 일꾼들이다.
우리 함께 나눈
내 이 작은 한마디가
너희들 가슴속에 씨앗으로 심어지면
언젠가는 샛노란 꽃망울로 피어날 것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수 있다면
어둠을 몰아내는 불기둥으로 타오를 것을
고래 힘줄 같은 칡넝쿨로 뻗어난다면
동강난 겨레의 허리를 이어줄 동아줄로 태어날 것을

그때
우리 기쁨으로 만나고
사랑으로 어우러져
뜨거운 가슴 가슴으로
하나로 어우러져
메마른 이 땅을 가득 채우자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2002년 8월 28일 이상선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육자치시대의 필연이다

(이상선 전 교장선생님이 2년 전(경기 은행초등학교 교장 재직시)에 직접 쓰신 글입니다.)

농경사회와 산업화 사회까지의 주류를 이어온 교육제도는 국가의 국민교육제도이다. 따라서 국가교육체제하에서는 교장과 교사는 교육의 주체가 아닌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권한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국민교육체제는 관료중심의 교육행정일 수밖에 없었고, 그 영향으로 학교 운영 역시 민주적이고 자율적이기보다는 학교장의 획일적 지시. 명령. 전달위주의 경직된 모습에 얽매였다.

민주화와 자율화, 지방화가 진전되고, 국민과 교육 주체들의 교육권과 학습권 의식이 높아진 오늘날에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지시와 명령 감시와 감독은 더 이상 정당성을 갖기 어렵고, 교육주체들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오늘날 학교장에게 필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지혜와 참여를 모아 학교를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민주적인 리더십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학교장의 독점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교육주체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적 의사결정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장은 국가의 임명제보다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가 참여하여 선출하는 보직제가 시대정신에 맞는 합당한 제도이다.

또한, 새시대 정보화 사회의 기본 이념은 분권화. 특성화. 다양화. 자율화이다. 이를 담보하기 위한 교육조직의 지향은 교육자치이며 진정한 교육자치는 학교자치이다.

학교자치는 교육기본법 제5조에 규정되어 있으며 하위법인 초중등교육법에 규정된 학운위는 학교장을 초빙할 수 있게 했다.

교장초빙제가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위한 소극적인 인사제도라 한다면 교장 선출보직제는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인사제도라 하겠다. 물론 학교별 선출방안, 교장출마임용조건, 소규모학교 문제 등을 고려하여 좀더 완벽한 제도로 다듬어내기 위한 연구와 함께 교직사회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노력들은 교장선출보직제도로 전환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교장선출보직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육자치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학교자치시대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 이상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 <교육희망> (news.eduhope.net) 316호에 실은 내용을 더 깊고 늘여서 다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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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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