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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우리나라 마약은 서구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확히 계산해 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제3세계의 왜곡된 경제상황, 투옥되었거나 사망한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 돈이 필요한 절망적인 중독자들이 저지르는 강절도 등이 그 피해 사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강 추산한 바에 따르더라도 전세계 마약시장은 연간 3천억 파운드(한화 약6백조 원)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규모는 전체 국제무역의 8%를 점하며 석유와 무기 다음 가는 커다란 품목에 속한다. 그 대부분의 소득이 조직범죄 수중으로 들어간다. 영국도 불법마약 거래규모는 연간 100억 내지 200억 파운드(한화 약 20조 내지 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로 유입되는 마약의 많은 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경우 무허가 코카인과 헤로인 생산으로 인해 내전이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해 지난 20여 년 동안 5만 여명이나 사망하였다. 이 지역 마약 카르텔은 잠수함까지 건조하여 카리브해를 잠수하여 미국에 그들의 마약제품을 밀수출하고 있다. 이 마약 밀수출 항로 중간에 위치해 있는 궁핍하기 짝이 없는 하이티 같은 나라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과거 크게 위축되어 있던 관광산업을 다시 도약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총재소자 2백여 만 명 정도 중에서 4분지 1 정도가 마약관련 사범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1999년 총재소자 5만 여명 중에서 8천 여명이 순전히 마약관련 사범이었다. 마약투약으로 인한 보건문제도 심각한 실정이다. WHO는 최근 에이즈 환자 40% 정도가 마약주사기 공유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유로 인해 간암의 원인이 되는 C형 간염이 전파되고 있다. 약 3십 만여 영국인들이 이 병에 전염된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마약을 보는 세 가지 시각

우리나라에서 마약은 무조건 범죄로 처벌되고 있다. 마약 혐의로 입건된 연예인 중에는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여 이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워낙 마약이 만연된 탓에 이에 대처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로 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서구에서 마약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략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금지론'이다. 마약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나 끈질기면서도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밀매단속, 은밀한 감시체계, 정보원 활용 등을 총동원해야 하며, 예컨대 대마 합법화는 악당들에게 득이 되지 나머지 사람들 모두에게는 해롭다고 본다. 우리나라 경우에도 전문가나 일반국민 모두 거의 전적으로 이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둘째, '합리적 취급론'이다. 현행 금지 일변도의 마약법을 유연하게 개정하여 보다 합리적이며 일관성 있는 마약단속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마약 비범죄화론'과 보다 급진적인 '마약 합법화론'으로 대별된다. 한마디로 담배나 술처럼 허가제로 합법화하되 일정한 등급의 마약에 대해서는 보다 실효성 있는 단속을 하며, 조세 수입은 재활치료나 마약연구에 집중 투자토록 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마약피해 축소론 내지 마약피해 최소화론'이다. 이 입장은 마약금지가 최선이라는 점에서는 금지론과 일치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마약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전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마약피해에 대한 교육과 정보 프로그램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특히 이들은 주사를 통한 합성마약인 메타돈이 HIV나 AIDS 전파 경로가 되는 현상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 입장에서는 과도한 사법처리 우선주의를 고집하면 역효과를 가져오므로, 지역사회 및 개개인에게 피해를 줄이기 위한 교육 및 개입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비범죄화 이론

영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약의 비범죄화 혹은 합법화 논쟁이 있었지만, 작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공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마약 합법화론'은 모든 상품의 자유시장 경제를 주장하는 사람에서부터, 마약 범죄화론이란 시민적 자유에 대한 침해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는 사람, 금지 일변도 정책이 너무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역효과만을 낳고 있다고 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들은 술이나 담배처럼 마약판매 허가제를 실시하면 일정한 규제를 가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순도가 떨어져 건강에 해롭게 만드는 현상 및 이윤 동기를 줄임으로써 마약 관련 범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이로부터 거둬들이는 막대한 세금은 마약연구나 재활프로그램에 쓰자는 것이다.

반면 '비범죄화론'은 대마 및 댄스마약에 관한 '마약법 유연화'를 말한다. 예컨대 네덜란드의 경우 기술적으로 대마가 여전히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형법에서 '편의주의'에 따라 공공기소자에게 공공의 이익에 따라 5kg 이하의 소량의 소지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대마와 보다 해로운 마약종류에 대해 '시장의 분리'를 하기 위한 목표로 시행되고 있는 '마약 비범죄화'의 한 사례에 해당한다.

대마의 경우 범죄시장을 억압 일변도로 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 불법거래로 인해 가격은 높아지고 하층노동자들에 의해 그 거래가 확산되며 결국 이들은 형사사법기관에 대해 업무부담만 가중시킨다. 그러면서 젊으면서도 가난하며 교육받지 못한 계층(흔히는 흑인)이 또다시 그 빈자리를 메꾸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 마약의 비범죄화가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사실상 이미 마약 비범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즉 영국에서는 대마 소지에 대한 훈방 조치가 1987년 31%에서 1997년 58%로 증가하였다. 영국에서는 술이 폭력행위와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대마의 경우 별로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기도 하다.

누군가 얘기하듯이 고층빌딩을 짓지 못하게 하며 로프의 판매 등을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서 자살율을 낮출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꼭 마찬가지로, 헤로인이나 코카인을 금지한다고 해서 마약의 오남용 사태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시각의 기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활동

영국에서 마약 합법화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로 브리스톨에서 활동하는 '금지 위주의 마약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는 시민들 모임'(www.transform-drugs.org.uk)이 있다. 정부측으로부터 활동비도 지원 받고 있는 이 단체의 사이트는 마약정책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그간의 방대한 활동성과들에 관한 풍부한 컨텐츠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이 단체는 마약정책이 '일정한 규제 틀 내에서'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각기 다른 마약은 각기 다른 제도를 필요로 하며 마약이 위험한 것일수록 그 출구를 더욱 엄격하게 규제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 코디네이터인 스티브 롤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다른 제품의 경우 이미 여러 가지 적정모델들이 시행되고 있어요.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 물건을 살 수 있는 펍이나 담배 가게 같은 소매 라이센스제가 있는가 하면, 제품을 카운터 안에 두고 훈련받은 약사가 건강문제에 대해 자문하면서 파는 제도도 있으며,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팔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도 있어요."

"헤로인과 코카인 같은 것은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면 되죠. 헤로인은 이미 법정 마약이예요. 라이센스제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 마약이나 의약품에 대해서는 규제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어서 생산, 가격, 품질, 포장 등에 대해 규제를 가하고 있어요. 이득이 많이 남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약시장에 대한 독점적 장악권을 조직범죄단과 규제가 전혀 없는 밀거래자들에게 내맡겨놓고 만다면 과연 실제 소비자나 생산자는 어떤 덕을 보고 있나요?"

이들은 마약에 관한 교육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불법마약에 관한 온갖 터부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현재 교육이 잘못되고 있으며 지극히 실효성 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뜻해요. 보다 더 균형 있는 접근자세를 통해 마약교육과 관련 정보제공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여러 문제점들을 시정할 수 있을 거예요."

콜롬비아 마약과의 전쟁의 교훈

하지만 영국에서도 정치적으로 마약에 대한 법적 금지를 푼다는 건 오랫동안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으며 따라서 그동안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마약을 허가제나 건강지침을 갖추어 합법화적으로 판매토록 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는 기회를 갖지 못해왔다.

그러다가 정작 2001년 총선이 끝난 후인 작년 7월 4일 케이트 모리스 전 주콜롬비아 영국대사가 가디언지에 "마약과의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기고문을 통해 코카인 합법화의 공론화를 시도하고, 온라인을 통한 국민들과의 공개논의를 벌이면서 관련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는 계기를 맞이하였으며, 그 후 의회에서까지도 이 문제를 다루는 조사위원회(위원장 : 크리스 물린)가 구성되기 이르렀다.

모리스 경은 콜롬비아 대사로서 '마약과의 전쟁' 현장을 직접 자세히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마약의 합법화가 필요하다고 공론화를 주도하고 있다. 1990년 그는 콜롬비아 대사 부임 당시 콜롬비아가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협상을 통해 1960년대 중반부터 공산반군과의 저강도전쟁을 종식시키도록 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콜롬비아는 평화 대신 폭력과 부패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이윤이 많이 나오는 코카인에 대해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약 거래상은 코카인 제조시설을 지키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과 공생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그 자신들이 군벌화 되어갔다.

당시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마약 밀거래자들을 미국으로 인도해야 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포브스지에서 당시 세계 갑부 7위로 기록되어 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마약테러리즘 전쟁을 개시하게 된다. 1989년 8월 이후 불과 1년 사이에 이 암살단은 세 명의 대통령 후보들을 살해했으며, 100명 이상의 승객이 탑승한 한 항공기를 폭파했고, 수십 건에 이르는 차량폭탄 사고를 일으켰으며, 메델리 지역에서만 해도 200여명의 경찰관들을 살해하였다.

이런 연유로 당시만 해도 마약과의 전쟁은 마치 자위수단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 영국, 기타 유럽 각국은 에스코바르가 대표하고 있던 콜롬비아라는 국가에게 직접적 위협이 되는 세력에 대해 대항하도록 하기 위하여 즉각적으로 훈련과 장비 등의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엄청난 딜이었다. '마약과의 전쟁'을 통하여 서구의 마약 소비국 입장에서 보면 공급을 저지할 뿐만 아니라, 마약 선행 물질의 공급을 분쇄하며 그들의 돈세탁을 막고 마약의 서구유입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마약과의 전쟁을 승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당시 마약과의 전쟁이 실제로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콜롬비아 경찰은 서방측 지원과 자문에 대해 너무도 잘 부응해 주었다. 당시 에스코바르는 범인인도 위협이 사라지자 이 작전에 몰입했으며 나중에 가서 1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조직은 궤멸되었으며 1993년 12월 살해당했다. 그러나 이때 미국은 즉각 에스코바르는 오랫동안 지엽적인 존재에 불과했으며 정말 큰 문제는 '칼리 마약 카르텔'이라고 브리핑하였다.

마약과의 전쟁에 그토록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약무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때까지도 크게 성행했다. 바로 이때부터 모리스 경은 마약과의 전쟁의 승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우려는 적중했다. 미국은 1994년 삼페르 대통령이 선출된 지 이틀 후 그가 칼리 마약 카르텔 측으로부터 5백만 달러를 지원 받았다고 비난받기 시작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공공연하게 통신 도청을 했던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제재조치를 취했으며 남미 국가들 중 가장 안정적인 경제를 구가하던 콜롬비아의 대외 신인도를 크게 훼손시키고 말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기가 충천해 있던 콜롬비아 정부군은 대통령이 동맹국으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당시 유일한 수혜자는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과 이들의 우익 대칭이던 군벌뿐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 미국은 다시 콜롬비아 공산주의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며 콜롬비아 정부군의 강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전쟁은 이데올로기 아닌 마약무역에서 나오는 바로 그 돈이 동기가 되고 있다.

콜롬비아는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미국의 압력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수행해 왔다. 즉 1970년대에는 마리화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코카인, 그리고 1990년대에는 헤로인 등이 그 대상이었다. 그리고 지난 12년 간 마약과의 전쟁을 위한 강력한 국제협력관계가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수십 만 명이 사망했으며, 1백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정치 경제적 안정이 붕괴되었으며, 국가적 이미지가 완전히 실추되고 말았다.

모리스 경의 마약 합법화론

모리스 경은 이제 마약매매를 규제하는 합법화 조치를 취하면서 이로부터 나오는 조세수입은 공동선을 위해 사용토록 하자고 촉구했다. 영국-콜롬비아 양국 상공회의소 창립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마약으로 인해 파탄 난 경제를 지원해달라는 라틴아메리카 정부측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정부가 대마금지정책을 완화시키기 시작해야 하며 현실적으로 이미 금지정책은 포기되었고 쉽진 않겠지만 법적으로 마약규제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강구해야 하며 다만 습관성 마약 사용은 보건 당국에 등록토록 해야 하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마약을 구입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 모울램 마약정책 담당자가 제시한 것처럼 습관성이 없는 마약은 알콜이나 담배 판매처럼 팔도록 하며 대신 순도 테스트를 거치도록 하고 과세토록 해야 한다. 마약에서 거둔 세금은 마약과 관련된 의학적 연구, 교육 및 치료의 개선에 쓰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마도 많은 비용이 소요되며 보다 많은 마약 사용자와 중독자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마약사용자들의 생명, 건강, 자유 및 전체 국민들의 생명, 건강, 재산 등에 대한 이점이 훨씬 더 크다."

모리스 경에 따르면 마약무역의 공급측면을 공격하여 단속하는 정책이나 전쟁은 마약선행 화학물질, 돈세탁 및 마약수요 등과 같은 다른 요인들을 함께 단속하지 않는 한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콜롬비아에서 벌인 마약과의 전쟁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약선행 화학물질은 결코 딸리는 법이 없으며, 지금까지 이들의 자금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는 어떠한 가시적인 조치들도 취해지지 않고 있고, 마약 생산국들까지도 마약중독 현상이 확산되면서 마약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상적인 청소년층이 마약을 마치 오락용으로 사용하는 문화적 변동마저 확산되고 있으며, 이제 순간적 만족이나 쾌락을 요구하는 것은 전지구적 소비사회의 한 부분이 되다시피 하였다. 영국에서는 마약금지법만으로는 이를 시정할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 마약금지를 고수하는 법체계를 가지고서는 고작 전세계적으로 5천 억 달러 규모의 범죄산업을 유지 확대하는 역할 밖에 할 수 없다고 본다.

영국 정치권의 반응

모리스 경에 따르면 마약의 비범죄화 방안 만으로는 모두에게 불만만을 가져올 뿐인 잠정적이며 어정쩡한 해결책이 되기 십상이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이 방법은 마약생산국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마약무역을 범죄자 수중에 내맡겨놓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며, 거꾸로 마약 소비자들에게 대해서도 안전한 마약제품을 보장해주지도 못할 뿐더러, 마약 밀매자들 압력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모리스 경이 마약의 합법화를 주장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사실 그가 함께 근무했던 사람 그리고 마약으로 인해 죽어갔던 사람들 가족들에게 마약과의 전쟁이라고 하는 게 실상 불필요하며 쓸 데 없는 전쟁에 불과하다고 말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도덕적 명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의 정치인들은 주로는 종교적인 이유로 어떠한 마약 합법화 조치도 반대하거나 아직도 마약과의 전쟁을 잘 끌고 나가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정치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마약 문제가 결코 개선될 수는 없다고 보면서도 영국의 유권자들 및 확실하게는 미국 행정부까지도 결코 급진적인 마약의 합법화 조치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모리스 경은 그 자신 확신이 서는 건 아니라면서도, 청소년층은 이 문제를 다르게 보고 있으며 오늘날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내일 가서는 당연한 도덕적 당위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모리스 경의 마약의 합법화 공론화 시도는 우연하게도 남부런던의 람베트 지역 경찰당국이 소량의 대마를 소지한 시민들에 대해서는 입건하지 않고 훈방하는 대신 더욱 더 심각한 범죄들을 처리하는데 경찰력을 집중시키는 실험을 하기 시작한 시점과 때를 같이 했다.

사실 노동당 정부는 전부터 작년 총선 이후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한 바 있으며, 총선이 끝난 후인 작년 7월 초 모 모울램 전 내각부차관은 "마약금지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영국 정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면서 대마의 비범죄화 촉구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선데이 미러지에 쓴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제가 과거 정부의 마약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한 이후 줄곧 대마는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하는 결론을 내렸지요. 마약거래를 합법화하여 정말 제대로 규제대상으로 삼아야 해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검증을 거친 보다 더 안전한 마약제품을 사용할 수 있으며, 보다 위험성이 더 큰 다른 마약제품들의 출구는 더욱 철저하게 봉쇄할 수 있고, 과세도 가능하게 될 겁니다.

" 모 모울램은 마약에서 나오는 모든 조세수입은 중독자들에 대한 치료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총선에서 모 모울램이 의원직에서 은퇴한 이후 영국정부의 마약정책은 담당부서가 내각부에서 국무부로 바뀌었다.

현재 마약 합법화 논의는 대체로 보수당의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는 의원들 진영으로부터 더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보수당 정권시절 재무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필립 오펜하임은 재작년 "마약범죄를 계속해서 범죄화하는 상태로 방치하면 막대한 자금을 계속해서 조직범죄단 수중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마약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합법화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국민들의 반응은 대마보다 휠씬 해로운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마약을 몰라도 대마만는 비범죄화 또는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코카인에 대해서는 합법화 반대 의견이 많았다. 대표적인 반응으로 73세의 어느 한 고고학자의 의견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 전혀 대마를 하지 않지만 일생동안 대마보다 훨씬 더 위험한 파이프를 피워왔죠. 네덜란드처럼 대마를 허용하지 말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네덜란드가 잘못된 게 전혀 없어요. 하지만 코카인의 경우 합법화해서는 안돼요. 엑스타시 같은 합성마약의 합법화도 반대해요."(73세 고고학자)

합법화 방안과 각국 사례

하지만 마약의 합법화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누가 어떤 체제로 마약을 어떻게 팔도록 할 것인가 이다. 나아가 예컨대 비행기 조종사가 코카인을 복용한 후 비행에 나서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보다 엄격한 테스트제도를 과연 도입해야 하는가, 그리고 마약 사용자가 환각제를 복용하고 자동차을 운전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테스트 장치를 도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도 대두되고 있다.

한편 영국의 교통관련 법규에 따르면 반사회적 행위를 규제하는 측면과 관련하여 "음주 혹은 마약을 복용해 적정하지 못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토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국무부에 따르면 1999년 기소가 받아들여진 교통관련 사건은 모두 92,486건이었으며 이중 단지 1,800여 건만이 마약복용을 이유로 한 것이었다.

마약 합법화와 관련하여 과연 누가 이득을 보는가 하는 문제 역시 명쾌하게 해명되어야 하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마약으로 인한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경우 영국정부측은 이 수입을 보건업무에만 쓰도록 지정해야 할 것인가? 과연 마약 제조자는 광고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담배나 알콜 제품의 광고에 대해 가하고 있는 제한보다 더 엄격한 제한조치를 가해야 하는가?

시민들에게 마약 관련 자문을 제공하고 있는 영국의 한 시민단체인 '해제' 측은 그간 오랫동안 마약관계법을 검토해온 왕립위원회 측의 방안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단체의 그레인느 웨일리 씨는 "많은 국민들이 예컨대 헤로인을 복용한 사람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평가하게 될 때까지는 법을 바꾸어서는 안됩니다"고 밝혔다.

2000년 영국경찰노조총연맹 측이 영국의 낡은 법에 관하여 독자적으로 벌였던 연구조사에서 국제법은 국내법이 어떻게 마약 사용자들을 다룰 것인가에 관하여 상당히 커다란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혀내면서 마약논쟁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같은 해 런시만 보고서에서는 영국의 바로 그 마약금지법에 해당하는 '1971년의 마약류 오남용 규제법' 상의 여러 규제장치들에 대하여 면밀한 검토작업을 벌인 바 있다. 80개 향에 이르는 이 보고서의 권고사항들은 대마의 등급을 현재의 B급에서 C급으로 낮추며 그 소지 행위에 대해서는 체포대상 범죄에서 제외토록 하자는 정책도 들어 있었다. 이 런시만 보고서는 물론 마약에 대해 비범죄화라든가 합법화 방안을 제시하진 않았다.

당시 영국정부는 이 보고서의 권고사항 중 24개항을 거부하는 서툰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일은 2001년 총선 전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실 마약의 해로움에 대한 현대적 분석방법에 따라 그 등급을 재분류한 런시만 보고서는 매우 유용한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예컨대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마 소지 행위는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영국의 수석재판관(대법원판사)도 1993년 당시 바로 그와 같은 접근 방안에 대해 운을 뗀 바 있었다.

한편 세계적으로 각국이 마약무역을 불법행위로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영국만 혼자서 마약을 비범죄화 한다든가 아니면 합법화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상황이 훨씬 복잡하게 꼬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영국은 이미 '마약류 및 향정신성 물질 금지에 관한 1988년 유엔조약'에 조인한 국가이다. 이 조약은 몇몇 마약 종류의 화학물질 합법화를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완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협약은 마약의 합법화 논의에서 필연적으로 맞딱뜨릴 수밖에 없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조약은 각국으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소비할 목적으로 불법마약류를 소지, 구입, 재배하는 행위를 형사범으로 다루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처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진 않다. 현재 많은 국가들은 이 조약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경우 금전수수가 없는 마약공유는 형사법이 아닌 것으로 하고 있다.

1976년부터 대마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주말에 국경 너머 독일에서 마약을 사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로 많아져 오히려 마약이 더욱 더 많이 유입되고 있는 실정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작년 여름 네덜란드 측은 국경근처 도시인 벤로의 외곽지역에 관광객들이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가면서 마약을 살 수 있는 그런 커피숍 두 곳을 개장하도록 허가했다. 이미 네덜란드의 1천 5백 여 모든 커피숍에서 손바닥에 시간을 적고 습관성이 없는 마약을 판매해오고 있다.

호주는 마약 관련 국민여론을 바꾸도록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가 되고 있다. 작년 시드니의 유흥가 지역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약주사 맞는 곳"인 합법적인 헤로인 주사실이 처음 개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개장하여 18개월 동안 시범 실시되고 있는 이 방안의 시행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1964년 6명에서 1999년 958명으로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주에서 이 방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호주의 총리 뿐 아니라 로마 교황 측의 비판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을 거쳐야 했다.

열려 있는 논쟁구도

모리스 경의 경우 제한적인 형태의 마약 합법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나 선데이 텔레그라프 지 같은 우익 신문들은 마약의 합법화 방안을 강력하게 주창해왔다.

이에 따르면 20여 년 이상 계속되어온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으며, 많은 청소년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 지하 범죄세계가 마약을 오염시키기도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불법적인 마약제품에 대해 고가의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마약 사용자들이 범죄에 빠져드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만일 마약을 합법화하게 되면 마약제품의 깨끗함을 보다 더 개선할 수 있으며 마약생산자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여 보다 더 많은 마약치료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에서 마약의 합법화를 반대하는 세력과 논거 또한 만만치 않다. 즉 마약을 합법화하게 되면 마약중독을 급증시킬 것이며, 마약사용을 중단시킬 인센티브를 더욱 약화시키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온갖 마약으로 인한 피해들을 더욱 급증케 만들뿐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끊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크랙 코카인, LSD 등이 유발하는 피해는 심각하다. 더욱이 마약중독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커다란 피해를 입힌다. 즉 마약중독은 교통사고을 일으킨다든지 주변 사람들도 마약중독에 빠지게 만든다든지 가족의 소득원을 없애고 만다든지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나아가 국제법적으로 중대한 문제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1920년으로 거슬러올라가기도 하며 이미 앞서 지적한 세 개에 이르는 각각의 유엔협약(1961, 1971, 1988)에 따라 영국정부는 마약밀거래를 형사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더군다나 습관성 환각제를 합법화하게 된다면 조직범죄단이 불법적인 대체제재를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금년 5월 하원국내문제상임위원회에서 마약보고서가 채택되었다. B 등급으로 되어 있는 대마와 A 등급으로 되어 있는 엑스터시를 각각 한 등급씩 낮추도록 권고하였다. 이에 7월 10일 블렁킷 국무부 장관이 하원 발언을 통해 대마에 국한해서나마 등급완화를 밝힌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와 같은 정책변화로 모든 계층과 계급을 망라한 수만 명의 청소년들이 혜택을 보게 되었다. 그간 영국은 유럽에서도 가장 엄격한 마약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장 많은 비율의 청소년층 마약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 하원마약보고서나 정부 당국 역시 마약의 비합법화 혹은 합법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으며, 하원마약보고서는 향후 영국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마약 합법화에 관한 논의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어쨌든 영국 정부가 나름대로 마약의 비범죄화 혹은 합법화를 위한 실천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수요 혹은 마약범죄가 서구에 비해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직은 이 문제가 강 건너 불 차원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약의 급속한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형사정책 당국을 중심으로 이런 논의의 진행과정에 주목은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월간 JURIST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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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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