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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사관이 신축될 구 경기여고 부지. ⓒ 정동지역 역사경관지키기 시민대책위


서울시, 84년 '토지교환각서' 통해 미 대사관측과 부지 교환

수도 서울의 심장부이자 근대 한국의 역사현장인 서울 정동 옛 덕수궁터 미국 대사관저 안에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 건립계획이 발표되면서 문화·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은 18년전인 지난 84년 당시 서울시장과 주한 미 대사 사이에 '토지교환각서'를 통해 이미 예정된 사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제 땐 경복궁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더니 이제 덕수궁터엔 미국 대사관 직원 아파트냐'는 자조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미 대사관측이 정부에 서울시 중구 정동 덕수궁 터 뒤쪽 부(副)대사 숙소를 헐고 미 대사관 직원용 8층, 54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겠다며 협조 요청을 한데 대해 건교부는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건교부측이 "미 대사관측이 서울 덕수궁 뒤에 건설하는 5만3600㎡(약 1만6천평), 15층 규모의 대사관 건물 및 4층 규모의 주차장을 국내 법정주차대수보다 적게 지을 수 있도록 관련 주차장법 개정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간 후 시민단체들은 사대주의적 정책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주한 미 대사관의 직원아파트 건립 및 신축건물 확장 등의 계획들은 이미 지난 1984년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과 주한 미 대사 사이에 체결된, 일종의 양해각서인 '토지교환각서'에 근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양해각서는 서울시가 세종로 미 대사관 부지, 율곡로 대사관 직원 관사 등과 구 경기여고 부지를 교환한다는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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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경기여고 부지 입구에 미국 대사관이 설치한 경고 문구. ⓒ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시민대책위
따라서 덕수궁 뒤 구 경기여고 부지는 미 정부의 소유이며, 미 대사관측이 국내 현행법에 따라 직원아파트 등의 건축을 추진할 경우 건립자체를 막을 수 없는 형국이다.

서울시 문화재정과 최동윤 과장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대사관 직원 아파트 건립문제는 법적인 문제냐 정책적인 문제냐'로 구분해 보는 것이 마땅하다"며 "한국정부가 미 정부에 왜 특혜를 주려고 하느냐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 대사관측이 자국 소유의 땅에 건물을 짓겠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며 시민단체들이 민족적인 정서에 치우쳐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는 정책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재산관리과 관계자는 "당시 토지교환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90년대 초반 서울시 청사부족과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으로 시 예산 지출이 많아 한-미간에 이익이 있다고 판단해 교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984년부터 추진돼온 서울시청 주변매입 방침에 따른 것으로, 조건값이 맞으면 교환할 수 있다는 지방재정법에 따라 토지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토지교환각서

제목 : 구 경기여고 부지관련 재산교환 계약서안 및 임대차 계약서안 송부

대한민국 외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의 84. 1.31자 각서 교환 및 서울시장과 주한 미국대사와의 86. 10. 21, 10. 22일자 재산교환 관련 양해각서 교환에 따라 서울특별시 소유재산(서울시 중구 정동 소재 전 경기여고)과 미 합중국 소유재산(서울시 중구 을지로1가 소재 미 대사관 별관 및 종로구 송현동 소재 미 대사관 제2관저 부지 중 도로확장에 편입되는 부지)을 상호교환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와 미 합중국간에 다음과 같은 조건에 합의하고 재산교환 계약을 체결한다.(이하 생략)


'토지교환각서'는 1984년 한국감정원의 재산가액 감정평가를 기초로 하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당시 미국 정부 토지 건물가액은 110억3310만5800원, 서울시 소유재산은 139억1803만9783원으로 책정됐다.

'토지교환각서'에는 이밖에도 각 구역별 토지가격과 구역도 등 감정평가 결과가 국문, 영문으로 각각 기술돼 있는데 최종 조인은 지난 90년 1월 29일 고건 서울시장와 도널드 P. 그레그 당시 주한 미대사간에 이뤄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토지교환에 대한 이의제기는 이미 시효가 지난데다 국정감사까지 거친 사안이라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에 와서 다시 거론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밝혔다.

문화시민단체들 <--> 정부관련기관

▲인적이 드문 덕수궁 돌담길. 담벼락에 전경들의 방패만이 죽 늘어 서있다. ⓒ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시민대책위
이에 대해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김성달 간사는 "정동은 역사적인 문화재와 문화적인 숨결이 있는 지역으로 문화경관 보호에 대한 뚜렷한 대책 없이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 건립을 추진할 수 있도록 현행법을 개정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우선이고 누구를 위해 일하는 정부인지 모르겠다"며 당국의 처사를 반박했다.

김 간사는 이어 "단순한 법개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화적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대책위를 조성하고 있다"며 "건교부의 법개정 철회를 위해 전국민 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건교부 관계자는 또 "논란이 되고 있는 주택건설촉진법 관련 내용은 특정부서에서 담당하는 업무를 진행하는데 언론이 확대시켜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되고 있다"며 "시행령 개정에 대한 결정은 계속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는 "현재 문화재 보호법과 교통영향평가실사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규제되는 부분이 있지만, 미대사관 측에서 해당 구청(중구청)에 정식으로 건설허가를 접수하지 않은 상태여서 당장 입장을 밝힐 수는 없다"고 밝히고는 "건축허가 서류가 접수된다 하더라도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등 관련 부서의 검토를 거쳐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동지역 역사경관지키기 시민대책위원회 강임산 대표는 "이 사안은 덕수궁을 포함한 정동지역의 역사경관 보존을 위해 반드시 막아야할 사항으로, 단순히 반미감정 문제가 아니라 보편타당한 입장에서 접근하고 합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접근·준비 중"이라며, "서울시에 관련 문서 정보공개 청구를 해놓았고, 앞으로 정부의 부당한 법개정 요구·대사관 신축계획 전면 철회 및 덕수궁터 매입과 미 대사관 부지 물색 등 대책 마련을 위해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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