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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 끝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새벽 두 시, 호의주의보가 내린다더니 기어코 큰비가 쏟아집니다.
저녁 참에는 괜찮을 듯하여 염소들을 그냥 풀밭에 매 두었는데 걱정입니다.

어느새 방안도 식어 한기가 느껴집니다.
염소들이 염려되면서도 빗속을 뚫고 가기가 귀찮아 한참을 주저합니다.
그래도 이대로는 다시 편한 잠을 들 수가 없겠지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우산을 들고, 손전등을 비추며 세연정 숲길을 갑니다.
세연지 옆 풀밭에서 염소는 선 채로 비에 쫄딱 맞아 떨고 있습니다.
어미염소는 내가 나타나자 음메에 음메에 반기고,
비가 오는 와중에도 정신없이 풀을 뜯기 시작합니다.
목숨이란 참 모질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새끼들은 어디로 갔지.
어미 곁에 있어야할 아기 염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야, 꼬맹이들아 어디 있니, 나는 아기염소들을 부릅니다.
메에, 대숲에서 가녀린 소리가 들려옵니다.

불빛을 비추자 아기염소 두 녀석이 대밭에 숨어서 오들오들 떨고 서 있습니다.
아직 줄에 묶이지 않아 행동이 자유로운 두 녀석은 그래도 비를 피해볼 심산으로 대숲을 찾아든 것이지요.
녀석들이야 대숲에 몸을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무자비한 빗줄기가 어디 그들만을 피해갈 까닭이 있겠습니까.

염소들을 근처 폐 교회 추녀 밑으로 옮겨 맨 뒤, 나뭇잎과 풀들을 한아름 뜯어다주고 돌아섭니다.
목숨 가진 것들을 기른다는 것은 참으로 큰 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염소들과 나는 대체 몇 생, 몇 겁을 두고 인연 맺어왔던 것일까요.

염소가 저럴진대 그렇다면 또 이 생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또 몇 항하사 겁 동안이나 만나왔던 것일까요.
두렵고 두려울 따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바람이 더욱 거세집니다.

다시 서재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염소들은 안심이지만, 나는 쉬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초가지붕 추녀 끝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조금 남은 잠마저 날아가 버립니다.
추녀 끝의 밤 낙수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마루 밑으로 쏙 들어가 있던 봉순이네 식구들 몸 뒤척이는 소리도 들립니다.
저희들도 비바람 소리가 걱정스러워 잠이 오지 않는 것이겠지요.
이제 나는 밤새 책이나 읽어야겠습니다.
얼마 전 정민 형이 보내준 책을 펼쳐듭니다.

"한밤 고요히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이면 사방은 고요한데, 책을 마주하고 앉으니 그간의 피로가 말끔히 가셔진다. 책상 앞에 쌓인 책을 흥에 따라 이 책 저 책 뽑아 드노라면 시냇물 소리가 졸졸졸 들려온다. 처마 밑 고드름을 따와서 벼루를 씻는다."
이것은 명나라 오종선이 '소창청기'에서 말한 독서하는 즐거움이다.

이덕무도 '이목구 심서'에서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작게는 쿨쿨 잠자거나 바둑과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여색에 힘을 쏟게 된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라고 했다(정민, '책 읽는 소리').


한참을 그렇게 옛사람 '책 읽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들은 왜 그다지도 책읽기에 몰입했던 것일까요.

"독서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데 있었지, 지식의 획득에 있지 않았다.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모두 독서에서 나왔다.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는 그대로 내 삶 속에 체화되어 나를 간섭하고 통어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네들이 읽은 책이라고 해야 권수로 헤아린다면 몇권 되지 않았다.
그 몇권 되지 않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읽다못해 아애 통째로 다 외웠다.
그리고 그 몇 권의 독서가 그들의 삶을 결정했다."
(정민, '책 읽는 소리')


서가에서 다른 책 한 권을 펼쳐듭니다.
책 속에서는 연암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독서를 정밀하고 부지런히 하기로는 포희씨 만한 이가 없다.
그 정신과 의태(意態)는 천지만물을 포괄망라하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이것은 다만 글자로 쓰이지 않고 글로 되지 않은 글일 뿐이다.
후세에 독서를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 자들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썩어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비비며 그 쥐오줌과 쥐똥을 엮어 토론하니,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와 묽은 술을 먹고 취해 죽겠다는 꼴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저 허공 속을 울며 나는 것은 얼마나 생의로운가?
그런데 이를 적막하게 '조(鳥)'란 한 글자로 말살시켜 빛깔도 없애고 그 모습과 소리도 누락 시켰으니 이 어찌 마을 제사에 나아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위에 새겨진 새와 다르랴! 어떤 이는 그것이 너무 평범하니 산뜻하게 바꾼다 하여 금(禽)자로 고친다.
이것은 책 읽고 글 짓는 자의 잘못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하기를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다'하였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 한다면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나는 또 오래 전에 읽었던 다산의 글들도 다시 뒤적입니다.
유배지에서 다산은 자신의 외증조부인 공재 윤두서의 현손, 윤종문에게 편지를 보내 일깨웁니다.

"번쩍 번쩍 빛나는 좋은 의복을 입고 겨울에는 갖옷에 여름에는 발고운 갈포옷으로 종신토록 넉넉하게 지내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비취나 공작, 여우나 너구리, 담비나 오소리 등속도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향기 풍기는 진수성찬을 조석마다 먹으며 풍부한 쇠고기 양고기로 종신토록 궁하지 않게 지내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호랑이나 표범, 여우나 늑대, 매나 독수리 등속도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연지분을 바르고 푸른 물감으로 눈썹을 그린 미인과 함께 고대광실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는 방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세상을 마친다면 어떻겠는가?
아무리 모장 여희와 같은 미인이라도 물고기는 그를 보고서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린다.
돼지의 즐거움이라 하여 금곡(金谷)이나 소제(蘇堤)의 호화스러운 놀이보다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 한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수많은 백성들을 깊이 깨우칠 수 있으며, 어두운 면에서는 귀신의 정상을 통달하고 밝은 면에서는 왕도와 패도의 정책을 도울 수 있어,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초월하여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할 본분인 것이다."
(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밤새 비가 그치지 않습니다.
나는 한동안 책에서 눈을 떼고 추녀 끝의 빗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다시 책으로 눈을 가져가 한 문장 읽고, 다시 빗방울 소리 한번 듣고, 또 언뜻 스치는 생각 하나 얼른 공책에 적어 넣습니다.

어느새 창 밖이 밝아 옵니다.
비를 피해 편안히 잠든 염소들도 잠이 깼겠지요.
날이 밝자 비가 그쳤습니다.
뒤 안 동백나무 숲에서 먹이를 찾아 날아온 동박새들 종알거리는 소리 들립니다.
꿈처럼 행복했던 밤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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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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