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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로 가는 내 마음에는 다른 여타의 도시와 다른 작은 기대감이 있다. 아마도 항저우가 중국에서 이름난 미녀의 고장이기 때문이기도 할 터다.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등과 더불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는 물론이고 찡그린 얼굴도 이뻐 그녀를 흉내내게 했다는 ‘서시빈목’(西施)의 고사를 낳은 서시의 고향이 항저우고, 현재도 항저우는 미인의 고장으로 이름높다.

아니 항저우의 시후(西湖)의 달빛에 대한 기대감, 그 도도한 인문유산에 대한 기대, 또 내가 항저우와 더불어 함께 들릴 샤오싱(紹興)에 대한 기대가 마음 속에 가득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항저우가 미녀의 고장이라면 샤오싱은 중국 최대 지성의 산실이다.

중국 근대 최대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이 태어난 곳이고, 베이징대학의 설립자이자 근대지성인 차이위엔페이(蔡元培)와 중국 현대사에서 인민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정치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고향이다. 후난이 굵직한 정치계의 거목들을 키웠다면 샤오싱은 중국 근대 지성을 키웠다.

사실 이 기획의 마지막 여정지인 항저우와 샤오싱을 향하면서 내 마음은 결코 기껍지만은 않다. 새천년 들어서 올림픽이다 세계무역기구나 월드컵으로 들뜬 중국의 외양과 달리 파룬궁이나 에이즈환자들의 집단 저항과 같이 중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가진 문제들이 하나하나 불거지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일까.

특히나 내가 살아가는 톈진에서 벌어진 에이즈 환자들의 집단 저항의 시초가 자신이 가장 최초의 재산인 피를 팔아서 생계를 영위하다가 집단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이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피라는 동일한 소재가 아니라도 위화(余華)의 문학은 이 기획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소재였다.

바로 그 문제의 작가 위화의 고향이 바로 항저우다. 그가 태어나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운 곳은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병원과 항저우의 도서관들이다. 그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는 물론이고 이미 소개된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의 실질적인 모델은 항저우인들이다.

거대한 시후에 드리워진 선인의 자취

위화의 소설에는 그가 어릴적부터 느꼈던 병원에서 날 것 같은 크레졸 냄새는 물론이고 그의 세대에게도 피해가지 못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날카로운 갈퀴가 남아 있다. 그래서 항저우를 향하는 마음에는 짙은 그림자가 그려져 있다. 항저우나 샤오싱 여행은 고로 위화가 조금은 모순되게 그려낸 허삼관의 넉넉한 여유를 배우는 여정이다.

항저우 역시 개발붐에서 예외는 아니다. 곳곳에 개발구를 세우고, 또 여행객을 끌기 위해 문화재를 정비하는 한편 고풍스런 거리를 조성한다. 사실 불과 4반세기 전에 그들은 문화재에 대한 핍박을 가했다. 반동적인 유교사상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고, 그들 안에 잠복되어 있는 자본주의 기질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광기의 시대의 너머에는 위화가 그렸던 인물들이 살고 있다.

상하이에서 갈아탄 기차는 점심 무렵에야 일행을 항저우 동역에 내려준다. 기대 섞인 마음으로 흘깃흘깃 서시(西施)의 환생을 찾는다. 사실 이미 자본주의의 맛이 짙게 드린 세상에서 항저우 미녀의 명성보다는 "상하이 넝마쟁이도 항저우 미녀를 얻는다"는 우스개처럼 항저우 미녀의 가치도 떨어졌다. 다만 서시의 후예들답게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 하나하나에서 가지런한 여성의 풍모가 느껴진다. 하지만 눈을 돌릴 처지가 아니므로 항저우에서 이름난 시후를 향한다.

항저우의 대명사는 시내 대부분을 접하고 있는 시후다. 시후는 소동파(소동파)가 항저우의 관리로 있을 때 20만명을 동원해 뚝을 쌓고, 흙을 파내서 만든 호수다. 남북 길이가 3.3킬로미터에 달하고, 동서로 2.8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이 호수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는 시인으로 알려진 동파는 인민의 고혈을 쏟아부어서 그 호수를 만들었다.

사실 문화 유산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 결실을 후손들이 보고 있다. 만약 시후가 없었다면 항저우에 들리는 이들이 현격하게 줄었을 것이고, 이곳 사람들의 수익도 그만큼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혈로 채워진 호수가 있어 사계절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시후는 해발 3백 미터 가량의 두 봉우리가 아름답게 쌍을 이룬 슈앙펑차윈(雙峰揷雲)을 비롯해 매번 아름다운 달을 볼 수 있는 핑후밍위에(平湖秋月) 등 10경 등은 물론이고 새로운 10경이 찾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래서 항저우 사람들은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항저우(杭州)와 쑤저우(蘇州)가 있다"는 말로 다른 지역 이들의 호기심을 일으켰다.(上有天堂, 下有蘇杭)

또 오랜 시간 동안 흥미거리를 찾아내려던 사람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옥룡(玉龍)과 금융(金鳳)이 은하수에서 만든 진주가 떨어져 호수가 되었는 전설을 비롯해 황금 소에 관한 전설, 백사(白蛇)에 관한 전설 등 많은 전설이 여행객의 마음을 붙잡는다.

하지만 항저우인들의 과거라고 시후에 걸린 달처럼 밝고, 고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밝은 호수에 물고기가 살기 어렵듯이 작가 위화에게 고향 항저우와 그가 살았던 시간은 짙은 화인(火印)을 찍었다. 그는 항저우에서 태어나 의사인 부모를 따라서 하이얀셴(海鹽縣)에 돌아가 살다가, 부모의 요구로 의대에 입학하지만 결국 중퇴하고 문학으로 길을 돌린다.

초반 작품은 그의 유년시절과 의대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핏빛 기억을 원고지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작가가 가장 음울하던 시절, 그리고 원고지가 습기에 젖어 부드러워질 만큼 습한 기운 속에 썼다는 소설이 죽음의 코드를 담고 있는 것은 그가 술회하 듯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얻었던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그가 유년시절을 외과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시체실의 옆에서 보냈다는 점에서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절망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시대가 주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의 생활은 항저우라기보다는 항저우에서 상하이로 가는 길에 만나는 해안 지역인 하이얀셴이다. 물론 항저우는 그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서른에 베이징에 올라와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정신 속에는 하이얀과 항저우가 깊이 배어 있다.

장이모(張藝謨)의 영화 '인생'으로 더욱 알려진 '살아간다는 것'의 푸꾸이(富貴)도 있고, 허삼관도 있다. 일제와 국공내전과 대약진 운동 등 자신을 두기에 어려운 삶을 사는 푸꾸이의 삶이 새옹지마(塞翁之馬) 의 전형을 보여주는 삶이라면 허삼관의 삶은 중국 현대사에서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데 겪는 아이러니한 즐거움을 보여준다.

삼관은 피를 팔면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익과 맞먹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피를 팔아서 아내 옥란을 얻지만 옥란은 이미 다른 남자와 연분을 나눠 일락이를 난다. 하지만 삼관은 그것을 묵묵히 견디고, 일락이가 사고를 치자 다시 소중한 피를 팔아 아들을 구한다. 여기에서 삼관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일락이를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아내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어떻게 태어난 생명이든 간에 그 존재로서 가치를 인정하고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삶에서 무능하고, 귀찮은 존재갔지만 그 자체로서 인정하고, 동고동락을 같이 한다.

소설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은 독자들의 슬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이다. 홍수로 흉년이 들었을 때 자린고비를 능가하는 기지로 배고픔을 견디는 것이나, 문혁이라는 혹독한 시간에 비판의 대상에 오른 아내 허옥란의 자기비판회를 여는 모습은 역사와 한 개인의 삶과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때로는 역사에서 조변석개하는 사람이나 영혼들을 만나지만, 스스로 복되게 사는 허삼관의 모습은 그가 전번 소설 '인생'에서 보여줬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리고 허삼관의 피가 단순히 한 개인의 피가 아니라 중국민족의 영혼이라는 것을 작가는 의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생들

항저우 여행에서 링인스(靈隱寺)를 빼놓을 수 없다. 링인스를 보지 않고는 항저우를 다 보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명소인 이 절은 326년 인도에서 온 휘리가 창건했다. 중국 최고의 여행광인 청나라 강희제가 절 앞에 남긴 '운림사'(雲林寺)라는 문구와 24.8미터에 달하는 향나무 석가모니 불은 인상적이다. 링인스를 돌아보고, 샤오싱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중국 현대사의 거장들과 술자리를 뒤로 하고

항저우를 출발한 시외버스는 나른한 강남의 겨울들녘을 지나 한 시간도 못 되어 샤오싱에 내려놓는다. 샤오싱은 시 전체의 10%가 운하다. 시내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운하는 독특한 느낌이다. 자동차가 지나기 어려울 만큼 좁은 곡선형의 다리가 인상적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샤오싱에는 루쉰을 비롯해 차이위앤페이, 저우언라이의 옛집이 이웃하고 있다. 거기에 청나라 말기 혁명가인 추진(秋瑾)의 집도 이웃하고 있다. 중국 근현대의 최고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과 최고의 교육가인 차이위앤페이, 가장 사랑받는 정치가 저우언라이가 같이 있는 토대는 다름 아닌 토론을 중시하는 이곳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청조부터 황궁에서 정책적으로 실시하던 논쟁가들을 배출하는 곳이다.

결국 토론문화가 이렇게 뛰어난 지성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작가 위화 역시 이런 땅의 기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호반의 도시인 샤오싱에서 멀리서 온 객은 중국 8대주에 꼽힌다는 소흥주를 마시면서 객수를 달랜다. 마오타이지우(茅台酒) 우량이에(五粮液) 펀져우(汾酒) 주예칭(竹葉靑) 루저우따취(瀘州大曲) 꾸징(古井) 샤오싱지우(紹興酒) 중구어푸타오지우(中國葡萄酒) 칭다오우싱피지우(靑島五星 酒) 등을 가르켜 8대주로 말하는데 샤오싱주는 이 가운데 유일한 황주(黃酒)로도 유명하다.

서서히 샤오싱을 떠날 시간이 되어온다. 중국사의 위인들과 술을 나누었으니, 겨울이라 조금 황망한 풍경이 아쉽지 않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현대를 뚫고 나갈 사상이나 정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

-위화 저 ‘허삼관 매혈기’ 
-씨줄은 중국 현대사, 날줄은 소시민의 삶 

중국 최고의 지성작가로 부상한 위화는 1960년 항저우 태생이다. 아버지가 마련해준 도서대출증을 이용해 매일 책을 읽으면 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나섰다. 부모님 모두가 의사여서 의대에 치과를 공부하기 위해 들어갔지만 포기하고 문학으로 방향을 튼 후다. 이어 <18세에 집을 나서 먼길을 가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실험성이 강한 중단편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초반기에는 기괴한 느낌의 실험소설을 썼지만 '살아간다는 것'이후에는 중국의 역사성과 본토성이 구현된 작품으로 위상을 굳건히 했다. '허삼관 매혈기'는 95년에 '수확'(收穫)으로 발표하다가 제목을 바꿨다. 출간되자마자 중국 독서계를 뒤흔들며 베스트셀러 수위에 오른 이후 4년이지난 지금까지 부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문제작이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소개돼 격찬을 받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장이모감독에 의해 '인생'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격찬을 받았으며, '허삼관 매혈기'도 장위앤(張元)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국자본이 동원되어 영화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위화의 소설은 '푸른숲' 출판사가 '내게는 이름이 없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을 번역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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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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