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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베이징발 청두행 비행기는 심심하면 취소된다. 특히나 아침 비행기라면 더 그렇다. 청두가 겨울 내내 짙은 안개에 휩쌓여 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착륙을 마치자마자 승객들은 우르르 출입구에 몰려든다. 오히려 여행객으로 보이는 백안의 서양인들만 차분히 기다린다. 누가 중국인들을 만만디라고 했던가. 지금 그들에게 만만디의 습관이 남아있는 곳은 지리한 승부처에서 철저히 버티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 일상은 항상 조급하다. 그 조급함을 부르는 이유중에 하나가 돈이다. 그들은 이제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청두를 비롯한 쓰촨(四川)성은 서부지역의 관문이다. 서부는 최근에 정부의 정책적인 개발로 부흥에 노력하지만 그 자체가 가난을 내포하고 있다. 쓰촨만 해도 인구가 8천만명이 넘고, 쓰촨에서 분리된 충칭(重慶)시 만 해도 인구가 3천만 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가 풍족히 먹고 살기에 이땅은 많은 지형적 어려움을 갖고 있는데다 비효율적인 체제는 그 빈곤을 더욱 부추겼다.

하지만 이땅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부대개발이라는 표면적인 움직임도 있지만 그들 스스로 부자되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경제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흔히 선전(深圳)이나 상하이 푸동(浦東) 같은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중국 경제를 이야기하려면 중국 내륙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다.

정운영 교수의 ‘중국경제산책’은 바로 청두에서부터 중국 경제를 풀어간다. 물론 이는 청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국 경제를 재건시킨 덩 샤오핑(鄧小平)의 고향 광안(廣安)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간 중국에 대한 관심이 커가면서 중국경제에 대한 다양한 책이 쏟아졌다. 정운영교수의 책도 그중에 하나다. 그 많은 책 가운데 정 교수의 책을 선택한 것은 책 이름 그대로 산책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경제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그 산책을 동반한다.

서부도 중국 변화의 예외는 아니다

대학 2학년쯤이니 벌써 십여 년 전이다. ‘포괄적인 교양’이라는 말이 신조였던 때, 사회주의 경제학을 말하던 ‘정치경제학’은 중요한 논제중 하나였다. 이미 소련이 무너진 시기였지만 자본주의의 모순도 쉽게 검색되던 시기였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기자가 정경대에서 정 교수의 특강을 들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소금 역할을 했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리보다 높았던 교단에 훤칠한 키로 자연스럽게 우러러 보게 만드는 정 교수는 자본주의 자체는 너무나 부패의 요소를 갖고 있지만 사회주의가 가상의 적대세력을 형성하며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그 말이 얼마나 유효한지 모르지만 정 교수의 활동은 분명히 자신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 실효성을 넘어서 그것이 신념일 때, 감놔라 대추놔라 할 필요는 없다. 확실한 경제전문가이지만 중국 전문가는 아닌 정 교수의 중국 경제 산책은 감놔라 대추놔라하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여기가 저렇고 저기가 저렇네 하는 감상이다.

그는 청두쪽을 훓는 과정에 당연히 서부에 관심을 갖는다. 사실 청두는 물론이고 란저우(蘭州) 등 서부도시들 간에 빠르게 건설되는 도로 등 인프라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중국교통의 대명사가 철도였다면 항후 5년안에 중국 교통의 대명사는 도로 교통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다. 고속도로의 빠른 발전으로 이동시간이 휠씬 빨라 지고 있다. 쓰촨의 두 중심인 청두와 충칭은 500킬로미터의 거리다. 이 두지역은 기차가 보통 8시간 넘게 걸리는데 반해 버스는 10년전 건설한 고속도로로 인해 4시간 정도에 주파한다. 4시간 내내 덜컹일만큼 열악해진 도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두 도시는 보수를 준비하고 있다. 이 도로의 정비가 완비되면 쓰촨의 도로는 사통팔발이 된다.

정운영 교수 일행은 중국 여행의 출발지로 덩 샤오핑의 고향 광안을 잡는다. 광안은 3500년 전 유적인 싼싱투이(三星堆)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 길에 정 교수는 마지막까지도 풀지 못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鄧의 전환은 적어도 형식 논리로는 앞선 혁명들에 대한 ‘반혁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鄧은 결코 사회주의를 거부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용납하지도 않는다고 역설했다”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

과연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이땅의 지금 모습은 무엇이고, 또 앞으로 변화는 어떻게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바로 그것. 정교수 일행은 청두를 비롯해 수도인 베이징, 중국 현대 정치의 분수령 중에 하나인 루산회의의 현장인 루산(盧山), 중국 특구의 상징인 상하이와 선전, 대만과의 통로인 샤먼(厦門) 등이다. 가장 분주했던 현장을 들른 셈이다. 사실 이곳에서 만나는 중국은, 그들이 의도했던 중국에 대한 성찰은 먼저 놀라운 변화에 대해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빠른 변화에 놀란다. 그 다음에 어떻게, 왜 이렇게 빠른 발전이 가능한지를 묻기 시작한다.

옳고 그름을 나누지 않는 중국

서부의 변화상에 놀란 정 교수 일행이 들르는 곳이 이번 기획의 기점인 청두의 고적들이다. 청두는 시내에 제갈공명의 사당인 우후스(武候祠)을 비롯해 두보초당(杜甫草堂), 칭양궁(靑羊宮) 등 명소를 갖고 있다.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민지앙(岷江)의 중류에는 진촉시대에 이빙(李氷) 부자가 애민정신으로 만든 수리시설인 두지앙위앤(都江堰)이 있다. 또 두지앙위앤 근처에 있는 칭청산(靑城山)은 중국 도교가 태동한 성소 가운데 하나고, 풍경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쓰촨이 가지고 있는 자연 및 문화유산은 이밖에도 헤어릴 수 없을 정도다. 중국 불교의 성소인 어메이산(峨眉山)을 비롯해 절경으로 알려진 지우자이고우(九寨溝), 황롱동(黃龍洞), 러산따푸(藥山大佛), 꿍가얼산(貢嘎山) 등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여행 환경을 갖고 있다.

정 교수가 갖는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에 대한 답변은 이곳에서 의외로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바로 중국 사상이나 체제 자체가 어떤 문화나 체제도 받아들인 후 자기화시키고 병립해간다는 사실. 긴 역사에서 보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등 체제의 변화는 근대 이후 100년 동안에 선택한 짧은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중국 역사에서 각 종교나 정치체제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갈등은 서로에 대한 인정과 흡수 및 통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한 도시 안에 임금과 신하간 충성의 상징인 우흐스가 있고, 도교의 사당인 칭양궁이 있고, 불교사원인 문수원(文殊院) 등이 사이좋게 자리한다는 것. 서로가 자신이 원하는 이들에게 조용히 존재할 뿐이라는 것. 그것이 중국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고, 이것이 현대 중국 경제체제를 작게나마 설명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관계는 정 교수도 지적하지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관계다. 둘은 장정시절에 만나서 막연하나마 깊은 관계를 가졌다. 덩샤오핑이 류샤오치와 비슷한 정치, 경제적 횡보를 걸을 때, 마오쩌둥은 덩 샤오핑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뒤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있기는 했지만 마오의 암묵적인 보호가 없었다면 덩샤오핑은 문혁의 중간에서 사라질 존재였다.

또 덩 샤오핑도 죽은 마오에 대해 큰 비판을 삼갔고, 마오가 보여준 정치적 과단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힘은 바로 이런 서로에 대한 길항작용속에서 나왔다. 이런 사실을 정 교수는 “굴러가는 판으로 봐서 毛가 옳으면 鄧이 그르고 鄧이 맞으면 毛가 틀려야 ‘상식’일 텐데, 모두가 두루뭉수리로 그 상식을 피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만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갖는 의문이 답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정 교수가 조금은 백안시 했던 자본주의 ‘경제학’에도 정답이 있고, 그가 주로 토대를 삼았던 ‘정치 경제학’에도 사회를 설명하고, 답안을 제시하는 부분은 있다. 우리가 중국과 중국경제를 보는 전반적인 시선도 이렇지 않는가를 물어본다.

단정하기 어려운 중국

쓰촨의 성도지만 청두는 시내를 제외하고, 그다지 번화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내 중심가로 서서히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이웃도시인 충칭에 비하면 그 속도가 덜하다. 또 청두는 분지 도시여서 보통화에 익숙한 이들도 알아듯기 힘든 쓰촨화를 고집스럽게 사용함으로써 일반 내륙과 격리하려는 느낌이 아직까지 강하다. 하지만 부자가 되겠다는 의지는 이곳사람들이라도 덜하지 않다. 청두를 비롯해 주변도시인 미옌양(綿陽), 더양(德陽) 등의 도시는 개발구를 만들어 외자기업을 끌어들이기에 분주하다. 또 그들이 가진 최대의 자산인 여행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서구기업에게 호텔업을 인가하고, 여행지를 수십년간 임대하는 등 스스로의 활로찾기에 활발하다.

청두에 버금하는 도시인 충칭은 변화의 모습이 상상을 초월한다. 도시 자체가 언덕이 많아 자전거가 없는 도시고, 오래된 공업도시여서 오염이 심한 곳중에 하나지만 도시의 주변을 정화하는 방식으로 또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다. 거기에 창지앙 산샤(三峽)댐 수몰지구의 중심 이동지역으로 꼽히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정 교수 일행은 여행지를 동쪽으로 서서히 옮기며 그 발전상에 감탄한다. 10년간 1800억 위안을 투자해서 인프라를 다진 푸동, 오락과 경제를 번갈아가는 홍콩과 선전의 모습, 대만을 받아들이기에 분주한 샤먼의 모습 등등.

사실 누구도 중국에 관한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답안이 너무나 포괄적이고, 클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상적 필요에 따라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교수의 중국경제산책은 말 그대로 산책이다. 일행이 다녔던 쓰촨과 상하이와 광둥과 베이징은 각기 의사통이 어려운 각각의 사투리를 쓴다. 또 문화적으로 쉽사리 단정할 수 없는 차이를 갖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북쭉 하얼빈에서는 영하 20도에 가까운 날씨를 이용해 빙등제(氷燈際)를 즐길 때, 남쪽 하이난다오(海南道)는 영상 25도 정도여서 해수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토대가 다른데 어떻게 한 단어로 그것들을 확답할 수 있을까.

정 교수는 책의 앞머리에 ‘인류의 1/5을 상대로 벌이는 도박,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 실험에 대한 생생한 현장 보고’라고 썼다. 하지만 중국은 절대 도박을 벌일 수 없다. 중국경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 국민을 상대로 도박을 벌이지는 않는다. 수많은 민족으로 되어 있고, 사회불안 요소가 잠복한 중국은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줄타기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정 교수가 마지막에 공감하듯이 이제 중국의 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미국 못지 않은 주변국으로 부상해 그 파장이 우리에게 적지 않다는데 있다.

청두를 떠날 때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벌써 한달째 안개다. 비행기가 구름층을 뚫고 나서자 멀리 시링쉐산(西岭雪山)이 보인다. 청두에서 만났던 귀여운 판다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고향이 저곳이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 - 정운영 의 <중국경제산책>
중국 경제서, 다양한 시각 받아들여야


이 책은 현재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정운영 교수가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내용과 후기 등을 묶어서 만든 책이다. 정 교수는 오랫동안 칼럼리스트로 활동했고,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경제학을 위한 변명’, ‘시지프의 언어’ 등 적잖은 경제 관련서를 출간했다. 

일단 경제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는 손꼽히는 전문가다. 그의 시각은 어떤 확신은 없지만 중국경제에 관한 의문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2000년 이후 중국 붐이 일어서 중국경제에 대한 다양한 저술이 쏟아지고 있다. 손꼽을 만한 책으로 ‘차이나 쇼크’, ‘중국은 가짜다’, ‘13억의 충돌’, ‘중국의 몰락’ 등이다. 

이런 책들은 중립적인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경우가 많다. 매일경제신문에서 펴낸 ‘차이나 쇼크’가 중국에 대한 긍정론에 가깝다면 ‘중국은 가짜다’나 ‘중국의 몰락’은 부정론에 가깝다. 중국내 소장학자인 한더치앙의 ‘13억의 충돌’은 중립을 지키며 중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책이다. 이 책들은 중국경제에 관한 개론서들과 달리 저널리즘으로 접근한 느낌이 강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이해도 넓히는데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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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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