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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나 라트비아의 리가 같은 경우는, 정말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시내 중심가의 경우 앉아서 대충 지도도 그릴 수 있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리는지 그냥 기억으로도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농담은 아니다(빌뉴스와 리가가 정말 -속된 말로- '코딱지만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사실만도 아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탈린의 경우는 만약 지금 당장 기차역에서 내려서 어디를 찾아가려면 당장 '어떻게 가야 하나' 상당히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많이 낯설다. 익숙한 도시는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나라보다 방문을 한 횟수도 적다. 일단 현재 내가 거주하는 폴란드에서 가장 멀리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에스토니아에 자주 드나들기가 어려웠고, 내가 전공하는 '발트어문학'이라는 학문에 에스토니아어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학문적 목적으로도 에스토니아는 내 분야밖의 나라다.

인접한 다른 두 나라와 엄청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함께 발트3국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불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에스토니아를 따로 떼어놓는 것은 나에게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찾아간 에스토니아는(내가 국경에서 깜짝시험을 본 것은 내가 에스토니아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이야기이다) 그 빈도수와 체류기간에 비해 볼 때 아주 오래 남는, 다른 두 나라와 뭔가 다른 독특한 인상을 준 나라인 것은 확실하다.

온통 청록색으로 물든 것 같은 탈린의 아름다운 구시가지나,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그리고 짭짤한 바다냄새. 거리를 오가는 잘 생기고 아름다운 젊은이들. 아담하고 자그마한, 대도시라고는 믿기지 않던 에스토니아의 제2도시 타르투(Tartu)에서 사먹은 맛있는 에스토니아 맥주 사쿠(Saku). 그런 것들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지만, 그것이 인상을 심어주는 것들의 전부는 아니다. 먼저 에스토니아라는 이름의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나라는 다른 두 나라의 그것과 좀 다른 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사를 복습하는 의미에서 퀴즈 하나!

에스토니아라는 말의 어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1번) 강이나 산 같은 지명
2번) 그 곳에 살던 민족의 이름
3번) 실수로 붙여진 이름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에 대한 기사를 탐독한 사람은 한 나라의 국명이 어떠한 경위로 붙여지게 되는지 나름대로 이해를 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에스토니아라는 국명은 강이름도, 민족이름도 아니다. 그렇다고 실수로 붙여진 이름일까... 흠.

에스토니아라는 나라는 에스토니아어로 Eesti(에에스띠)로 불린다. 에스토니아에 가면 Eesti외에 Eestimaa(에스띠마아)라는 이름도 종종 보게 되는데, 그 maa라는 말은 에스토니아말로 '땅, 조국'이란 말이다.

그 단어는 에스토니아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건 붙일 수 있다. 한국은 에스토니아 말로도 Korea라 불리는데, 한국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 에스토니아에 가서 '저는 Koreamaa(꼬레아마아)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단 이야기이다.

그 Eesti라는 말의 어원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비교적 명확하게 알려져 있으므로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의 경우처럼 끈질긴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기원 후 98년 로마의 역사가 타치투스(Tacytus)의 기록에 Eesti라는 국명의 기원이 되었을 듯한 Aesti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은 단순히 현재의 에스토니아인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현재 폴란드 동부에서 에스토니아까지 거주하고 있던, 독일인도 슬라브인도 아닌, 로마의 시각에서 볼 때 기독교화 되지 못한 야만상태에 있던 발트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아마도 현재 칼리닌그라드 지역에 살던 고대 프러시아인들을 일컫던 말이라는 설도 있다. 에스토니아인이 아니더라도 발트인들은 그 Aesti라는 단어에 대한 감정이 특별하다. 리투아니아 시인 중에는 '요나스 아이스티스(Jonas Aistis)'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리투아니아와 발트인들의 과거와 상실한 역사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시를 쓴 시인이다.

그의 성 Aistis는 미국에 거주를 시작하면서 임의로 바꾼 성으로, 라틴어 단어 Aesti의 리투아니아식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Aesti라는 명칭은 그런 식으로 발트인 모두에게 그들의 조상과 역사를 일컫는 단어로 널리 쓰이고 있는 단어이다. 리투아니아에서는 그 Aesti에서 나온 Eesti와 비슷한 Estija(에스띠야)가 에스토니아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지만, 라트비아에서는 좀 다른 어원의 Igaunija(이가우니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말은 현재 에스토니아 지역에 살고 있던 한 종족을 부르던 명칭이라고 한다.

핀란드에서는 에스토니아를 비루(Viru)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비루 역시 현재 에스토니아 지역에 거주하던 한 민족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발트인들의 조상과 뿌리를 일컫는 이 Aesti는 현재 에스토니아가 독점권(?)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스토니아는 '발트인의 땅'이란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발트인의 땅, 에스토니아에는 정식으로 말하면 발트인들이 살지 않는다. 나는 인류학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차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들은 인종적으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와는 좀 다른 핀우그르족이라고 불린다. 사는 사람들 외에도 다른 발트국가에는 없는 특이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먼저 에스토니아에만 약 1500개 정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두 나라를 통틀어도 섬은 전혀 없다!(호수에 있는 섬들을 제외하고 바다에 있는 섬만 이야기할 때이다). 가장 큰 섬이 사아레마(Saaremaa) 섬으로 넓이가 약 2천6백 평방킬로미터이다. 그 섬에 가면 약 3천년 전 운석이 떨어져서 만들어진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분지가 있다.

핀란드에는 그 곳에 운석이 떨어지던 당시를 표현하는 민요가 있다고 한다. 사아레마섬 외에도 무후, 키흐누, 루흐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다. 12세기까지 에스토니아 역시 다른 발트국가들처럼 특별한 통일왕국을 건설하지 못한 채 8개의 종족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어 지배하고 있었다. 특히 사아레마에 살던 종족은 해적으로서의 명성이 자자하여, 스칸디나비아를 호령하는 사람들이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1187년, 사아레마 해적들은 당시 스웨덴의 수도 식툰(Sigtun)을 멸망시켰고, 그 폐허를 재건하지 못한 스웨덴 사람들은 스톡홀름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그 섬 지역에 가면 마치 네덜란드처럼 여기저기 서있는 풍차가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언어 이야기야 수십 번도 더 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해보자면, 에스토니아어는 라틴어 어원의 단어가 대다수를 이루는 유럽언어와 비교해볼 때, 상당히 별종인 언어다. 유럽 어디엘 가도 공화국이란 말은 라틴어의 res publica과 여러모로 비슷한 단어가 쓰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에 들어와 입국도장을 받게 되면, 거기엔 어딜 봐도 그런 비슷한 명사가 없다. 에스토니아는 공화국이 아니란 말인가?

에스토니아어로 공화국이란 Vabariik(파바릭)이라 불린다. 라틴어 Universitas와 비슷한 단어가 쓰이는 대학교라는 건물은 에스토니아에서 ulikool(윌리코올 u 위에 움라우트가 찍힌 형태)이란 이름이 있고, 라틴어 litteratura와 비슷한 형태가 주를 이루는 '문학'이라는 단어는 kirjandus(끼리안투스), 라틴어 historia와 비슷한 형태가 일반적인 '역사'라는 의미의 단어 역시 ajalugu(아얄루쿠)라는 기상천외한 단어가 쓰이고 있다.

말한 대로 에스토니아는 유럽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계통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리투아니아 사람이나 라트비아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언어로는 인사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흔히들 리투아니아어, 라트비아어와 에스토니아어의 차이는 영어와 터키어 정도의 차이가 된다고 한다.

그런 지리적 문화적 괴리감으로 인해 인접국가들 간에 만들어진 심리적인 장벽조차 무시할 수 없다. 리투아니아 같은 경우, 과거 에스토니아를 침범하여 괴롭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에스토니아의 고대이야기를 다룬 문학작품에는 리투아니아인이 그다지 좋은 사람들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인들 사이에는 서로를 비하하는 내용의 농담이나 속담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리투아니아야 문화적으로도 슬라브 문화에 비교적 더 가깝고, 그리고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리보니아라는 국가명으로 어려운 시절을 시작할 당시, 리투아니아는 독립국가로서 유럽을 호령했던 과거가 있던 만큼, 그런 다양성에서 만들어진 국가들 간의 보이지 않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역사적으로 지니는 공통점이 비교적 다양한 이유로 라트비아는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양국을 연결하는 '만남의 장소'나 '무역거점도시'로 인식이 되어있었다.

이처럼 역사적, 문화적으로 상당히 다른 배경을 가진 이 에스토니아도 근대 이후 이웃 국가들과 같은 배를 타고 지금까지 항해해 오고 있다. 1989년 발트3국 국민들이 그들의 독립을 전세계에 천명하기 위해 빌뉴스에서 탈린까지 빈틈 없이 손에 손을 맞잡고 만들어낸 행렬 '발트의 길' 행사는 이 3국이 서로 한 배를 탄 형제로 지속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발트의 길 행사에 참가한 한 라트비아 할머니의 품에 안긴, 이웃 두 국가들에게 던지는 인사말이 담긴 이 짧은 글 때문이었다.

"Paliec sveiks, Vecako brali! 큰 형님! 건강하시오!"

덧붙이는 글 | 발트3국에 대한 필자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세요. http://my.netian.com/`perku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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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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